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한 조각이 ‘건강 스무디’의 핵심 영양소 흡수를 80% 이상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일 스무디가 건강한 식습관의 대표적 대안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재료 선택에 따라 실제 영양 효과가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 영양학과 연구팀은 바나나처럼 폴리페놀 산화효소(PPO) 활성이 높은 과일을 사용할 경우 심혈관 건강에 유익한 플라반-3-올의 체내 흡수가 대폭 감소한다는 사실을 Food & Function 저널에 발표했다.
플라반-3-올은 코코아, 녹차, 베리류, 사과 등에 풍부한 폴리페놀 화합물로, 혈관 기능 개선과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성분이다. 미국 영양학회는 최근 심혈관 건강을 위해 하루 400~600mg의 플라반-3-올 섭취를 권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귀한 건강성분이 스무디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이번 연구는 스무디 제조와 섭취 과정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변화를 인체 실험으로 확인한 첫 사례로, 식품의 영양 가치는 어떤 재료를 쓰느냐뿐 아니라 조리 방식과 섭취 시점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나나 스무디가 영양소를 지운다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 남성 8명을 대상으로 세 가지 형태의 플라반-3-올을 섭취하게 하고 혈중 농도 변화를 측정했다. 첫 번째는 캡슐 형태, 두 번째는 바나나 스무디(고PPO 음료), 세 번째는 베리 믹스 스무디(저PPO 음료)였다.
측정 결과 캡슐을 섭취했을 때 혈중 플라반-3-올 대사물질의 최고 농도는 680nmol/L였다. 베리 스무디도 659nmol/L로 거의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바나나 스무디는 고작 96nmol/L에 그쳤다. 캡슐 대비 84%나 낮은 수치다.
6시간 동안의 총 흡수량을 나타내는 AUC(곡선하면적) 값도 같은 패턴을 보였다. 캡슐은 2259, 베리 스무디는 1941을 기록한 반면, 바나나 스무디는 272에 불과했다. 동일한 양의 플라반-3-올을 섭취했음에도 바나나 스무디는 체내 흡수가 81%나 감소한 것이다.
더 흥미로운 발견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바나나 스무디 제조 후 실온에 보관하면서 에피카테킨 함량 변화를 측정한 결과, 반감기는 불과 9.8분이었다. 즉, 스무디를 만들고 1시간이 지나면 플라반-3-올 대부분이 분해된다는 뜻이다. 연구팀이 폴리페놀 산화효소(PPO) 억제제를 첨가하자 분해가 현저히 감소했다. 바나나의 PPO 효소가 직접적 원인임이 확인된 것이다.
오타비아니 박사는 "우리는 바나나가 스무디에 크림 같은 질감을 더해주기 때문에 인기 있는 재료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PPO 활성이 높은 바나나는 플라반-3-올의 생체이용률을 크게 감소시킨다"고 지적했다.
위장에서도 계속되는 파괴
그렇다면 바나나와 건강성분을 따로 먹으면 어떨까? 연구팀은 후속 실험에서 이 가능성을 검증했다. 바나나와 플라반-3-올이 믹서기 안에서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11명의 참가자에게 플라반-3-올 음료와 바나나 음료를 따로 준비한 뒤 섭취할 때만 번갈아 마시도록 했다.
그러나 결과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플라반-3-올만 섭취했을 때의 AUC는 1702였지만, 바나나와 함께 번갈아 마신 경우 988로 37%나 감소했다. 24시간 소변 배설량도 플라반-3-올 대사물질은 41%, 장내미생물 유래 대사물질은 38% 줄었다.
이는 바나나의 PPO 효소가 섭취 후에도 계속 작용함을 의미한다. 음식물 섭취 직후 위의 pH는 평소 2에서 5로 상승하며, 다시 2로 돌아가는 데 1시간 이상 걸린다. 문제는 pH 4~5 범위가 바나나 PPO의 최적 활성 구간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바나나의 PPO는 잠재형으로 존재하다가 펩신 같은 단백질 분해효소에 의해 활성화될 수 있다. 스무디를 제조할 때뿐만 아니라 위 속 초기 소화 과정에서도 PPO가 플라반-3-올을 분해한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PPO가 위장관 내에서도 활성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플라반-3-올과 PPO 활성이 높은 과일을 함께 섭취하면, 믹서기에서 섞지 않더라도 체내 흡수가 감소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스무디에 넣어야할 과일, 뺴야할 과일
연구팀은 스무디 재료로 흔히 사용되는 18종의 과일, 채소, 식물성 제품의 PPO 활성을 측정했다. 바나나가 3258KU/100g으로 가장 높았고, 비트 잎(1594), 사과(570), 배(147)가 뒤를 이었다. 반면 딸기(18), 블루베리(12), 파인애플, 케일, 스피룰리나는 거의 활성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사과와 배처럼 플라반-3-올을 많이 함유한 과일도 높은 PPO 활성을 가진다. 사과는 100g당 에피카테킨 함량이 9.83mg, 배는 3.76mg이다. 하지만 동시에 높은 PPO 활성도 갖고 있다. 이 과일들로 스무디를 만들경우 자체 플라반-3-올뿐 아니라 함께 넣은 다른 재료의 폴리페놀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베리류는 낮은 PPO 활성에도 플라반-3-올을 함유하여 스무디 재료로 적합하다. 딸기는 100g당 1.56mg, 블루베리는 0.62mg의 에피카테킨을 포함한다. 실험에서 베리 믹스 스무디는 캡슐과 유사한 수준의 플라반-3-올 흡수를 보였다. PPO 활성이 낮은 재료를 선택하면 영양소 손실 없이 스무디를 섭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베리류, 파인애플, 포도 같은 과일은 PPO 활성이 낮으면서도 다른 유익한 영양소를 제공한다"며 "이런 과일들이 플라반-3-올 함유 식품과 함께 스무디를 만들 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 관련 연구
Ottaviani, J.I., et al. (2023). Impact of polyphenol oxidase on the bioavailability of flavan-3-ols in fruit smoothies: a controlled, single blinded, cross-over study. Food & Function, 14
- 김현정 리포터
- vegastar0707@gmail.com
- 저작권자 2025-11-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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