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nrepo/uploads/2024/01/fig5-480x307.jpg)
지난해 7월 미국 명문대인 스탠퍼드대 총장이 재임 7년 만에 사퇴하는 사건이 있었다. 마크 테시어 라빈(Marc Tessier Lavigne) 전 총장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주저자 및 공동 저자로 참여한 논문 속 이미지가 일부 조작됐다는 의문이 제기되면서부터다. 조사 결과 테시어 라빈 전 총장이 참여했던 논문 12편 중 최소 4편에서 연구 데이터 조작 및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결과로 인해 1999년 ‘셀(Cell)’에 게재된 논문 1편과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논문 2편이 철회됐다. 테시어 라빈 전 총장이 직접 조작에 관여한 증거는 없지만, 그는 “내 연구에서 발생한 문제를 책임질 의무가 있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지난 5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이미지 조작 등 논문 부정행위와의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한다고 선포했다. 그간 ‘인간의 눈’으로 살펴봤던 검증 과정에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분석 도구인 ‘프루피그(Proofig)’를 더한다는 것이다. 게재 후 수정이나 철회가 아닌 게재 전부터 철저하게 부정행위를 걸러내겠다는 의지다.
논문 부정행위 잡아내는 탐정
최근 들어 과학계에는 논문 조작 관련 문제가 잦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4~2005년 발생한 ‘황우석 사태’가 유명하다. 당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연구팀은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이미지 조작에 의한 허위임이 드러났다.
![](/jnrepo/uploads/2024/01/fig6-1.jpg)
중국에서는 역대급 사건도 벌어졌다. 2020년 중국 공동연구진은 무려 121개의 서로 다른 논문에 같은 세포 이미지를 활용해 논문을 작성했다. 세포 군집의 이동 경로를 포착한 하나의 이미지를 다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사진을 회전시키거나 일부만 잘라 활용하는 ‘꼼수’를 썼다. 국제학술지 6곳에 이들 연구진의 논문이 동료 연구자 평가(피어 리뷰)를 통과한 뒤 게재됐다.
논문 조작은 한 과학자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과학 연구 전반에 대한 신뢰를 낮춘다. 이에 따라 논문의 결함을 찾아내는 웹사이트 내 과학자들의 활동도 자연스레 활발해졌다. 가령, ‘펍피어(PubPeer)’는 전 세계 연구자들이 출판된 논문 속 데이터를 서로 검증하는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다. 펍피어 이용자들이 진위 여부에 의문을 제기한 논문 중 일부는 실제로 학술지의 게재 철회로 이어지기도 했다. 즉, 과학계의 신뢰 향상을 위해 내부 고발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육안’에 AI 탐정 보탠다
국제학술지도 논문 표절을 사전 감시하기 위한 절차들이 있다. ‘사이언스’의 경우 7년 전부터 ‘아이텐티케이트(iThenticate)’라는 AI 기반 논문 표절 검사 프로그램을 사용해왔다. 반면 이미지의 경우 맨눈으로 조작을 점검해왔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고 놓치는 부분도 있었다.
![](/jnrepo/uploads/2024/01/fig7-3.jpg)
올해부터 도입된 ‘프루피그’는 중복 및 조작된 이미지를 검사한다. 논문 속 이미지 복제, 눈금 조작, 회전, 짜깁기 등 조작 여부를 감지할 수 있다. 사이언스는 논문 작성자에 의한 수정 단계 이후 프루피그를 적용할 계획이다. 논문 에디터는 프루피그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문제가 발생될 경우 저자에게 확인 절차를 거친다. 프루피그는 사이언스 본지는 물론 자매지까지 모두 적용된다. 검토 중인 모든 논문은 물론, 이미 출판된 논문이라도 의혹이 있으면 프루피그를 통해 다시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홀든 소프 사이언스 편집장은 “‘인간의 눈’을 통한 이미지 확인을 지금까지 수행해왔기 때문에 프루피그 도입은 당연한 후속 절차”라며 “프루피그는 과학의 검토 프로세스를 향상 시키고, 많은 변경 사항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보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이언스는 지난 몇 달간 프루피그를 시범 운영해왔다. 프루피그의 보고서에 대한 저자들의 만족스러운 답변이 제시되고, 문제를 해결하여 논문이 게재까지 이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출판되어서는 안 될 논문들은 감지하기도 했다.
소프 편집장은 “저자의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추가적인 우려 사항이 제기되면 논문 게재 거부를 포함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이미지 무결성에 대한 우려가 이미 출판된 ‘사이언스’ 지의 논문에 제기되면 프루피그를 사용하여 다시 의심스러운 이미지를 신중하게 검토해 수정 또는 회수 조치를 취하려 한다”고 말했다.
![](/jnrepo/uploads/2024/01/fig8-480x264.jpg)
한편, 과학 논문의 이미지나 데이터 부정을 검출하는 AI 도구가 인간의 육안에 의한 검사보다 높은 정밀도를 가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논문 사전 공개 플랫폼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실린 연구다.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2014~2023년 국제학술지 ‘톡시콜로지 리포트(Toxicology Reports)’에 게재된 715건의 논문을 조사했다. 오스트리아 기업이 개발한 이미지 부정 검출 AI 도구인 ‘이미지트윈(Imagetwin)’은 인간 연구자보다 2~3배 빠른 속도로 조사를 실시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놓친 부정 의심 논문 41건을 추가로 발견했다.
소프 편집장은 “2024년 과학계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며 “연구 오류에 대한 더 나은 모니터링, 주의 깊은 논문 선별 및 정보 공유를 통해 과학에 대한 믿음과 품위가 강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 yskwon0417@gmail.com
- 저작권자 2024-01-17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