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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권예슬 리포터
2023-09-14

한 끗 차이인 독과 약, 약만 골라 합성한다 같지만 다른 이성질체, 합성 단계부터 선택적으로 골라 유용한 약물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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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의약품 합성에 있어 카이랄성 고려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Wikipedia

1957년대 유럽에는 산모들의 인기를 끈 신약이 개발됐다. 독일의 제약사가 경련 진정제를 개발하던 중 발견한 ‘탈리도마이드’라는 약물이다. 탈리도마이드는 임신부의 입덧 방지 효과가 있어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약 5년 뒤, 탈리도마이드의 판매가 금지됐다. 약물을 섭취한 산모들이 팔다리가 없거나 짧은 기형아를 출산했기 때문이다. 약 1만 명의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 이 사건은, 조사 결과 분자가 가진 ‘카이랄성’을 고려하지 않아 생긴 문제인 것으로 밝혀졌다.

탈리도마이드처럼 자연계의 많은 분자는 자신과 똑 닮은 ‘쌍둥이 분자’를 가지고 있다. 구성하는 원소의 종류와 개수가 같아도 서로 완전히 다른 성질을 나타낸다. 특히 쌍둥이 분자가 서로를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은 형상을 띈 특성을 거울상 이성질성 혹은 카이랄성이라고 한다. 두 유형은 매우 다른 특성을 보일 수 있다. 가령, 탈리도마이드는 R형과 S형으로 구분되는데, R-탈리도마이드는 진정 및 수면 작용이 있지만, S-탈리도마이드는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부작용이 있다. 혈관 생성이 억제되며 태아가 필요한 영양분을 혈관으로 공급받지 못해 기형아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한쪽 유형이 유용할지라도, 다른 유형의 이성질체는 독약이 될 수 있다. 독과 약은 한 끗 차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유용한 이성질체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비대칭반응은 아직까지 현대 화학의 난제로 꼽힌다. 국내 연구진이 자연에 풍부한 탄화수소로부터 카이랄성을 고려하여 의약품의 원료 물질을 합성할 수 있는 화학반응을 연달아 제시하며 주목받고 있다.

▲ 분자식은 같지만 서로 다른 물리‧화학‧광학적 성질을 갖는 분자를 이성질체라고 한다. 파스퇴르는 셀 수 없이 많은 화합물이 거울상 이성질체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혔다. ⓒWikiepedia

 

촉매를 만난 탄화수소의 변신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지난 8월 2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카탈리시스(Nature Catalsis)’에 탄화수소로부터 항생제 원료 물질인 ‘카이랄 베타-락탐’을 합성하는 화학반응을 개발했다고 보고했다. 베타-락탐은 탄소 원자 3개와 질소 원자 1개로 이뤄진 고리 구조의 화합물로 페니실린, 카바페넴, 세팔렉신 등 주요 항생제의 골격이다.

페니실린 구조가 규명된 지 80여 년이 지났지만, 베타-락탐을 카이랄 선택적으로 합성하기는 어려웠다. 시판 베타-락탐 의약품은 유용성을 지닌 유형만 선택적으로 제조하기 위해 합성과정에서 ‘카이랄 보조제’를 추가로 투입한다. 합성 단계가 복잡해지고, 제조 단가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보조제 제거를 위해 추가로 화학물질을 투입해야 해서 폐기물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IBS 연구진은 2019년 탄화수소 물질인 ‘다이옥사졸론’과 자체 개발한 촉매를 이용해 카이랄 감마-락탐을 합성하는 데 최초로 성공한 바 있다. 당시 5원환 구조인 감마-락탐은 카이랄 선택적으로 합성했지만, 4원환 구조의 베타-락탐을 합성하지는 못했다. 베타-락탐은 감마-락탐보다 더 쓰임이 많지만, 합성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 더 제조가 까다롭다. 또, 이 반응을 위해서는 값비싼 이리듐 촉매를 써야 한다는 한계도 있었다.

▲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2019년 두 종류의 카이랄성 감마-락탐 중 필요에 따라 한쪽 유형만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촉매를 최초로 개발했다. ⓒIBS

 

 

촉매반응으로 시장 가치 700배 높인 물질 합성

이번 연구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풍부하게 존재하는 니켈 촉매를 이용하여 제조가 까다로운 베타-락탐을 카이랄 선택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제시한 반응은 두 유형의 카이랄 베타-락탐 중 원하는 유형만을 95% 이상의 정확도로 골라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다. 니켈과 다이옥사졸론의 반응 과정에서 생기는 니켈-이미도 중간체가 베타 위치의 탄소와 선택적으로 반응하여 원하는 베타-락탐 골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시판 공정에서는 항생제 합성에 필요한 베타-락탐 원료를 8단계에 거쳐 합성했지만, 연구진이 제시한 촉매반응은 보조제 장착 및 제거 과정이 필요 없어 약 3단계 정도로 절차를 대폭 단축할 수 있다. 게다가, 원료 물질에 비해 합성된 물질은 시장 가치가 700배가량 높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 연구진이 제시한 화학반응을 거치면 의약품 및 천연물질의 합성 절차를 대폭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IBS

한편, 연구진은 천연물 등 복잡한 화학 구조의 물질에 베타-락탐 골격을 높은 정확도로 도입하는 데도 성공했다. 기존 의약품 합성 전략보다 간단하게 후보 약물이 될 새로운 물질을 합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를 이끈 장석복 단장은 “페니실린, 카바페넴과 같은 주요 항생제의 골격인 카이랄 베타-락탐을 손쉽게 합성해냈다”며 “유용 물질의 합성과정을 간소화해 산업에 이바지하는 동시에 신약 개발을 위한 다양한 후보물질 발굴도 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저작권자 2023-09-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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