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난 6일 한반도를 강타했다. 힌남노가 준 피해는 상당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고로(용광로) 가동 중단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경북 포항에서만 매일 2,000t 가량의 재난쓰레기가 쏟아진다. 평상시보다 약 10배 많은 양이다.
설상가상으로 한반도 남쪽에서는 3개의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 제12호 태풍 무이파는 중국 상하이로, 제13호 태풍 므르복은 일본 동쪽 해상을 향하면서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주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14호 태풍 난마돌은 제주도를 직접 통과하지는 않지만, 19일 새벽 제주 해상 290km 부근까지 근접하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 해 평균 3개의 태풍이 7~9월 사이 우리나라에 상륙해 피해를 준다. 기후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앞으로는 더 강력한 태풍이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태풍 발생 빈도는 줄지만, 더 강력해질 것
우리는 앞으로 더 심한 태풍을 자주 맞닥뜨리게 될까. 태풍과 허리케인을 포함한 열대저기압은 지구 상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경제적으로도 피해가 큰 기상재해다.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만, 지구온난화가 열대저기압의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20여 년간의 기후 연구는 지구를 가로·세로 100km 이상의 격자로 쪼개 미래 기후연구를 예측했다. 이 때문에 열대저기압과 같은 작은 규모의 기상현상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웠다.
최근 들어서야 격자 간격을 조밀하게 만든, 정확한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 2020년 발표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IBS 기후물리 연구단은 대기와 해양을 각각 25km와 10km의 격자 크기로 나눈 초고해상도 기후모형을 이용해 태풍 등 작은 규모의 미래 기상·기후 변화를 시뮬레이션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수행된 미래 기후 변화 시뮬레이션 연구 중 격자 간격이 가장 조밀한 결과로, 생성된 데이터만 1TB(테라바이트) 하드디스크 2,000개의 용량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현재 수준보다 2배 증가하면, 태풍의 발생 빈도 자체는 줄지만 3등급 이상의 강한 태풍이 50%가량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결과를 내놨다. 2012년 발생한 ‘볼라벤’과 ‘산바’, 2019년의 ‘링링’, 2020년 한반도를 강타한 ‘바비’, ‘마이삭’ 등이 3등급 이상의 강한 태풍에 해당한다. 연구결과는 2020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공개됐다.
적도지역에서 과잉된 열로 인해 대기는 적도 지역에서 상승하여 중위도 지역에서 하강하는 ‘해들리 순환(Hadley circulation)’이 발생한다.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로 인해 온실 효과가 강화되면, 이 해들리 순환이 약화된다. 대기 순환이 느려진다는 것으로, 이는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열대성 저기압이 발생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든다.
연구진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 4배 증가한 상황을 가정하여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 농도 현재보다 2배 증가하면 해들리 순환이 약화되며 열대저기압의 발생빈도가 감소한다고 예측했다. 반면, 대기 중 수증기와 에너지는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태풍이 한 번 발생하면 3등급 이상의 강한 태풍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약 50% 높아진다. 이산화탄소가 4배 증가한다고 해서 강력한 태풍 발생 빈도가 더 높아지진 않았다. 다만, 각 열대저기압에 의한 강수량은 현재 기후 대비 약 35% 증가해 홍수 위험을 높일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의 공동 교신저자인 이순선 IBS 연구위원은 “시뮬레이션 결과는 최근 30년간 기후 관측 자료에서 발견된 추세와 상당히 유사하다”며 “지구온난화가 이미 우리의 기후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이후 열대저기압 발생 수 13% 감소
태풍의 미래를 엿보기 위해서는 태풍의 과거부터 살펴봐야 한다. 20세기 이후 열대성저기압의 총 발생 수는 감소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과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소(CRISO) 등으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진은 1850년부터 2012년까지의 열대성저기압 발생 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20세기 이전(1850~1900년)과 비교해 20세기에 전 세계의 열대성저기압 발생 수는 13%가량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가 위치한 북반구는 16%가량 감소했다. 연구결과는 지난 6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실렸다.
연구진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인위적 지구온난화가 일으킨 변화만을 추려내기 위해 산업화 전후 기간의 태풍 발생 경향을 다시 분석했다. 산업화 이전(1901~1950년)에 비해 산업화 이후(1951~2010년) 태풍 발생이 전 세계적으로 20%가량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적 기후 전문가들이 모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내린 결론도 유사하다. IPCC는 지난 해 8월 ‘6차 보고서’를 발표하며 지난 40년 동안 태풍 발생 빈도는 줄었지만, 3등급 이상의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 발생 비율이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서 작성에는 이준이 IBS 기후물리 연구단 연구위원(부산대 교수)이 총괄주저자로 참여했다. 국내 연구자가 총괄주저자로 선정된 것은 1988년 IPCC가 설립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한반도 태풍의 미래…태풍 영향 인구 9.4배 증가
이처럼 기후과학자들의 연구는 미래에 태풍의 총 발생 수는 줄지만, 강력한 태풍은 많아질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모은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 국민에게는 어떠한 변화를 만들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 연구진은 지난 4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연구에서 우리나라를 3등급 이상의 강력한 열대성저기압의 영향을 받는 인구 규모 변화가 가장 큰 10개국 중 하나로 뽑았다.
연구진은 과거 열대성저기압 자료와 기후모델을 결합한 뒤, 1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확률까지 고려하여 수만 개의 미래 열대성저기압을 모사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1980~2017년과 비교해 2015~2050년까지 강력한 열대성저기압의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 인구는 상대적으로 9.4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절대적인 영향 인구는 5,94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상대적 영향 인구 변화가 큰 국가로는 4위, 절대적 변화로는 3위에 해당한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역시 계속 심화되고, 강력한 태풍의 공격 역시 자주 찾아오게 될 것이다. 이례적으로, 2020년 전 세계 총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가 무색하게도, 2020년 연평균 지구 지표 기온 상승 값은 관측 시작 이래 두 번째로 높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국지적인 날씨 변화에는 영향을 주었지만, 기후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어느 정도의 사회‧경제적 노력이 필요한지를 시사하는 바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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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2-09-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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