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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곽수진
2006-04-04

미술을 분해하니 과학이었네 ‘아트스펙트럼 2006’ 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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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대 미술의 현황과 흐름’을 반영하고자 연령, 장르, 주제를 제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정된 작품들의 전시회 ‘아트스펙트럼 2006’에 다녀왔다. 이제까지 창의적인 작업으로 인정받았고, 앞으로 더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은 젊은 작가들의 15개 작품이 삼성미술관 리움에 전시돼 있다.


광학에서 말하는 스펙트럼은 가시광선 같은 빛을 분광기를 통해 분해하여 얻게 되는 일종의 성분 모음이다. 과학자들은 스펙트럼을 ‘알고자 하는’ 물질의 성분을 예측하는 데 사용한다. 예를 들어 가시광선을 프리즘을 통해 분해하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아무 색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빛이 사실은 일곱 가지의 빛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스펙트럼하면 무엇인가 다양하게 모여 있는 것을 연상하기 쉽다.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2층(2층이라고 하기엔 적절치 않다. 그래도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2층이라고 하자)부터 전시는 시작된다. 렘 쿨하스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공간을 설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언제나 이 공간은 네모난 고래 뱃속을 들어가는 듯 약간의 ‘공포스러움’이 느껴진다.


입구의 모퉁이를 돌자마자 이형구의 아마니투스 시리즈 두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공룡의 뼈가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에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룡의 뼈가 아니다. 그런데 골격들이 낯설지 않다. 만화캐릭터를 소재로 작품을 형상화시켰기 때문이다. 작가는 만화캐릭터의 뼈 구조를 나름대로 상상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어떤 캐릭터의 골격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아트스펙트럼에서 이형구의 작품을 맨 처음 배치한 데는 숨은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포즈가 움직임을 묘사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역동성과 공간 장악력만으로도 아마니투스 시리즈는 유쾌하다. 이미 만화를 통해 우리의 뇌 속에 저장되어 있는 만화 주인공의 이미지와 겹쳐져 더 즐겁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엉뚱하지만 기발한, 그리고 관찰력 높은 작가의 상상력이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이번 아트스펙트럼에 초청된 15개의 작품 중 과학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아트스펙트럼이 현재 우리나라 현대 미술의 현재를 조망한 것이라면 진짜로 놀라운 일이다. 미술작가들이 자신의 창작의 소재로서 또는 매개체로서 과학의 요소들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소영의 작품은 수십 대의 텔레비전을, 정정주는 가상의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의 렌즈를, 박상현과 김성환은 비디오카메라와 스크린을 매개체로 선택하고 있다.


2층의 전시를 마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만나게 되는 손정은의 ‘사랑 2006’에서 과학적 이미지는 더욱 적나라하게 차용되고 있다. 작가는 사랑의 요소(도취, 모호, 냉정, 나약, 의존 등)를 ‘추출’해 실험용 플라스크에 담고 유리로 덮개를 만들어 곱게 담아 놓았으며 유리 전면에 무엇을 담아놓았는지 설명서와 사용법, 주의사항 등을 적어 두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통속적이기에 고급 쇼 룸(show room)처럼 꾸며봤다"는 작가의 말이 미안할 정도로 공간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플라스크와 실린더의 연결은 화학실험실을 연상시킨다.


지하 전시장 중간을 차지하고 있는 최승훈+박선민의 ‘암호’는 조그만 분재와 화분을 암호 기호처럼 사용한 설치작품이다. 작가가 ‘식물문자작업’이라고 부르는 식물문자로 쓰인 편지도 한 벽을 채우고 있다. 기호학과 언어학에 대한 관심이 이런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는 작가는 소통의 경이로움과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 편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여러 가지 화분모양의 문자들이 쓰여 있기 때문이다.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아는 언어로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로 듣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을.


전시는 이준+정재호의 ‘Media Bottles'이 마무리하고 있다. 작품은 8개의 기둥이 벽 앞에 놓여 있고 그 기둥을 두 개씩 묶어 연결하고 있는 또 다른 4개의 기둥으로 전면에 배치되어 있는 구도다. 관객이 센서가 달린 4개의 병 위에서 손을 움직이면 뒤에 있는 8개의 병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병 옆에 설치되어 있는 타격봉이 병을 쳐서 소리가 난다. 동시에 병 속에 담겨져 있는 물도 연결되어 있는 다른 병 속의 물과 함께 물의 높이가 변하게 되고 그에 따라 소리도 다르게 난다. 작품을 통해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바랐던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을 거둔 것 같다. 엄숙으로 가득한 미술관의 공기가 계속되는 타악기 연주에 부서지고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각’이라는 주제만큼 ‘아트스펙트럼 2006’에서 미술은 더 이상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평면에 갇혀 있지도 않고, 일방적이지도 않다. 왜 그림을 보여주지 않냐며 투덜대던 어린 관람객의 말처럼 미술은 더 이상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미술의 이탈에 과학이 함께 있었다. 과학에 대한 예술가들의 사랑고백 같은 ‘아트스펙트럼 2006’은 5월 14일까지 개최된다.

곽수진
저작권자 2006-04-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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