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미생물군과 중추신경계 사이에 생화학적 신호가 오간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과학자들은 장내 미생물군이 뇌질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왔다.
캐나다 몬트리올대 연구팀은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7일 자에 발표한 새로운 연구에서 실제로 장 감염이 파킨슨병과 유사한 병리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들은 이 연구에서 인간 질병 관련 유전자를 제거한 쥐 모델을 이용했다.
이번 발견은 파킨슨병이 주요 면역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팀의 최근 연구를 확장한 것으로, 파킨슨병 치료 전략에 새로운 길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몬트리올대의 미셸 데자르댕(Michel Desjardins) 교수와 루이-에릭 트뤼도(Louis-Eric Trudeau) 교수가 이끈 이 연구에는 맥길대 몬트리올 신경학 연구소 하이디 맥브라이드(Heidi McBride) 교수와 사만다 그루언하이드(Samantha Gruenheid) 부교수가 참여했다.
65세 이상 노인 중 2%가 파킨슨병 환자
파킨슨병은 치매 다음으로 흔한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으로,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1000명 당 1~2명의 환자가 발생하며,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약 2% 정도가 앓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병의 주요 증상은 운동장애로서, 움직임이 느려지고 안정된 상태에서 손 떨림 등이 일어나며 근육 경직이 나타난다.
전 세계 파킨슨병 환자는 1990년 250만 명에서 2016년에는 610만 명으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비교적 보수적으로 예측하더라도 앞으로 30년 동안 환자 수가 두 배로 증가해, 2050년쯤에는 1200만 명이 이 병으로 고통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킨슨병의 약 10%는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와 연결되는 핑크1(PINK1)과 파킨(PARKIN) 같은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들은 훨씬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이 발병할 수 있다. 그러나 쥐 모델에서는 이 같은 돌연변이가 파킨슨 증상을 일으키지 않아 많은 연구자들은 쥐 모델이 파킨슨병 연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감염과 파킨슨병 관계에서 새로운 치료법 찾아
파킨슨병 연구 전문가인 트뤼도와 맥브라이드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실험용 쥐들은 보통 세균이 없는 시설에서 기르고 있는데, 이런 조건은 지속적으로 감염성 미생물에 노출돼 있는 인간의 환경을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생물학자인 그루언하이드 교수는 감염과 파킨슨병 사이의 연관성이 질병을 일으키는 면역반응에 대한 추가 연구를 촉진함으로써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고 시험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작용성(dopaminergic) 뉴런으로 불리는 뇌의 일부 뉴런들이 점차적으로 사멸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뉴런이 이렇게 손실되면서 떨림과 경직을 포함해 파킨슨 환자에게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운동장애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도파민 작용성 뉴런들이 왜 사멸하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신경과학자인 트뤼도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파킨슨병 모델은 뉴런들이 그 안에 쌓인 독성 성분 때문에 죽는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 모델들은 파킨슨병이 운동장애나 어떤 눈에 띄는 뉴런 손실이 나타나기 몇 년 전에 시작된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이번 연구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몬트리올 팀은 파킨슨병 관련 유전자를 제거한 쥐에게 가벼운 장 증상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면 나중에 이 쥐들에게서 파킨슨병과 같은 증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일부 파킨슨병, 장에서 시작되는 자가면역질환
파킨슨병 유사 증상(Parkinson's-like symptoms)은 파킨슨 환자를 치료하는 약인 엘-도파(L-DOPA)를 투여하면 일시적으로 역전시킬 수 있다.
데자르댕 교수와 몬트리올대 병원 연구센터(CRCHUM) 디아나 마테우(Diana Matheoud) 교수는 연구에서 정상적인 쥐들은 장 감염에 적절하게 반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파킨슨병과 관련 있는 PINK1 유전자가 결여된 쥐들은 면역체계가 과잉 반응해 자신의 건강한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 면역(auto-immunity)’을 촉발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 결과는 도파민 작용성 뉴런들이 독소 축적으로 죽기보다는 면역세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감염된 돌연변이 쥐의 뇌에서 자가반응을 하는 독성 T임파구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고, 이 임파구들은 실험실 배양접시에서 건강한 뉴런을 공격할 수 있었다.
논문 공동 제1저자인 마테우 교수와 타일러 캐논(Tyler Cannon) 대학원생(미생물학)은 이번 연구 결과, 일부 형태의 파킨슨병은 환자가 운동장애 증상을 알아차리기 몇 년 전 장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이는 자가면역질환으로서, 예방치료를 위한 시간 여유가 존재한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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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7-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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