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같은 말을 하는데도 항상 다른 말을 하는 느낌이다
우주 탐사 프로젝트가 커질수록 과학자와 공학자가 함께 일하는 자리는 늘어난다. 하지만 천문학자로 살아오면서 가장 낯선 경험 중 하나는 엔지니어들과 한 테이블에 앉는 일이었다. 듣는 엔지니어들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세상 모든 일에 대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엔지니어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 다만 비슷한 듯하면서도 너무 다른 두 집단에 대해서 - 작성하는 글이다.
설명한 대로 그들은 항상 유능하고 열정적이며, 우주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나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묘한 어긋남이 생긴다. 같은 단어를 쓰는데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어긋남의 정체가 무엇인지 오래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단순했다. 우리는 같은 세상을 보되, 전혀 다른 질문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는 "왜?"를 묻고, 공학자는 "어떻게?"를 묻는다
과학자의 출발점은 항상 의문이다. 왜 이 천체는 이렇게 움직이는가. 왜 이 분자구름에서는 물이 얼음 상태로 존재하는가. 왜 행성의 대기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가. 이 질문들은 아직 아무도 답하지 못한 것들이다. 과학자는 그 미지의 공간 앞에서 오히려 설레어 한다. '답이 없는 질문'이야말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학자의 출발점은 다르다. 그들에게 질문은 이미 주어져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로켓이 원하는 궤도에 정확히 안착하는가. 어떻게 하면 이 구조물이 발사 진동을 버텨내는가. 어떻게 하면 제한된 무게와 전력으로 최대의 성능을 낼 수 있는가. 공학자는 답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세계에서 일한다. 답이 없으면 위성이 뜨지 않고, 사람이 다친다. 불확실성은 공학자에게 설렘이 아니라 위험이다.
이 차이는 작은 것 같지만 실상은 매우 깊다. 과학자는 새로운 질문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고, 공학자는 주어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사고의 방향이 정반대인 셈이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과학에서 실패는 정보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의 관측 데이터로 원시행성계 원반의 얼음 조성을 분석할 때, 모델이 데이터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그 불일치 자체가 흥미롭다. 이론이 틀렸다는 뜻이거나, 우리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물리 과정이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에게 "이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라는 문장은 논문의 핵심 결론이 될 수 있다.
공학자에게 실패는 허용되지 않는 사건이다. 비행시험에서 로켓이 예상대로 거동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론이 아니라 위기다. 즉각적인 원인 분석과 개선이 따라야 한다. 공학적 실패는 학술지에 게재될 흥미로운 데이터가 아니라, 다음 발사를 막는 장애물이다. 때문에 공학자들은 검증된 방법론을 선호하고, 시스템이 충분히 안전한지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ESA의 로제타 임무에서 혜성 탐사선 필레의 착륙이 계획과 달리 바위에 걸쳐 쓰러졌을 때, 공학팀은 비상 대응에 돌입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문제를 해결해 내려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과학팀은 그 와중에도 기울어진 자세에서 취득된 데이터를 분석하며 예상 밖의 결과를 얻어냈다. 위기를 데이터로 바꾸는 과학자와, 위기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공학자. 두 시선은 그 순간에도 갈렸다.
정밀함의 의미가 다르다
숫자를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공학자에게 정밀함은 안전과 직결된다. 구조물의 내하중이 오차 범위를 넘으면 파국이 온다. 따라서 공학 설계에는 안전 계수(safety factor)가 있다. 가능한 최악의 상황보다 몇 배 더 여유 있게 설계하는 것이다. 숫자를 보수적으로 잡는 것이 미덕이다.
천문학자에게 정밀함은 다른 의미다. 원반 얼음의 스펙트럼을 분석할 때 종종 30~40%의 불확실도를 그대로 논문에 싣는다. 그것이 현재 측정 기술의 한계이고, 그 한계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자체가 과학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불확실성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정량화하는 것이 연구의 일부다. 이는 바로 천문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인 '제한(Constraining)' 수행 과정 중 일부이다.
시간 지평선이 다르다
공학자는 가까운 미래를 본다. 당장 이번 발사 일정이 맞는가. 이 부품이 임무 기간 5년을 버티는가. 그들의 시계는 프로젝트 일정표에 맞춰져 있다. 명확한 마일스톤이 있고,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 성공이다.
하지만, 과학자의 시계는 다르게 흐른다. 태양계가 46억 년 전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연구한다. 수십만 년 전 혜성이 어떤 얼음을 품었는지를 따진다. 현재의 관측 데이터를 수십억 년 전의 원시 태양계와 연결 짓는다. 과학적 질문의 시간 지평선은 인간의 생애, 심지어 인류의 역사보다 훨씬 길다.
하지만, 두 시선이 만나는 곳에 우주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인류가 우주를 탐사할 수 있는 것은 이 두 시선이 함께 작동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웹이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체라고 생각되는데, 망원경을 우주로 보내는 것은 공학의 승리였던 반면, 그 망원경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를 결정한 것은 과학자들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즉, 공학이 눈을 만들었고, 과학이 볼 방향을 정했다.
공학자와 과학자는 같은 우주를 본다. 다만 한쪽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묻고, 다른 쪽은 그것이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두 질문이 만나는 곳에서, 인류는 조금씩 더 먼 곳에 닿는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3-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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