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때로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멜로디가 된다. 하지만 자유낙하를 하는 빗방울 바로 아래에 심긴 아주 작은 씨앗도 이 소리를 여전히 편안하게 느낄까. 미국 매사츄세츠공대(MIT) 연구진은 흙 속 씨앗에게 빗소리는 기상 신호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비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진동에 반응해 씨앗이 더 빨리 발아한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4월 2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실렸다.
식물도 소리를 인식할 수 있다
식물은 생각보다 민감한 생명체다. 생존을 위해 주변 환경의 자극을 감지하고,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어떤 식물은 접촉하면 잎을 닫고, 어떤 식물은 독성 냄새에 노출되면 안쪽으로 말린다. 또한, 대부분 식물은 빛에 반응해 태양 쪽으로 자라고, 중력을 인식해 뿌리를 아래쪽으로 내린다.
식물이 중력을 인식할 수 있는 건 ‘스타톨리스’라는 세포 내 구조물 덕분이다. 스타톨리스는 식물이 중력 방향을 감지하는 데 사용하는 작은 입자다. 세포질보다 밀도가 높아 물병 속 모래알처럼 세포 안에서 가라앉는다. 즉, 스타톨리스가 가라앉는 쪽이 중력의 방향이 되고, 식물은 이를 나침반 삼아 뿌리나 줄기가 자라야 하는 방향을 눈치챈다.
선행 연구에서 스타톨리스가 흔들리거나 이동하면 씨앗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음이 밝혀진 바 있다. 니콜라스 마크리스 미국 MIT 교수팀은 물리적 흔들림이 아닌 소리만으로 스타톨리스를 흔들어 씨앗의 성장을 자극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진은 여러 소리 중 자연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빗소리’에 주목했다. 1980년대에 진행된 물속에서 빗소리를 측정한 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물은 공기보다 밀도가 높기 때문에 같은 빗방울도 물속에서는 더 큰 압력 파를 만든다. 이에 착안, 빗방울에서 유래한 음파가 스타톨리스를 흔들고 결과적으로 씨앗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빗 속 씨앗은 30~40% 빠르게 발아
이를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얕은 물에서 자라는 벼 씨앗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8,000개의 벼 씨앗을 물통에 담그고, 일부만 떨어지는 물방울에 노출시켰다. 물방울의 크기와 낙하 높이를 조절해 가며 약한 비, 보통 비, 강한 비 상황을 모사했다. 동시에 하이드로폰(물속 소리를 듣는 마이크)을 이용해 물속에서 생성되는 음향 신호를 측정하고, 실제 야외의 웅덩이와 습지, 토양에서 비가 내릴 때 기록한 소리와 비교했다.
분석 결과,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물방울 소리는 자연의 빗소리와 매우 유사한 음향 특성을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씨앗의 반응이었다. 빗방울 소리에 노출된 씨앗은 그렇지 않은 씨앗보다 30~40% 빠르게 발아했다. 특히 토양이나 수면 가까이에 있는 씨앗일수록 반응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
마크리스 교수는 “빗소리를 감지하는 능력이 씨앗에 생물학적 이점을 줄 수 있다”며 “빗소리에 반응할 만큼 표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수분을 충분히 흡수하고, 안전하게 지표면까지 성장하기에 최적의 깊이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진은 빗방울의 물리적 진동이 실제로 씨앗 속 미세한 스타톨리스를 흔들 수 있는지도 분석했다. 연구진은 빗방울의 크기와 낙하 속도를 고려해 생성되는 음향 진동을 계산한 결과, 빗소리가 스타톨리스를 움직일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식물이 소리에 반응할 수 있다는 가설은 있었지만, 자연환경의 소리가 실제로 발아를 촉진한다는 것을 정량적으로 보여준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벼 씨앗을 활용해 진행된 만큼, 모든 식물종에 동일하게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마크리스 교수는 “표면 가까이에 있어 빗소리가 크게 들리면 발아하고, 깊이 묻혀 있어 빗소리가 약하면 발아를 보유하는 식으로 씨앗은 자신이 생존하기 좋은 토양이나 물속 깊이에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감지한다”며 “너무 깊은 곳에서 싹트면 지표면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죽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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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6-06-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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