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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성규 객원기자
2021-06-29

인간보다 초파리 정자가 더 큰 까닭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장소가 크기에 영향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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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크기는 동물 종마다 매우 다르다. 가장 작은 것은 동물성 플랑크톤의 일종인 민물 윤충(輪蟲)으로서 길이가 0.002㎜에 불과하다. 인간의 정자는 그보다 조금 큰 0.05㎜ 정도다.

그럼 정자의 길이가 가장 긴 동물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몸길이가 2~3㎜밖에 되지 않는 ‘드로소필라 비푸르카(Drosophila bifurca)’라는 이름을 지닌 초파리다. 이 초파리의 정자는 자기 몸길이의 수십 배에 달하는 6㎝까지 길어질 수 있다. 물론 굵기가 너무 가늘어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지만 말이다.

정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동물 세포로 불리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정자의 크기는 이처럼 체구에 비례하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육상동물인 코끼리의 경우 조그만 생쥐의 정자보다 크기가 더 작다. 크기뿐만 아니라 모양 역시 다양하다. 인간의 정자는 머리가 둥글고 매끈하지만, 일부 쥐의 경우 머리 모양이 갈고리처럼 생겼다. 심지어 어떤 새들은 코르크따개 모양의 정자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정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동물 세포로 불리기도 한다. 이 같은 정자의 다양성에 대해 과학자들은 정자가 난자를 수정하기 위해 경쟁하는 방식이나 암컷이 정자를 선택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설명해왔다.

정자의 크기가 동물 종마다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지난 100년 동안 진화생물학의 주요 관심사였다. 왜냐하면 정자는 어떤 유기체로부터 온 것이든 간에 난자를 수정한다는 똑같은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체내수정 동물 정자가 6배 이상 길어

그런데 정자의 크기를 결정하는 새로운 요소를 밝힌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동물학과 연구진이 발표한 그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장소 역시 정자의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수정 장소가 정자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기 위해 산호에서부터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3,200여 종 이상의 동물 종에서 정자 크기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장소를 기준으로 각 종을 분류했다.

포유류, 조류, 곤충처럼 체내수정을 하는 종에서는 정자가 암컷의 체내에 있는 난자와 수정한다. 그에 비해 성게와 물고기처럼 체외수정을 하는 종들은 정자와 난자가 물속으로 방출돼 수정이 암컷의 몸 밖에서 일어난다.

연구 결과 체내수정을 하는 동물들은 체외수정을 하는 동물에 비해 정자가 평균 6배 이상 길고 크기가 더 빠르게 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동물학과의 론다 스누크(Rhonda Snook) 교수. ©Stockholm University

이 연구의 저자인 론다 스누크(Rhonda Snook) 교수는 “정자가 외부로 방출되는 경우 수컷은 정자의 크기를 작게 해서 더 많은 수의 정자를 생산한다. 그러나 체내수정을 하는 경우 수컷은 다른 정자와 더 잘 경쟁할 수 있도록 큰 정자를 만들고, 암컷 역시 더 큰 정자를 선호한다”라고 말했다.

즉, 체외수정을 하면 정자가 수영을 해서 가야 하는 거리가 멀 뿐더러 살아서 난자를 만날 가능성이 적으므로 크기보다는 정자 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에 체내수정은 여행 거리가 짧아서 정자의 수보다는 크기를 키우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암컷과의 상호작용 클수록 빨리 진화해

또한 연구진은 ‘정자포획(Spermcasting)’이라는 불리는 세 번째 형태의 수정도 조사했다. 정자포획이란 외부로 방출된 정자를 암컷이 물에서 걸러내어 자신의 체내에 있는 난자와 수정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수정 형태는 해면동물, 산호, 따개비류, 일부 연체동물에서 발견된다.

그 결과 정자포획을 하는 동물들은 정자 크기가 체외수정의 경우처럼 작지만, 체내수정을 하는 동물처럼 정자가 빠르게 진화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정자포획은 체내수정과 체외수정의 혼합을 나타내며, 수정 과정의 어떤 부분이 정자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할 기회를 주었다”라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에콜로지&에볼루션(Nature Ecology and Evolution)’ 최신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정자와 암컷 사이의 상호작용이 오늘날 동물에서 볼 수 있는 정자 크기의 다양성과 관련이 있다며, 정자와 암컷 사이의 상호작용 가능성이 클수록 정자는 더 빨리 진화한다고 밝혔다.

그럼 인간의 정자는 왜 체외수정을 하는 동물과 거의 비슷할 만큼 크기가 작을까?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인간처럼 몸집이 큰 동물의 경우 암컷의 생식기관 안에서 정자가 희석된다”며 “정자의 관점에서 보면 희석이 암컷 체내에서 일어나든 물에서 일어나든 상관없다”라고 주장했다.

즉, 희석이 정자를 작게 유지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암컷 체내의 작은 공간에 정자가 갇혀 있게 되면 정자가 커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21-06-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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