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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정회빈 리포터
2026-07-21

새는 태어나기 전부터 날씨를 배운다 얼룩말핀치새의 더위 신호음이 알 속 태아의 뇌혈관 유전자 발현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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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는 배 속 아기가 내 말을 듣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기반한다. ⒸGetty Images
태교는 배 속 아기가 내 말을 듣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기반한다. ⒸGetty Images

임신 중인 부모가 배 속 아기에게 음악을 들려주거나 말을 걸어주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태교라고 부르는 이런 행동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내 말을 듣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기반한다.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아이가 더 똑똑해진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하지만, 사실 태아가 바깥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사람의 경우 임신 중반 이후 청각이 발달하기 시작하고, 임신 말기에는 엄마의 목소리와 말의 리듬 같은 소리 정보가 태아에게 전달될 수 있다. 실제로 신생아는 태어난 직후 엄마의 목소리나 부모가 쓰는 익숙한 언어 리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아는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소리를 통해 바깥 환경의 일부를 배워가고 있는 셈이다.

 

알 속 아기 새도 바깥소리를 듣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태아기 청각 학습이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 속에서는 자라는 새들도 부화하기 전부터 바깥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그 소리가 이후의 행동과 생리적 특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호주 건조 지대에 사는 작은 새인 얼룩말핀치(zebrafinch, 금화조)는 더위가 심해질 때 평소와는 다른 빠르고 높은 소리의 더위 신호음(heat call)을 낸다. 이 소리는 단순한 노래라기보다 더운 환경에서 헐떡이며 내는 짧은 신호에 가깝다. 행동생태학자 마리에트 박사는 10년 전, 부화 직전 알 속 배아가 이 더위 신호음에 노출되면 부화 후 새끼의 성장과 행동, 더위에 대한 반응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하였다.

얼룩말핀치새는 더위 신호음을 내서 알 속 새끼가 더위에 더 잘 적응하도록 한다. ⒸGetty Images
얼룩말핀치새는 더위 신호음을 내서 알 속 새끼가 더위에 더 잘 적응하도록 한다. ⒸGetty Images

이 발견은 부모 새가 알 속 새끼에게 “밖이 더울 수 있으니 준비하라”는 날씨 예보를 전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태어난 새끼는 실제로 더위를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소리만 듣고 앞으로 마주할 환경에 맞춰 자신의 발달 방향을 조정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떤 행동학적 변화가 나타났는지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소리가 어떻게 몸속 생리 시스템을 바꾸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10년 만에 밝혀진 더위 신호음의 비밀

그러던 중 지난 6월, 이 질문에 대한 후속 연구가 국제학술지 실험생물학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에 발표되었다. 이번 연구는 더위 신호음이 발달 중인 새의 뇌, 그중에서도 시상하부의 유전자 활동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았다. 시상하부는 뇌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영역이지만, 우리 몸의 체온, 대사, 스트레스 반응, 호르몬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 안의 온도 조절기가 실내 온도를 감지하여 난방과 냉방을 조절하듯, 시상하부는 몸 안팎의 정보를 받아 체온과 에너지 사용을 조율한다. 특히 더위와 추위에 반응해 몸이 어떻게 열을 만들고, 보존하고, 내보낼지를 결정하는 데 관여한다. 더위 신호음이 부화 후 더위 적응 능력을 바꾼다면, 몸의 온도와 대사를 조절하는 시상하부에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연구팀은 얼룩말핀치의 알을 일정한 온도에서 부화시키면서, 부화가 가까워지는 시기인 배아 발달 10일째부터 13일까지 하루 9시간씩 고온 신호음 또는 온도와 관련 없는 일반적인 접촉음을 들려주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알을 뜨겁게 만든 것이 아닌, 온도는 일정하게 유지한 채 오로지 소리만 다르게 들여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며칠 동안 소리 자극을 준 뒤, 연구팀은 부화 직전 14일째 배아에서 시상하부 조직을 채취하여 그 안에서 어떤 유전자들이 활발하게 작동하는지 분석했다.

더위 신호음을 들려준 얼룩말핀치새의 배아에서 시상하부를 채취하여 유전자 발현 변화를 분석하였다. ⒸJ Exp Biol
더위 신호음을 들려준 얼룩말핀치새의 배아에서 시상하부를 채취하여 유전자 발현 변화를 분석하였다. ⒸJ Exp Biol

분석 결과는 처음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연구진은 시상하부의 호르몬 조절 유전자들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측했으나, 호르몬 유전자들이 전반적으로 크게 바뀌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었다. 대신 혈관 평활근의 수축과 이완, 세포골격의 움직임과 관련된 유전자 발현이 더위 신호음을 들을 배아에서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활근은 혈관 벽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근육으로써 혈관을 조이거나 풀어주면서 혈류량을 조절한다. 뇌는 특히 열에 민감한 기관이라서 더운 환경에서는 뇌로 가는 혈액 흐름과 열 배출을 적절히 조절하는 일이 중요하다. 세포골격은 세포의 뼈대이자 모양을 바꾸는 내부 구조물이다. 세포골격의 변화는 세포가 더 유연하게 형태를 조절하고 환경 변화에 맞춰 반응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더위 신호음은 배아의 시상하부를 크게 바꾸기보다는 더위에 특히 취약한 뇌혈관 조절 장치를 미세하게 변화시킨 것이다.

더위 신호음을 들은 배아의 시상하부에서 뇌혈관 조절 관련 유전자 발현이 변화하였다. ⒸJ Exp Biol
더위 신호음을 들은 배아의 시상하부에서 뇌혈관 조절 관련 유전자 발현이 변화하였다. ⒸJ Exp Biol

 

어미 새의 울음소리가 뇌혈관을 미세하게 조절

이번 연구의 흥미로운 부분은 배아가 실제로 더운 환경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열을 받은 뒤 환경 변화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소리만 듣고 더위에 대비하는 쪽으로 유전자 발현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마치 일기예보를 듣고 아직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우산을 챙기는 행동과 비슷하다. 부모 새의 고온 신호음은 배아에게 날씨 예보와 같은 역할을 했고, 배아의 뇌는 그 정보를 생리적 준비 상태로 번역한 것이다. 10년 전 선행 연구는 알 속에서 들은 소리가 태어난 후 체온 적응 능력을 바꾼다는 현상을 보여줬다면, 이번 연구는 그러한 변화의 시작이 시상하부의 혈관 조절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실마리를 제시했다.

사람의 태교 음악과 얼룩말핀치의 고온 신호음 연구는 발달 중인 생명체가 주변 정보를 얼마나 정교하게 활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소리가 단순한 감각 경험을 넘어, 생명체가 미래 환경에 대비하도록 몸의 내부 프로그램을 조정하는 신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발달 중인 생명과 환경 사이의 대화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섬세하게 진행된다.

발달 중인 생명과 환경 사이의 대화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섬세하게 진행된다. ⒸGetty Images
발달 중인 생명과 환경 사이의 대화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섬세하게 진행된다. ⒸGetty Images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Prenatal acoustic communication triggers adaptive vascular programming in the developing avian brain, Subba et al., 2026, J Exp Biol

정회빈 리포터
acochi@hanmail.net
저작권자 2026-07-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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