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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객원기자
2011-09-02

생물다양성보다 '유전자 다양성' 중요 기후변화로 2080년까지 84%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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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2080년에는 지구상 동식물종이 지닌 유전자 다양성(genetic diversity)이 84퍼센트나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네이처지의 기후변화저널(Nature Climate Change) 최근호는 ‘지구적 기후변화에 연결된 은성 생물다양성 손실(Cryptic biodiversity loss linked to global climate change)’라는 논문을 소개하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 '종' 위주의 생물다양성보다는 '유전자' 위주의 은성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Microsoft
동식물종이 환경변화에 적응하려면 유전자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 원동력이 ‘은성’이다. 은성(cryptic, 隱性)이란 유전자 내에 숨겨진 정보로 인해 뚜렷한 특징이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유전과 진화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은성 생물다양성’이란 특정 종의 각 개체들이 지닌 유전자적 특이성으로 인해 다양한 형질의 자손이 태어날 수 있음을 뜻하는 용어로, 은성 다양성이 큰 생물종은 기후변화 등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높아지지만 지금까지는 생물다양성 조사에 이 항목이 포함되지 않았다.

독일의 생물다양성-기후변화 연구센터(BiK-F)와 젠켄베르크 자연과학협회(Senckenberg Gesellschaft für Naturkunde)는 공동 연구를 실시해 특정 생물종의 은성 생물다양성을 조사했다. 기존의 ‘종(species)’ 분류법을 벗어나 종 자체의 유전자를 밝혀내는 방식이다.

2080년까지 84퍼센트에 달하는 ESU 사라질 전망

연구진은 중부유럽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9종의 곤충을 대상으로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했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세포내 기관으로, 자체적으로 작은 유전체를 가지고 있다. 대상 곤충은 하루살이, 날도래, 강도래 등 찬 물에서만 서식하고 이동능력이 떨어지는 종들이다. 이들은 서식지의 기온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을 찾아내기에 적합하다.

유전체 내에서 ‘진화적으로 의미있는 단위(ESU, Evolutionary Significant Unit)’를 찾아내는 것이 연구진의 임무였다. ESU란 특정 종의 어느 개체가 다른 개체들과 유전적으로 다름을 나타내는 지표를 뜻하며, 하나의 ESU로 인정받으려면 종 내에서 유전적 유사성과 생태적 교환성이 발견되어야 한다.

기후변화가 진행됨에 따라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산맥이나 중부유럽의 알프스산맥 등 일부 고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의 평균기온이 상승하게 된다. 이번 연구에서 조사된 수서곤충들은 서늘한 기후에서만 살아가기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동유럽의 카르파티아산맥과 남유럽의 피레네산맥, 독일의 중부고원 등 고도가 비교적 낮은 지역에 서식하는 생물이 가장 먼저 희생될 것으로 예측된다.

유전자 내에 숨겨진 은성 다양성이 보존된다면 지금은 동일한 종으로 분류되는 개체들도 오랜 시간을 통해 진화를 거듭해 별도의 종으로 분화할 수 있다. 그러나 논문은 “기후변화로 인해 대부분의 혈통은 분화가 완성되기도 전에 사라질 것”이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 흰색 선은 2080년까지 평균기온이 4도 상승했을 때 사라져 버릴 유전자 계통을 가리킨다. ⓒNature

연구진이 발견한 ESU를 기후변화 정부간 위원회(IPCC)의 기후변화 모델에 적용시키자 2080년까지 현재의 ESU 중에서 84퍼센트가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한의 탄소배출 상황을 적용해도 손실률은 59퍼센트에 달했다. 전체 생물종의 3분의2 가까이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반면에 종 자체의 생존만을 따져보면 유럽의 평균기온이 2도 정도 상승했을 때 전체 9종 중에서 8종이 살아남고 4도가 높아져도 6종이 살아남는 것으로 예측됐다. 유전자 다양성이 생물다양성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독일 젠켄베르크 연구소와 겔른하우젠 자연사박물관에 근무하며 연구를 이끈 카스텐 노박(Carsten Nowak) 연구원은 사이언스데일리(Science Daily)와의 인터뷰에서 “유전자 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며 진화의 기본물질”이라고 소개하면서도 “기후변화가 심해졌을 때 ‘종’ 자체는 살아남겠지만 유전자 안에 담겨 진화를 통해 발전해온 은성 다양성은 급격히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뮌헨 바이에른주립 동물연구센터의 곤충학자 미하엘 발케(Michael Balke)는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를 겪으면서 전통적인 개념의 ‘종’들이 살아남는다고 해도 숨겨진 다양성에는 현저한 손실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미래 생물자원을 보호하려면 유전자의 은성 다양성 검토해야

생물다양성은 인간에게도 중요하다. 동식물에서 약품의 원료나 에너지를 뽑아내는 등 생물자원을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속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생물자원을 상품화시켰을 때 국가간에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의 ‘나고야 생물다양성 협약(Nagoya Protocol)’이 발효되기도 했다.

▲ 기후변화로 인해 평균기온이 상승하면 북유럽과 알프스산맥 등 일부 고지대에서만 유전자 다양성이 보존될 것이다. ⓒMicrosoft
논문 연구진은 미래의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있어 ‘유전자 다양성’과 ‘은성 다양성’ 항목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구에 참가한 스테픈 파울스(Steffen Pauls) 독일 생물다양성-기후변화 연구센터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생물다양성을 평가할 때 종의 숫자만을 강조했다”며 “지구온난화로 인한 유전자 다양성 문제도 심각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메드 조글라프(Ahmed Djoghlaf)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사무총장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유전학적인 측면을 살펴봄으로써 생물과 기후변화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데 더 나은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조글라프 사무총장은 현재 생물다양성의 지속가능한 사용과 보존에 대한 국가별 전략을 수립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이번 연구를 출발점으로 기후변화로부터 생물종을 보호하고 보존지구를 설정함에 있어서 새로운 기준이 세워질 전망이다. 노박 연구원은 생물다양성을 “현재로 고정된 형태가 아닌 진화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인 상태”라고 규정하며 “특정 유전자 계통이 사라지거나 은성 다양성이 감소하는 것을 막아야만 미래 동식물종이 입게 될 거대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동욱 객원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1-09-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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