침팬지 무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먹이가 등장하는 찰나다. 서열이 낮은 개체는 다칠 위험을 감수하고 자리를 다투고, 높은 개체는 자원을 지키려 날을 세운다. 그런데 이 긴박한 순간 직전, 개체들이 서로 껴안고 손을 맞잡는 짧은 접촉이 포착되었다면 평화로운 식사를 예상해도 좋다.
실제로 침팬지들의 포옹이 긴장을 낮춘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확인됐다. 영국 더럼대학교 제이크 브루커, 재나 클레이 연구팀은 침팬지와 보노보 다섯 무리, 124마리를 관찰해 이런 결과를 얻었고, 국제학술지 '왕립학회보 B'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화해보다 중요한 건, “싸우지 맙시다”
영장류 접촉 연구는 그동안 싸운 뒤의 화해 행동에 집중돼 있었다. 1970년대 말 침팬지들이 싸운 뒤 서로 껴안는 모습이 처음 보고된 이래, 화해와 위로 행동은 여러 종에서 꾸준히 확인돼 왔다. 반면 갈등이 벌어지기 전, 다툼이 뻔히 예상되는 순간의 접촉은 상대적으로 덜 다뤄진 편이다. 1990년대 초 먹이가 나오기 직전 침팬지들이 서로를 껴안는 모습이 관찰돼 '축하 행동'이라는 이름까지 붙었지만, 이게 그냥 흥분한 상태에서 나오는 반사적 행동인지 싸움을 막는 화해적 기능인지는 30년 가까이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콩고민주공화국 롤라야보노보 보호구역과 잠비아 침팬지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보노보 세 무리, 침팬지 두 무리, 총 124마리를 대상으로 '땅콩 그네' 실험을 시행했다. 대나무 통에 개체당 땅콩 12알을 채워 사육장 그물망에 매달아 흔들면 좁은 공간으로 이들이 몰려들면서 실제 먹이 경쟁이 벌어진다.
연구팀은 땅콩이 쏟아지기 전 5분 동안 이들이 주고받는 포옹, 손잡기, 두드림, 생식기 접촉 등 최대 15가지 유형의 접촉을 기록했다. 또, 먹이가 풀린 뒤에는 개체마다 좁은 급식 구역에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를 15초 간격으로 관용의 정도를 수치화했다. 이렇게 두 사이트에서 45회 세션, 총 2,236건의 접촉이 관찰됐다.
접촉을 나눈 개체일수록 자리를 지켰다
개체 811개 관측치를 분석하자 두 종 모두에서 같은 패턴이 나왔다. 먹이 전에 접촉을 많이, 여러 상대와 나눈 개체일수록 먹이가 풀린 뒤 급식 구역에 더 오래 머물렀다.
두 개체 간 접촉 1만 2,694건을 따로 분석하자 접촉을 나누는 상대는 종마다 갈렸다. 보노보는 암컷끼리, 침팬지는 수컷끼리 접촉이 유의하게 잦았다. 암컷 연합이 우세인 보노보 사회와 수컷 동맹이 중심인 침팬지 사회에 대한 오랜 이론과 맞아떨어지는 결과다. 혈연관계인 개체끼리도 남남보다 접촉이 잦았다.
한편, 성별 패턴은 무리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보노보 무리 두 곳에서는 암컷끼리 접촉이 다른 조합보다 확연히 많았지만, 서열 다툼이 가장 심한 보노보 무리에서는 어떤 조합도 특별히 접촉이 많지 않았다. 침팬지 역시 관용적인 무리에서는 수컷끼리, 암수 간 접촉이 두드러졌던 반면, 서열 다툼이 심한 무리에서는 오히려 암컷끼리의 접촉이 다른 조합보다 적었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두고 안심 접촉이 이미 관용적인 분위기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관여한다고 분석했다. 서열이 팽팽한 무리에서는 평소 끈끈한 암컷 연합이나 수컷 동맹조차 접촉으로 긴장을 누그러뜨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입안에 손가락을 넣는 위험한 인사
흥미로운 점은 침팬지에게만 있는 행동이다. 상대 몸에 입을 대거나 손가락을 상대 입안에 넣는 접촉으로, 침팬지 두 무리에서 각각 107건, 46건이 기록됐다. 두 행동 모두 보노보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무는 힘이 강한 침팬지 사이에서 이 접촉은 실제 상처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몸짓이다. 그런데 이 행동은 서열 다툼이 덜한 무리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났고, 수컷이 암컷보다, 나이 많은 개체가 어린 개체보다 더 자주 주고받았다. 스스로 물릴 위험을 감수하면서 상대에게 악의가 없음을 증명하는 모양이다. 위험을 무릅쓴 인사로 유대를 확인하는 행동은 하이에나나 기니개코원숭이 같은 다른 사회적 동물에서도 보고된 바 있다.
연구팀은 여러 개체가 순서대로 뒤에서 서로를 껴안아 긴 줄을 만드는 장면도 목격했다. 이 행동에 '안심 열차'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가장 관용적인 침팬지 무리에서 우연히 이 장면을 본 것이 애초에 이 연구를 시작한 계기였다.
언어보다 먼저 있었던 것
이번 결과만으로 접촉이 관용을 만든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접촉이 늘어난 뒤 관용이 뒤따른 것인지, 원래 가까운 사이라서 접촉도 관용도 함께 늘어난 것인지는 이번 연구만으로 가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두 개체 간 접촉이 이후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독립적인 서열 지표와 함께 추적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침팬지와 보노보에서 나타난 접촉의 모양새와 쓰임이 놀랍도록 닮았다는 점에서, 연구팀은 이 행동이 적어도 600만 년 전, 말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몸을 맞대는 일이 긴장을 가라앉히는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재나 클레이 영국 더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신체적 친밀감은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정말 강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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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6-08-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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