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China’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싸구려, 짝퉁 등 부정적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와는 달리 오늘날 중국산 제품을 제외하고는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세상이 왔다. ‘메이드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A Year Without Made in China)’라는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듯이, 우리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은 중국산 부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던 중국이 최근 ‘글로벌 혁신기지’로 변모하면서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원은 지난 20일 발표한 보고서 ‘혁신강국 중국의 기술력과 한국의 대응’에서 이에 대해 “2006년 ‘중장기 과학기술계획’에서 ‘자주창신(自主創新)’을 발전목표로 제시한 이후, 기존의 추격·모방 전략에서 탈피해 혁신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자본·기술 집약적 산업의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Made in China’에서 ‘Created in China’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2010년 10월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12차 5개년 규획’을 발표하고 7대 전략적 신흥사업을 선정했다. 7대 전략적 신흥사업은 신재생에너지, 신에너지 자동차, 바이오, 첨단장비, 에너지 절약 및 환경보호, 차세대 정보기술, 신소재 등이다. 중국은 이 전략적 신흥사업의 비중을 2010년 2%에서 2020년 15%까지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R&D 투자국이며, 전 세계 R&D 인력의 20%를 보유한 인재강국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중국의 성장세가 바로 우리나라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력 사업은 맹추격, 신산업은 추월
중국이 한국을 압박하는 분야는 이제 더 이상 저가·저사양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찬수 수석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중국 제품들이 저가·고사양으로 무장함에 따라 한국은 ‘전방위 압박’에 노출돼 경쟁력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 기업의 생산성이 한국 기업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중국 기업의 기술력과 혁신역량이 얼마나 빠르게 제고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총요소생산성 분석을 수행한 결과, 중국기업의 연평균 총요소생산성 증가율(4.46%)이 한국(3.3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자, 자동차 등 기술 수준이 높은 하이테크, 미디엄-하이테크 산업에서 중국의 생산성 개선 속도와 기술진보율이 한국보다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렇다면 중국의 기세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일까.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주력 산업은 맹추격, 신산업은 추월’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전자,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은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으며 제약, 태양광, 전기자동차 등 신산업 분야는 이미 중국의 기술 수준이 한국을 추월했다는 것이다.
주력 산업별로 살펴보면, 먼저 전자산업에서는 TV 등 주요 제품에서 한·중 간 기술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상태로 드러났다. 중국은 이미 생산액과 R&D 투자 모두 한국을 추월했으며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생산수요를 기반으로 중국의 시스템 반도체 설계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자동차산업에서의 추격도 무섭다. 중국 자동차산업은 생산량 측면에서는 이미 2005년부터 우리나라를 능가했으며, R&D 투자액과 특허 건수에서도 2007년부터 한국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 자동차산업은 자주 브랜드 개발 및 선진기업 인수를 통해 제품 개발 능력에서 한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2005년 상하이차가 로버의 플랫폼을 인수한 이래 2009년 베이징차가 사브를, 2010년 지리차가 볼보를 M&A 했다. 이와 함께 상하이차, 둥펑차, 디이차 등은 제품개발력을 제고하기 위해 수천억원대의 자금을 R&D에 투자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등 신산업 격차 확대
하지만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역시 신산업이다. 제약, 태양광, 전기자동차 등 다양한 신산업에서 중국은 이미 우리나라를 넘어 그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
제약산업에서의 우리나라와 중국의 격차는 2003년 1.1배에서 2009년 2.7배까지 확대된 형국이다. 이는 중국이 R&D 투자를 확대한 한편 성화계획, 화거계획 등 기술개발정책을 계획적으로 추진해 기초연구 역량이 급성장한 결과이다.
태양광산업에서 중국은 우리나라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중국은 노동집약적인 웨이퍼, 셀, 모듈 부문 등에서 원가 우위와 과감한 투자로 2005년부터 생산량이 연 100%씩 성장해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여기에 고난도 공정기술이 요구돼 취약했던 폴리실리콘 부문도 최근 기술력을 확보,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는 중이다.
전기자동차 역시 중국이 몇 발짝 앞서나가고 있는 산업이다. 2010년 3월 민간인 대상으로 세계 최초로 전기자동차를 판매한 중국은 같은 해 8월 ‘에너지절약 및 신에너지차 산업발전계획(2010~2020년)’을 발표해 전기자동차 산업화를 대대적으로 천명했다.
이는 2020년 전기자동차 보급 500만대를 목표로 향후 10년간 17조원의 자금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이와 함께 희토류 등 소재와 전지, 모터, 제어시스템, 충전설비 등 전기자동차의 전 가치사슬을 동시에 지원·육성한다는 방침도 세우고 있다.
중국의 혁신역량을 활용하려면?
이렇게 규모의 우위를 바탕으로 빠르게 기술력을 확보하는 중국의 위협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찬수 수석연구원은 이에 대해 “대규모 설비투자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존 한국의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국가 혁신역량을 총집결해 한국의 기술 경쟁력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 수석연구원은 이를 위해 ▲ 대규모 정부 R&D 사업의 기획에 중국 변수에 대한 고려 강화, ▲ 유망 분야 선정·육성 종합 대책 마련 및 집중 지원, ▲ 스타 기업, 스타 연구자를 통한 질적 경쟁 추구, ▲ 대학, 연구소, 기업 등 R&D 주체 간 연계 강화를 강조했다.
박 수석연구원은 두 번째로 “주력 산업과 신산업에서 한국기업이 중국보다 ‘빠른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가와 기술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도록 파괴적 기술혁신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혁신역량을 활용하기 위한 전략도 제시됐다. 중국 R&D 센터 설립을 통해 중국을 혁신기지화하고 중국의 고급 기술인재를 선점하자는 것이다. 이미 주요 일본기업은 중국 대학을 A~F까지 6단계로 나누어 인력채용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지멘스, 인텔 등의 글로벌 기업들도 중국 대학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괄목상대’에 대한 대비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 김청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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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7-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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