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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페트병이 바닐라 향으로 변신 유전자 조작 대장균 이용해 바닐린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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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향인 바닐라는 멕시코가 원산인 난초과 덩굴성 식물의 열매다. 아즈텍제국을 점령한 스페인이 바닐라를 유럽에 소개한 것은 1520년이다.

이후 유럽 왕실에서는 한동안 바닐라 열풍이 일어났으며, 특히 대영제국의 기초를 확립한 엘리자베스 여왕 1세는 바닐라의 맛에 사로잡혀 자신이 먹거나 마시는 모든 것에 바닐라를 첨가하도록 했다.

영국의 과학자들이 버려지는 페트병을 이용해 바닐라 향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콩깍지처럼 열리는 바닐라의 녹색 열매에서는 아무런 맛이나 향이 나지 않는다. 온도를 높여 효소를 활성화하고 수분을 증발시키는 과정을 약 4개월 정도 반복해야 녹색의 바닐라콩이 향기로운 흑갈색의 바닐라콩이 된다.

이처럼 가공 과정이 복잡할뿐더러 바닐라 식물은 수정 및 재배도 매우 까다롭고 어렵다. 그 때문에 바닐라는 사프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향신료다. 사실 바닐라 향이 나는 식품 중 진짜 바닐라를 써서 만든 건 전체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바닐라는 대표적인 향 성분 몇 가지만을 담고 있는 바닐라의 합성 대체품인 바닐린이다. 무색의 결정성 고체로서 공업적인 합성법으로 생산되는 바닐린의 약 85%는 화석연료를 이용한 석유화학에서 얻어진다.

바닐린은 식품과 화장품 산업뿐만 아니라 의약품, 세척제, 제초제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중요한 화학물질이다.

테레프탈산의 79%를 바닐린으로 변환

그런데 최근에 영국의 과학자들이 버려지는 페트병을 이용해 바닐라 향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바닐린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과학자들이 사용한 것은 바로 유전자가 조작된 대장균이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의 연구원들은 음료수병에 사용되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를 공학적으로 만들어진 돌연변이 효소를 사용해 테레프탈산(TPA)으로 분해했다. 테레프탈산은 PET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성분 중 하나다.

그 뒤 유전자 조작 대장균을 이용해 테레프탈산을 바닐린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맥주를 양조할 때와 같은 조건으로 미생물이 섞인 용액을 하루 동안 37℃로 데운 결과 테레프탈산의 79%를 바닐린으로 변환시켰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영국왕립화학회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그린 케미스트리(Green Chemistry)’ 최신호에 게재됐다.

PET를 바닐린으로 전환하는 공정 개요. ©Green Chemistry

유전자 조작 박테리아를 이용해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바닐라 향 같은 고부가가치 화학물질로 전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에든버러대학의 조안나 새들러(Joanna Sadler)는 “이는 생물학적 시스템을 사용해 플라스틱 폐기물을 가치 있는 산업용 화학물질로 업사이클링한 첫 번째 사례로 순환경제에 흥미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화장품이나 기타 용도로 적합

페트병은 비닐봉지에 이어 해양을 오염시키는 두 번째로 흔한 플라스틱이다. 전 세계적으로 1분마다 약 100만개의 페트병이 판매되고 있으며, 그중 14%만이 재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재활용되는 페트병도 의류나 카펫의 불투명한 섬유로만 변할 수 있다. 따라서 플라스틱은 1회 사용 후 재료로서의 가치를 약 95% 잃는다고 본다.

영국왕립화학회의 편집장 엘리스 크로포드(Ellis Crawford)는 “이것은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바이오테크놀로지를 흥미롭게 이용한 사례이다”라며 “미생물을 이용해 환경에 유해한 폐플라스틱을 중요한 상품으로 만든 것은 친환경 화학의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라고 밝혔다.

나무의 리그린이나 석유화학이 아닌 의외의 물질에서 바닐라 향을 추출한 것은 이게 처음은 아니다. 일본 국제의료센터의 야마모토 마유 박사는 소·염소·말 등 초식동물의 배설물에서 바닐라 향(바닐린)을 추출하는 데 성공해 2007년 이그노벨상을 받았다.

또한 프랑스의 바이오테크 기업 에놀리 사는 정밀 발효기술을 이용해 쌀겨에 존재하는 페룰산에서 바닐라 향을 내는 바닐린 분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마유 박사의 바닐린은 배설물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상품화되지 않았으며, 쌀겨에서 얻은 바닐린은 천연물이라는 이유로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에든버러대학의 연구진 역시 플라스틱 폐기물에서 직접 추출한 바닐린이 식품소비 규제기준을 충족시킬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대량 생산 화학물질로서 화장품이나 기타 용도로는 적합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진은 바닐린뿐만 아니라 PET 폐기물로 향수에 사용되는 것과 같이 다른 소중한 분자를 만드는 공정을 계속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21-06-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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