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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정회빈 리포터
2025-07-18

가려워도 긁으면 안 된다면서 우리는 왜 계속 긁을까? 가려움증과 긁는 행위가 각각 독립적인 신경 회로를 통해 면역 반응을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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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철, 모기에 물리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손이 간다. 약을 바르고 되도록 긁지 않는 것이 좋지만 가려운 것을 계속 참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Getty Images
더운 여름철, 모기에 물리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손이 간다. 약을 바르고 되도록 긁지 않는 것이 좋지만 가려운 것을 계속 참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Getty Images

더운 여름철, 모기에 물리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손이 간다. 가려운 부위를 긁는 순간, 잠깐의 시원함이 느껴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물린 부위는 더욱 부풀어 오르고 심하면 피가 나기도 한다. 이는 감염 위험을 높이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은 약을 바르고 되도록 긁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고한다. 하지만 가려운 것을 계속 참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피부염이나 알레르기 반응, 벌레 물림 등 다양한 상황에서 우리는 가려움을 느끼고 몸을 긁게 된다. 하지만 긁는 행동은 오히려 염증을 심화시키고 질환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행동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긁는 행동이 생존에 이득이 되기 때문일 수 있다. 실제로 긁는 행위는 일시적인 쾌감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긁는 행동은 단순히 가려움증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일까? 아니면 진화적으로 이점을 가진 결과물일까?

 

가려움을 긁는 행동도 진화의 산물일까?

올해 1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긁는 행동이 우리 몸의 방어 기작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설명하는 연구가 게재되었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의 다니엘 카플란 교수 연구팀은 가려움증과 긁는 행위 사이의 분자적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그 중요성을 제시하였다.

카플란 박사 연구팀은 원래 통증을 감지하는 뉴런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러던 중 피부를 긁는 행위도 본질적으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인데, 긁는 원인인 가려움은 왜 발생하고, 몸을 긁음으로 인해 어떤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실험적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마우스의 귀에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발라서 피부염(dermatitis, 일명 습진)을 유도하고, 긁는 행동이 염증 반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마우스가 귀를 긁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동물병원에서 흔히 사용하는 넥카라(Elizabethan collar)를 착용시켰다는 것이다. 이 장치는 마우스의 일반적인 활동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귀를 긁는 행위만을 효과적으로 제한할 수 있었다. 실험 결과, 염증 유발 시 그 부위를 긁지 못한 마우스가 염증 부위를 긁은 마우스에 비해 귀의 염증 수준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긁는 행동이 피부 염증을 직접적으로 증가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우스가 귀를 긁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물병원에서 많이 사용하는 넥카라를 착용시켰다 ⒸGetty Images
마우스가 귀를 긁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물병원에서 많이 사용하는 넥카라를 착용시켰다 ⒸGetty Images

 

긁는 순간 면역 반응이 시작된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포로 비만세포(mast cell)를 주목하였다. 이 세포는 알레르기 반응에 핵심적으로 관여하는 면역세포인데, 마우스 귀에 발랐던 알레르기 유발 물질은 피부 조직에 있던 비만세포를 활성화시켜 히스타민을 방출하고, 방출된 히스타민은 가려움 감지 뉴런을 자극한다. (참고로 '비만세포'라는 명칭은 우리가 흔히 아는 체중 증가의 '비만'과는 관련이 없다. 비만세포의 명칭은 독일어 'Mastzelle'에서 유래된 것으로, '먹이를 주다'라는 뜻을 갖는다. 초기 비만세포를 관찰한 과학자들이 세포 내부에 있는 다량의 과립을 통해 주변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비만세포의 과립 속에는 히스타민, 헤파린 등 염증 반응을 유도하는 물질들이 주로 존재한다)

가려움이 발생하는 기작은 밝혀졌는데, 그렇다면 그 결과 나타나는 긁는 행위는 생물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연구팀은 긁는 행위가 단순한 가려움을 없애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긁는 동작은 통증 감지 뉴런을 자극하는데, 이때 뉴런에서 분비되는 서브스턴스 P(Substance P)라는 물질이 다시 비만세포를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염증 반응을 확대시킨다.

가려울 때 긁음으로써 피부 조직 내 비만세포를 통한 면역 반응은 더욱 증폭된다 ⒸScience
가려울 때 긁음으로써 피부 조직 내 비만세포를 통한 면역 반응은 더욱 증폭된다 ⒸScience

 

긁으면 안 되지만 긁어야만 했던 이유

긁는 행위에 의해 유도된 염증 반응 증폭은 외부 병원균에 대한 방어 체계를 강화시켰다. 실제로 긁는 행동은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과 같은 병원체가 피부를 통해 침입하였을 때 면역 방어 기능을 현저히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긁는 행동이 단순히 가려움을 해소하는 차원을 넘어, 병원균의 침입 가능성이 높은 국소 부위에 대해 방어력을 높이는 일종의 면역 증폭 장치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가려운 부위를 긁은 마우스에서 병원체의 종류 및 감염 정도가 현저히 감소하였다 ⒸScience
가려운 부위를 긁은 마우스에서 병원체의 종류 및 감염 정도가 현저히 감소하였다 ⒸScience

긁는 행동이 염증을 유도한다는 사실은 만성 피부질환 환자에게는 불리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진화적 관점에서는 긁는 행위가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연구를 주도한 카플란 박사는 "어떤 곤충이 숙주를 물 때 통증을 유발하면, 숙주는 통증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물린 즉시 그 자리를 피하거나 그 곤충을 제거하려 할 것"이라며, "이를 피하기 위해 통증보다는 가려움을 유발하는 쪽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곤충이 통증 대신 가려움을 유발하게 되면 숙주는 물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난 후 긁게 되고, 이 긁는 행위는 해당 부위의 염증 반응을 촉진해 면역 반응을 강화하게 된다. 즉, 통증은 숙주가 곧바로 반응하도록 유도하지만 가려움은 긁는 반응을 통해 국소 부위에 면역 방어를 집중시키는 전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려움-긁기 회로, 새로운 치료법의 실마리가 될까?

흥미롭게도 가려움-긁기 반응은 두 개의 분리된 신경세포에 의해 조절된다. 하나는 가려움을 감지하고 긁는 행동을 유도하는 MrgprA3 뉴런이며, 다른 하나는 긁는 자극을 통증으로 인식하고 서브스턴스 P를 분비하는 TRPV1 뉴런이다. 두 신경 경로가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하면서 가려움과 긁는 자극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비만세포를 활성화시켜 염증 반응을 확대시킨다. 이처럼 가려움과 긁기의 고유한 회로가 존재한다는 점은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신경면역 반응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가려움-긁기 반응은 두 개의 분리된 신경세포에 의해 조절된다 ⒸScience
가려움-긁기 반응은 두 개의 분리된 신경세포에 의해 조절된다 ⒸScience

이번 연구는 긁는 행동이 단순한 자극 반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피부를 통해 외부 자극에 빠르게 대응하고 감염 위험이 있는 부위에서 면역 반응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긁는 행위의 생물학적 의미는 크다. 나아가, 이러한 가려움-긁기 반응을 조절하는 신경면역 메커니즘은 아토피 피부염, 만성 알레르기 등 다양한 피부질환의 원인 규명 및 치료 전략 수립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정회빈 리포터
acochi@hanmail.net
저작권자 2025-07-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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