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안에서 단백질은 주로 확산에 의해 이동한다고 설명되어 왔다. 향수병에서 흘러나온 냄새 분자가 조금씩 퍼져 방 안을 채우듯, 단백질도 만들어진 후 세포 안을 무작위로 떠돌다가 필요한 곳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3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된 연구는 이러한 오랜 관점에 변화가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연구를 주도한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학교의 캐서린 갤브레이스와 제임스 갤브레이스 교수 부부는 세포 내부에서 단백질을 특정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흐름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확인하였다. 이 발견은 한 수업에서 나온 우연한 관찰을 통해 시작되었다.
수업 중 발견된 세포 속 얇은 검은 띠
캐서린과 제임스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해양생물연구소의 신경생물학 강좌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습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수업에서는 형광이 붙은 액틴(actin) 단백질을 이용해 단백질의 이동을 관찰하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액틴은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고 움직임을 조절하는 뼈대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필요에 따라 가느다란 필라멘트 구조를 만들며 세포 안에서 빠르게 재배열된다. 실험 방식은 비교적 단순했는데, 세포 뒤쪽에 레이저를 쏘아 일부 액틴의 형광 신호를 사라지게 만든 뒤 이 단백질들이 세포 앞쪽으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관찰하는 것이었다. 레이저를 조사하자 예상대로 세포 뒤쪽의 형광 신호는 사라졌다. 그런데 몇 초 뒤, 세포 앞쪽 가장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아주 얇은 검은 띠가 나타났다. 이는 뒤쪽에서 레이저 때문에 형광을 잃은 액틴이 단순 확산으로 천천히 퍼진 것이 아니라, 마치 용수철처럼 앞으로 밀려 나가 다시 필라멘트로 재편성되면서 남긴 흔적이었다. 이 우연한 발견은 세포 안 어딘가에 단백질을 특정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힘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가설로 이어졌고, 이를 추적하기 위한 긴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연구팀은 이 검은 띠가 정말로 앞쪽으로 밀려간 액틴의 흔적인지 확인하기 위해 반대 방식의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번에는 단백질의 형광을 없애는 대신, 세포 안의 한 지점에서 액틴의 형광을 새롭게 발생시킨 뒤 그 빛이 어느 방향으로 퍼지는지를 관찰했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에서 향을 피우고 연기가 사방으로 고르게 퍼지는지, 아니면 어느 한쪽으로 밀려가는지를 본 것이다. 실험 결과, 형광 신호는 세포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 즉 세포의 앞쪽 가장자리로 더 강하게 치우쳐 퍼져나갔다. 이는 실습 실험에서 관찰한 것이 단순 확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으며 세포 안에 단백질들을 앞쪽으로 보내는 흐름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포 안에도 방향을 가진 흐름이 있다
그렇다면 이 흐름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미오신(myosin)이라는 단백질이었다. 미오신은 세포 안에서 일종의 작은 근육처럼 작동하여 액틴 구조를 당기고 수축시키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미오신의 작용을 약물로 억제해 보았는데, 그 결과 앞쪽에 나타나던 검은 띠가 훨씬 늦게 생기고 모양도 선명하지 않게 흐려졌다. 반대로 같은 세포에서 미오신 기능을 다시 회복시키자 검은 띠는 다시 빠르고 선명하게 나타났다. 이는 세포 안의 흐름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미오신의 수축 활동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쉽게 이해하려면 세포를 물이 담긴 아주 작은 주머니라고 상상해 보면 좋다. 주머니의 한쪽을 손으로 누르면 안에 있던 물이 반대쪽으로 밀려나듯 세포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연구팀의 설명에 따르면 세포 내부의 액틴과 미오신 구조가 특정 부위를 수축시키면 그 힘에 의해 세포질 속 액체가 앞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 흐름을 타고 세포질에 떠 있던 단백질들도 함께 필요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방향성을 띤 움직임은 액틴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세포가 앞으로 뻗어나가거나 형태를 바꾸는 데 필요한 다른 단백질들도 액틴과 비슷하게 세포 앞쪽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공사 현장에서 철근과 시멘트, 장비가 제때 한곳으로 모여야 건물이 올라갈 수 있듯, 세포도 모양을 바꾸고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여러 단백질들을 한꺼번에 적절한 위치로 보내야 한다. 이때 세포 내부의 흐름이 일종의 운반 경로처럼 작동하여 관련 단백질들을 필요한 곳으로 실어 나르는 것이다. 논문 제목에 등장하는 ‘세포질 무역풍(cytoplasmic tradewinds)’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현상을 의미한다. 바다 위의 무역풍이 배를 일정한 방향으로 밀어주듯, 세포 안의 흐름이 단백질을 특정 방향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세포가 이동하기 위해 스스로 만드는 세포질 무역풍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세포 이동이 우리 몸의 여러 과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처가 났을 때 피부 세포가 손상 부위로 이동하고 면역세포가 감염 부위로 찾아가는 일 모두에 세포 이동이 필수적이다. 세포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앞쪽을 밀어내고 바닥에 붙은 뒤 다시 모양을 바꾸어야 하는데, 이때 액틴과 접착 관련 단백질들이 세포 앞쪽으로 빠르게 공급되어야 한다. 이번 연구는 세포가 이 과정을 단순한 우연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부 흐름을 이용해 필요한 단백질을 필요한 방향으로 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암세포의 이동과 전이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암세포가 주변 조직을 빠져나가 혈관이나 림프관을 통해 다른 장기로 퍼지려면 방향을 바꾸며 빠르게 움직이는 능력이 필요한데, 만약 암세포가 이러한 내부 흐름을 더 강하게 활용한다면 필요한 단백질을 앞쪽으로 신속히 보내 더 공격적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 안의 단백질은 그저 떠돌다 우연히 목적지에 닿는 물질이 아니었다. 세포는 내부에 작은 흐름을 만들어 필요한 단백질을 앞으로 보내며 자신의 모양과 움직임을 조절하고 있었다. 한 수업 시간에서 관찰된 예기치 못했던 현상이, 사실은 우리가 아직 보지 못했던 세포 안의 정교한 질서였던 것이다.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Compartmentalized cytoplasmic tradewinds direct soluble proteins, Galbraith et al., 2026, Nat Commun
-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5-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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