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름과 모양 사이에 묘한 호응이 존재한다. 둥글고 포동포동하게 생긴 캐릭터는 어딘가 몽글몽글한 이름이 잘 어울리고, 가시 돋친 악역이나 공격형 캐릭터에는 날카로운 이름을 붙이고 싶어진다. 실제로 사람들은 언어와 문화가 다르더라도 둥근 도형과 부드러운 소리를, 날카로운 도형과 거친 소리를 서로 연결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소리의 느낌과 시각적 형태를 연결시키려는 현상을 ‘부바-키키 효과(Bouba/Kiki effect)’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독일의 심리학자인 볼프강 쾰러에 의하여 1929년 처음 제시되었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하였는데, 두 개의 낯선 도형을 보여주면서 어느 것이 ‘발루바(baluba)’이고 어느 것이 ‘타케테(takete)’ 같은지 물어보았다. 그 결과 대다수가 둥근 모양의 도형은 ‘발루바’로, 뾰족한 모양의 도형을 ‘타케테’로 지목하였다. 퀼러는 이를 통하여 소리와 의미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2001년 인지과학자 라마찬드란과 허버드 연구팀은 이 실험을 현대적으로 변주하여 ‘부바(bouba)’와 ‘키키(kiki)’라는 두 의성어를 사용하여 동일한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95% 이상의 응답자가 둥근 그림을 ‘부바’, 뾰족한 그림을 ‘키키’라고 답했으며, 이 같은 경향은 문화권을 초월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일관된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되면서, 많은 연구자들은 부바–키키 효과가 인간의 보편적인 지각 특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소리에도 모양이 있을까, 부바-키키 효과
부바-키키 효과는 언어를 배우기 전인 어린아이에게서도 나타났다. 2006년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의 대프니 마우어 연구진은 생후 4월 된 영아에게 둥근 모양과 뾰족한 모양을 보여주며 ‘부바’와 ‘키키’라는 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아이들이 소리와 일치하는 도형에 더 오래 시선을 두거나 손을 뻗는다는 결과를 확인하였다. 아직 말을 배우지 않은 시기에도 이러한 매칭이 나타난다는 것은 소리와 모양을 연결시키는 능력이 학습의 결과가 아닌 인간 보편의 지각 체계에 새겨져 있는 선천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것이 언어가 탄생하기 전 소리와 의미를 연결 짓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해 왔다.
그렇다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동물들도 이러한 소리–모양 매칭이 가능할까? 지금까지는 물체의 크기나 빛의 밝기를 소리와 같은 감각과 대응시키는 것이 침팬지, 개, 거북이 등의 동물에서 확인된 적은 있지만, 부바-키키 효과처럼 특정 소리와 형태를 짝짓는 사례는 없었다.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은 소리와 모양을 매칭시키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특성으로, 언어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을 제기해 왔다.
최근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는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갓 부화한 병아리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병아리는 알에서 나오자마자 걸어서 이동할 수 있고 주변을 인지하며 학습할 수 있는 조숙종(precocial species)이다. 따라서 태어난 지 하루 안팎의 병아리를 이용하면 언어 환경이 전혀 없는 동물도 사람처럼 소리와 모양을 짝지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갓 부화한 병아리도 구분하는 ‘부바’와 ‘키키’
첫 번째 실험은 생후 3일 된 병아리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병아리들은 먹이를 얻기 위해 중앙 통로를 거쳐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둥근 도형과 뾰족한 도형들에 노출되도록 하였다. 본 실험에서는 먹이를 주지 않고도 소리를 따라 도형을 찾아가는지 확인하였다. 이때 둥근 도형과 뾰족한 도형이 두 개의 통로에 동시에 제시되었는데, 숨겨진 스피커에서는 ‘부바’ 또는 ‘키키’라는 소리가 반복 재생되었다. 실험자는 병아리가 어느 패널 쪽으로 접근하는지와 각 도형을 탐색한 시간을 기록하였다. 그 결과 ‘부바’가 재생될 때는 대부분의 병아리가 둥근 모양을 먼저 향했고, ‘키키’가 재생될 때는 뾰족한 모양을 선택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소리-모양 매칭 능력이 사전 경험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생후 하루 된 병아리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삼각형 모양의 넓은 공간에서 병아리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둥근 부분과 뾰족한 부분이 섞인 모양을 중앙 스크린에 보여주었다. 얼마 후 둥근 모양과 뾰족한 모양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처음으로 ‘부바’ 또는 ‘키키’ 소리를 들려주었고, 이때 병아리가 처음 접근하는 도형과 머무는 시간을 측정하였다. 놀랍게도 병아리들은 처음 듣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부바’일 때는 둥근 모양을 훨씬 더 오래 탐색했고, ‘키키’일 때는 뾰족한 모양을 더 자주, 더 빨리 찾았다.
이번 연구는 소리와 형태를 매칭시키는 능력이 학습이나 언어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물의 본능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설명한다. 병아리들은 단 하루 만에 세상에 나와 아무런 언어 경험도 없이 ‘부바’와 둥근 모양을, ‘키키’와 뾰족한 모양을 연결하였다. 이는 동물의 뇌가 서로 다른 감각을 통합하여 일관된 사물 형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기본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음을 암시한다.
동물에서도 확인된 소리와 모양의 연결
하지만 이번 연구로 부바-키키 효과가 모든 종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침팬지와 고릴라를 대상으로 했던 이전 연구에서는 부바-키키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이번 실험에서는 동물들이 소리와 모양을 접하는 환경이 매우 간단했지만, 실제 자연환경에서는 수많은 소리와 형태가 뒤섞여 있어 똑같은 매핑이 유지될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이번 실험에서는 임의의 영어식 발음을 사용했기 때문에 병아리에게 다른 언어의 소리를 들려줬을 때도 같은 반응을 보일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 결과는 소리–모양 매칭이 인간 고유의 능력이 아니라 자연 선택 과정에서 자리 잡은 감각 통합 메커니즘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소리와 모양의 어울림이 우리만의 언어 습관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공유되는 감각의 규칙일 수 있는 것이다. 언어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지고 의미를 얻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물음표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동물과 다양한 감각 자극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하여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느끼고 이름 붙이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하나씩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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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3-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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