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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입니까?” “예.” 한 고개.
“다리가 네 개입니까?” “아니오.” 두 고개.
“다리가 두 개입니까?” “예.” 세 고개.
“날 수 있습니까?” “아니오.” 네 고개.
“펭귄입니까?” “아니오.” 다섯 고개.
“닭입니까?” “맞았습니다.” “야호!!”
어려서 친구들과, 형제들과 즐기던 놀이 중의 하나인 스무고개 놀이이다.
출제자가 마음 속에 생각한 것을 질문을 통해 알아내는 놀이인데, 출제자는 ‘예’, 또는 ‘아니오’의 대답만 할 수 있고, 질문자는 스무 개의 질문 안에서 정답을 찾아야 한다. 다리가 네 개인 동물이 아니라는 답을 들으면 질문자는 동물 중에서 범위를 좁혀서 조류나 곤충류 등을 생각한다. 이때 “ ‘개’입니까? ”라는 질문은 어리석다. 현명한 질문이 빠른 정답을 얻는 데에 도움을 준다.
2000년 인간 유전자 지도가 발표되면서 인류는 생명현상 탐구의 첫 번째 큰 고개를 넘었다. 이 한 고개를 넘는 데에 인류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유전자 서열 발표 이후 바이오칩, 단백질 연구 등 유전자에서 단백질이 발현되기까지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분석은 다음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대사 작용에 의해 생성되는 물질들에 대한 탐구가 또 하나의 고개를 넘는 데에 기여하리라 예상된다.
생명탐구의 스무고개는 질문에 ‘예’ 또는 ‘아니오’ 라는 답을 듣는 데에 대부분 수 년 또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에게 자비로운 신이 있어서 질문을 던지자마자 그 자리에서 당장 대답을 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수 년 동안 골머리를 앓던 문제를 풀었을 때의 보람 또한 그만큼 크리라.
생명과학 연구는 참을성과 끈기를 가지고 장시간의 고된 실험을 통해 새로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낸다. 스무고개 안에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스무고개의 질문을 좀 더 현명하게 만들어서 한 고개를 넘어갔을 때에 답의 범위가 가능한 한 많이 좁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다리가 두 개인 동물을 찾는데, “비둘기?” “참새?” “까치?” 하면서 모든 새 종류를 들먹인다면 스무고개 안에 닭이라는 정답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이 경우에는 “날 수 있습니까?”가 보다 효과적인 질문이다. 앞서 했던 질문들에서 받은 답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대상 범위를 최소로 축소할 수 있도록 가능한 경우들을 차근차근 고려한 후, 종합적인 판단 하에 다음 질문을 조심스럽게 설정하는 두뇌플레이가 이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이다.
지금 우리의 생명탐구를 위한 연구활동들은 어떤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풀고 있는지 되짚어본다. 생각을 바꾸면 좀 더 좋은 길이 있는데 이를 못 보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비둘기?” “참새?” “까치?”하며 헤매고 있는 동안 수많은 환자들이 희망을 잃고 죽어가는 것은 아닌지?
21세기에 들어 생물학 연구자들의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는 시스템생물학은 시스템 과학과 생물학을 합친 개념으로 생물학에 시스템적 개념을 도입한다. 시스템생물학은 다윈의 진화론 이후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여러 분야의 생명정보들로부터 스무고개의 다음 질문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고자 한다. 유전체학, 전사체학, 단백질체학, 대사체학 등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분야들의 기존에 이루어진 연구결과들을 생물정보학 기술로 통합하여 유용한 지식들을 찾아냄으로써,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있어서 좀더 현명한 질문을 설정하려 한다. 설정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과정에서도, 각 분야의 연구인력과 첨단분석장비, 데이터베이스들을 모아서 유기적인 관계를 이룸으로써 보다 신뢰성 높은 연구결과를 얻으려 한다.
생명공학 연구 분야들의 협력 및 공동 연구가 필요한 시스템생물학 연구는 예산 및 인력 부족으로 아직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지 못해왔다. 그러나, 향후 10년간 국가에서 중점추진할 생명공학육성 기본계획인 『Bio-Vision 2016』에서 밝힌 바와 같이, 미래 신산업 창출기반 마련을 위한 핵심기술로서의 시스템생물학은 국내 연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된다. 생명탐구의 스무고개를 푸는 열쇠를 시스템생물학에서 우리 손으로 찾는 미래를 꿈꾸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 권경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
- 저작권자 2007-04-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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