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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현정 리포터
2025-10-27

마다가스카르 여우원숭이, 한 번 아닌 여러 번 ‘폭발했다’ '섞이면 사라진다'는 교잡종, 새로운 종을 만든 사례로 보고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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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종이 만나 교잡하면 종의 경계가 흐려지고 결국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것이 진화생물학의 오랜 통념이었다. 그런데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 연구가 정반대 결과를 보여줬다. 교잡이 오히려 폭발적인 종 분화의 '연료'였다는 것이다.

국제공동연구팀이 104종의 여우원숭이와 그 자매군인 로리스원숭이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연구를 이끈 캐서린 에버슨(Kathryn M. Everson) 오리건주립대 교수는 "교잡을 경험한 여우원숭이 종의 분화율이 그렇지 않은 종보다 4배 이상 높았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교잡을 경험한 분류군은 100만 년당 30.40종이 생겨났지만, 교잡 경험이 없는 분류군은 100만 년당 7.06종에 그쳤다. 4천만 년에 걸친 이러한 차이가 누적되면서 현재 전체 영장류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여우원숭이의 다양성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밝혀진 독특한 진화 메커니즘의 주인공들은 지금 95%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여우원숭이의 모습으로, 4천만 년에 걸친 교잡을 통해 현재 100종 이상으로 다양화했지만 95%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phys.org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여우원숭이의 모습으로, 4천만 년에 걸친 교잡을 통해 현재 100종 이상으로 다양화했지만 95%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phys.org

 

전통적 이론을 깬 진화 패턴

여우원숭이는 오랫동안 '적응방산'의 전형적 사례로 여겨져 왔다. 적응방산이란 하나의 조상 종이 새로운 환경에 진입한 후 빈 생태적 지위를 빠르게 채우며 폭발적으로 종이 분화하는 현상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다윈 핀치새나 빅토리아 호수의 시클리드가 대표적이다.

이런 고전적 적응방산은 초기에 종 분화율이 급증했다가 생태적 지위가 채워지면서 점차 감소하는 패턴을 보인다. 하지만 여우원숭이는 달랐다. 연구팀이 334개 유전자와, 총 110만 염기쌍을 분석해 만든 계통수를 보면 종 분화율이 현재까지도 증가 추세를 보인다.

연구팀은 교잡과 종 분화 사이에 진짜 인과관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각 종을 교잡 경험 유무로 분류한 뒤 다양한 진화 모델을 검증했다. 그 결과 가장 적합한 모델은 BiSSE(binary-state speciation and extinction) 모델이었다. 교잡 여부가 은 교잡 여부가 종 분화 속도를 직접 결정한다는 것, 즉 교잡이 실제로 새로운 종 탄생을 촉진한다는 뜻이다. 

여우원숭이(파란색)와 로리스원숭이(빨간색)를 포함한 곡비원숭이류 104종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작성한 계통수로, 각 과(科)별 샘플링 비율과 지리적 분포를 함께 보여준다. ⒸNature Communications
여우원숭이(파란색)와 로리스원숭이(빨간색)를 포함한 곡비원숭이류 104종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작성한 계통수로, 각 과(科)별 샘플링 비율과 지리적 분포를 함께 보여준다. ⒸNature Communications


4천만 년에 걸친 교잡의 증거

교잡의 흔적은 계통수 곳곳에서 발견됐다. 약 4천만 년 전 인드리과와 여우원숭이과라는 서로 다른 과(科) 사이에서 교잡이 일어났고, 약 1천만 년 전에는 갈색여우원숭이속과 대나무여우원숭이속 사이에서, 최근 500만 년 이내에는 같은 속 내 여러종들 사이에서 교잡이 일어났다. 여우원숭이의 진화 역사 전체에 걸쳐 지속적으로 유전자가 교류했다는 뜻이다.

특히 주목할 시기는 약 500만 년 전 마이오세와 플라이오세 경계다. 이때 쥐여우원숭이(Microcebus), 스포티브여우원숭이(Lepilemur), 갈색여우원숭이(Eulemur) 세 속에서 뚜렷한 분화 폭발이 관찰됐다. 세 속 모두 높은 교잡 빈도를 보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연구팀은 이 시기의 환경 변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예측했다. 

약 1천만 년 전 마다가스카르의 산악 지형이 현재 높이에 도달하면서 개체군들이 격리되기 시작했다. 이어 마이오세 말기 지구 전역에서 초원과 사바나가 확장되면서 마다가스카르의 숲도 파편화됐다. 숲이 조각나면서 개체군들은 더욱 격리됐지만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고, 간헐적인 접촉을 통해 교잡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형태적 다양화와 종 분화 사이에 시간차다. 형태적 다양화는 마다가스카르 정착 직후인 3,390만에서 5,760만 년 전에 빠르게 진행됐지만, 실제 종 분화 폭발은 그로부터 12천만 년 후에 일어났다. 연구진은 여우원숭이의 다양화가 단순히 새로운 땅에 도착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환경 변화와 교잡이라는 복합적 요인에 의해 촉진됐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여우원숭이 5개 속에서 발견된 과거 교잡의 흔적을 보여주는 계통수로, 화살표는 언제 어떤 종 사이에서 교잡이 일어났는지를 나타낸다. ⒸNature Communications
여우원숭이 5개 속에서 발견된 과거 교잡의 흔적을 보여주는 계통수로, 화살표는 언제 어떤 종 사이에서 교잡이 일어났는지를 나타낸다. ⒸNature Communications


교잡이 다양성을 만드는 방식

연구팀은 교잡은 종 분화를 촉진하는 두 가지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하나는 '조합론적 종 분화(combinatorial speciation)' 가설이다. 교잡을 통한 유전자 재조합이 새로운 적응의 원료를 제공한다. 서로 다른 계통의 유전자가 만나 예상치 못한 형질 조합이 생기고, 이는 새로운 생태적 지위 개척으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강화(reinforcement)' 과정이다. 교잡종에 대한 선택압이 오히려 생식 장벽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이다. 교잡이 일어나되 완전히 섞이지 않으면서 새로운 종으로 분화하는 계기가 된다.

주목할 점은 여우원숭이의 종 분화율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자매군인 로리스원숭이보다 월등히 높다는 사실이다. 여우원숭이는 100만 년당 0.44종이 생겨났지만, 로리스원숭이는 0.15종에 그쳤다.

앤 요더(Anne D. Yoder) 듀크대 교수는 이를 섬과 대륙의 차이로 설명한다. "대륙에서는 여우원숭이가 차지한 생태적 지위 상당수를 다른 영장류가 선점하고 있지만, 마다가스카르는 달랐다"라고 말했다. 지구 육지 면적의 1% 미만인 섬에 격리된 조상 집단이 비어 있는 생태계를 채우며 다양화했고, 교잡은 그 과정을 가속한한 촉매라고 설명했다.

마다가스카르의 갈색여우원숭이(Eulemur)로, 약 500만 년 전 교잡을 통한 폭발적 종 분화를 경험한 세 속 중 하나다. Ⓒphys.org
마다가스카르의 갈색여우원숭이(Eulemur)로, 약 500만 년 전 교잡을 통한 폭발적 종 분화를 경험한 세 속 중 하나다. Ⓒphys.org

 

보존 전략에 던지는 질문

현재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와 로리스원숭이를 포함한 곡비원숭이류의 약 95%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90%는 개체수가 감소 중이다. 삼림 파괴와 서식지 파편화가 주요 원인이다. 서식지가 파편화되면서 격리된 개체군들 사이에 교잡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교잡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전통적으로 보존생물학에서 교잡은 경계 대상이었다. 희귀종의 유전자 풀이 '오염'되거나 교잡종의 낮은 적응도가 개체군 쇠퇴를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여우원숭이에서 교잡은 4천만 년간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새로운 종 탄생을 촉진한 긍정적 힘이었다.

데이비드 와이스록(David W. Weisrock) 켄터키대 교수는 "교잡이 새로운 유전적 변이와 적응 유전자를 도입해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유전적 동화와 종 역전을 초래할 수도 있다"라며 "각 사례를 면밀히히 평가해 고유한 유전적 변이를 보존하면서도 개체군 크기, 건강성, 회복력을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의 섬 생태계에도 시사점을 준다. 제주도나 울릉도에서 격리된 개체군을 보존할 때 유전적 순수성만 추구할지, 적절한 유전자 흐름을 전략에 포함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Multiple bursts of speciation in Madagascar’s endangered lemurs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10-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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