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화학물질 규제는 대량 노출에 따른 단기적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규제 기준에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살충제는 정부의 허가 하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그런데 허용 기준 이하의 저농도 유해화학물질이라도 장기간 노출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 노트르담대 연구진은 낮은 농도의 살충제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물고기가 빨리 노화하고, 수명 역시 짧다는 연구결과를 지난 15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살충제 오염 호수에 사는 물고기, 수명 짧아
이번 연구는 제이슨 로어 미국 노트르담대 교수팀의 중국 현장 조사에서 시작됐다. 연구진은 수년에 걸쳐 농약 오염 수준이 서로 다른 호수에서 서식하는 약 2만 마리의 물고기의 건강 상태 등을 분석했다. 살충제 오염 수준이 높은 호수에 사는 물고기 개체군에서는 고령 개체가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반면, 상대적으로 오염 수준이 적은 호수에서는 많은 고령 개체가 발견됐다.
이에 연구진은 각 호수의 물고기(은잉어)들 표본을 채취해 텔로미어의 길이와, 리포푸신 침착 정도를 조사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양쪽 끝에 위치하며 염색체를 보호하는 캔 구조다. 신발 끈 끝의 플라스틱 캡처럼 염색체가 분열할 때마다 마모되는 걸 막아주는데, 나이가 들면서(세포 분열이 반복될수록) 자연적으로 길이가 짧아진다. 리포푸신은 세포 내 리소좀에서 다양한 대사물을 소화하거나 처리할 때 생성되는 찌꺼기로 둘 다 대표적인 노화의 지표다.
로어 교수는 “물고기 간에서 텔로미어 길이와 리포푸신 침착 정도를 조사했는데, 같은 실제 나이를 가진 물고기라도 오염된 호수에 서식하는 개체들이 깨끗한 호수의 개체들보다 텔로미어 길이가 현저히 짧고, 리로푸신 축적이 많은 식으로 더 빠르게 노화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화학 분석 결과, 물고기 조직에서 발견된 화합물 가운데, 이들 노화 징후와 일관되게 연관된 물질은 클로르피리포스(chlorpyrifos)뿐이었다. 클로르피리포스는 유기인계 살충제로 오랫동안 곡물, 유채, 감자, 채소 등 대부분 작물에서 해충 방제에 사용된 농약이다. 그러나 호수 내 클로르피리포스 농도가 노화의 직접적 원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통제된 조건에서의 실험이 추가로 필요했다. 실험 결과, 클로르피리포스에 대한 장기간 저용량 노출은 물고기의 점진적인 텔로미어 단축, 세포 노화 증가, 생존율 감소를 유발했다.
고농도 노출은 폐사, 저농도 장기간 노출은 노화
연구진은 물고기들의 수명 단축이 특정 클로르피리포스 노출 사건에 의한 것이 아닌지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추가 연구도 진행했다. 고농도의 클로르피리포스에 단기 노출되면 빠른 독성과 사망을 유발했지만, 텔로미어 단축이나 리포푸신 축척 등 노화 가속은 일으키지 않았다. 오염된 호수 물고기들의 노화 현상이 고농도 노출이 아닌, 흔하게 발생하는 저농도의 장기적 누적 노출 때문이라는 의미다.
고령 개체의 감소는 심각한 생태학적 결과를 낳는다. 고령 물고기는 번식, 유전적 다양성, 개체군 안정성에 크게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텔로미어 생물학 등 노화 메커니즘은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 전반에 걸쳐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간 간과되어 온 저농도 노출의 영향까지 포괄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함의를 준다.
로어 교수는 “우리 연구는 고농도 노출에 집중했던 기존 연구들과 달리 물속에 소량 존재하는 클로르피리포스가 생태계에 미치는 만성적인 영향에 주목했다는 의미가 있다”라며 “물고기 표본을 채취한 호수는 여전히 클로르피리포스 사용을 허용하고 있는 미국의 현행 담수 안전 기준보다 낮은 농도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즉각적 피해를 일으키지 않으면 화학물질이 안전하다는 가정에 도전한다”라며 “환경과 인간 건강을 충분히 보호하기 위해 화학물질 안정성 평가가 단기 독성 시험을 넘어설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덧붙였다.
클로르피리포스는 가격이 저렴하고 병해충 방제 효과가 우수해 농업 현장에서 많이 사용됐다. 그러나 사람과 가축에 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영국에서는 2016년, 유럽연합 전체에서는 2020년 클로르피리포스의 사용을 금지했다. 미국은 2021년 식량 작물에 대한 클로르피리포스 사용 금지 조치를 도입했으나, 농업 단체가 소송을 제기하며 2023년 사용이 재개됐다. 단, 여기에 실제 영향에 관한 심층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우리나라는 2021년 9월 농촌진흥청 농약안전성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클로피리포스의 등록이 취소됐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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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6-01-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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