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기술로 불리는 로봇공학 분야에서 일주일 사이 두 건의 쾌거가 탄생했다. 하나는 인간의 기분을 인식하고 감정 표현을 하는 로봇을 개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과 실제 인간을 구분하는 튜링 테스트를 최초로 통과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 5일 손정의 소프트방크 회장은 세계 최초의 감정인식 로봇 ‘페퍼(pepper)’를 공개했다. 산하 개발업체인 프랑스의 알데바란 로보틱스(Aldebaran Robotics)가 개발한 이 로봇은 사람의 행동과 표정에 따라 반응하고 행동한다. 손 회장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로봇에 감정을 부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8일에는 영국 왕립학회가 주최하는 ‘튜링테스트(Turing Test) 2014’에서 65년 만에 처음으로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연구진이 개발한 슈퍼컴퓨터 ‘유진 구스트만(Eugene Goostman)’이다. 13세 소년으로 꾸민 채 대회에 참가한 유진은 심사위원들과 각 5분씩 대화를 나눈 뒤 “인간이 분명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감정인식 로봇과 튜링테스트 통과 인공지능이 동시에 등장함에 따라 각국의 로봇 연구자들의 경쟁이 한 단계 치열해질 전망이다.
상대방의 감정 상태 파악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인간 형태의 로봇은 크게 △안드로이드(android) △휴머노이드(humanoid) △사이보그(cyborg)로 나눈다. 안드로이드는 실제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흡사한 외모와 행동을 보인다. 휴머노이드는 팔다리와 머리가 있어 인간과 유사한 로봇 전체를 가리킨다. 사람의 신체에 기계장치와 전자장비를 결합시키면 사이보그가 된다.
감정인식 로봇 ‘페퍼(pepper)’는 사람과 유사한 모습을 지닌 휴머노이드다. 다리 대신에 치마처럼 내려온 하체 바닥에 바퀴를 달았지만 얼굴에는 커다란 눈과 입이 있고 양팔도 있어서 사람이 마주해도 큰 거부감이 없는 외형이다. 키는 120센티미터에 무게는 28킬로그램으로 작고 가녀린 편이다.
동력은 최장 12시간 사용이 가능한 리튬이온배터리를 탑재했다. 시속 3킬로미터의 속도로 이동이 가능하다. 목, 어깨, 팔꿈치, 손가락 등에 20개의 모터를 달아서 정교한 움직임을 보인다. 주변 사물과 사람의 표정을 인식하기 위해 마이크 4대, 카메라 4대, 터치센서 5개, 중력센서 2개를 탑재했다. 문자와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가슴에는 10인치 모니터를 부착했다. 무선인터넷에 접속해서 학습정보를 저장하고 내려받기도 한다.
페퍼의 특이한 점은 사람의 감정 상태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열린 시연회에서도 손정의 회장과 일본어로 큰 걸림돌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손 회장이 웃음을 보이자 “진심으로 웃는 것 맞나요? 웃는 모양의 눈이 아닌데요.” 하고 지적을 했다. 당황한 손 회장이 활짝 웃자 “바로 그 눈이에요” 하고 판단을 내렸다.
페퍼는 학습 능력도 갖췄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 얻게 된 데이터를 무선인터넷을 통해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하기 때문에 접촉이 늘어날수록 감정인식 기술도 정교해진다. 내년 2월에 19만 8천 엔(약 200만 원)의 가격으로 출시한다고 밝혔지만 감정인식 기술 개발은 계속될 예정이다. 손 회장은 감정인식 기술업체 ‘코코로 SB’를 설립하고 대표직을 맡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한편으로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는 호칭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사람의 표정을 보고 감정 상태를 인식해서 사전에 정해진 반응을 보일 뿐이지 로봇 자체가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손 회장도 “감정에 대한 기능은 완전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가진 비전의 첫 걸음”이라고 설명하며 우선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 결국에는 감정을 가진 로봇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람과 구별할 수 없는 대화능력 갖춘 슈퍼컴퓨터
페퍼가 인식과 동작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인간처럼 생각하고 대화하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슈퍼컴퓨터 ‘유진 구스트만’이 증명했다. 러시아 프로그래머 블라디미르 베셀로프(Vladimir Veselov)와 우크라이나 프로그래머 유진 뎀첸코(Eugene Demczenko)가 공동으로 개발한 이 슈퍼컴퓨터는 인간의 대화를 분석해 학습함으로써 실제 사람 수준의 대화를 하는 것이 특징이며 65년만에 처음으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튜링 테스트’는 최초의 컴퓨터를 만든 전설적인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 “기계도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해 1950년 고안해낸 검증법이다. 이번에 영국 왕립학회가 개최한 ‘튜링 테스트 2014’에서는 30명의 심사위원들이 각 5분씩 컴퓨터 채팅으로 대화를 한 후 인간인지 프로그램인지를 가려내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튜링 테스트는 심사위원의 30퍼센트 이상이 인간인지 컴퓨터인지 판별할 수 없다고 결정하면 통과한 것으로 인정된다. 유진은 33퍼센트의 심사위원이 합격점을 주었다. 유진은 우크라이나의 해안도시 오데사(Odessa)에 살고 있는 13세 소년으로 영어를 아주 잘하지는 못한다는 설정으로 참가한 덕분에 이따금 어눌한 표현을 사용해도 컴퓨터 프로그램임을 들키지 않았다. 튜링 사후 60년만에 ‘생각하는 기계’가 탄생한 것이다.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우리나라 업체가 2002년 개발한 대화형 프로그램 ‘심심이’처럼 그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흉내내서 그럴 듯하게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행사를 진행한 케빈 워릭(Kevin Warwick) 교수는 영국 레딩대학교의 발표자료를 통해 “질문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최초의 인공지능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유진 구스트만과 직접 대화를 나누려면 홈페이지(http://default-environment-sdqm3mrmp4.elasticbeanstalk.com)에 접속해 영어로 질문을 타이핑하면 된다.
- 임동욱 객원편집위원
- im.dong.uk@gmail.com
- 저작권자 2014-06-12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