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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정회빈 리포터
2025-10-29

개미들이 보여준 사회적 거리두기 건축 설계 병원체에 노출된 뒤 접촉을 분산시키도록 둥지 구조를 재설계하여 전염 속도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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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유행할 때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을 준수하였다. Ⓒ Getty Images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을 준수하였다. Ⓒ Getty Images

5년 전 코로나19가 유행했을 때, 우리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면 모임은 가급적 줄이는 등 사회적 거리 두기 규칙을 준수하였다. 모임과 행사의 인원 제한, 재택근무와 원격 수업, 좌석 띄우기 등 일상에 찾아온 방역 수칙들은 비록 불편하긴 했지만,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를 늦추는 데에는 효과가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사고방식은 인간 사회만의 발명품이 아니었다. 땅속에 사는 개미들도 집단을 전염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둥지의 구조를 바꾸는 전략을 사용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개미가 설계한 사회적 거리 두기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의 나탈리 스트로이메트 박사 연구팀은 개미가 병원체에 노출되면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둥지의 구조를 다시 설계한다는 사실을 관찰하여 올해 10월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하였다. 연구진은 개미들이 건물의 방, 통로, 출입구 배치를 바꾸어 접촉 경로를 분산시킴으로써, 감염병의 전파 속도를 늦추는 전략을 확인하였다. 인간이 동선을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출입 인원을 제한하듯, 자연계에서 공간 구조의 변화가 전염병 억제의 중요한 원리임을 처음으로 명확히 제시하였고, 이를 ‘건축 면역(architectural immunity)’이라 명명하였다.

개미들은 공간 구조를 바꾸어 전염병의 전파를 막는 ‘건축 면역’ 효과를 보여주었다. Ⓒ Science
개미들은 공간 구조를 바꾸어 전염병의 전파를 막는 ‘건축 면역’ 효과를 보여주었다. Ⓒ Science

개미둥지는 여왕개미 방, 부화실, 식량 창고 등 여러 개의 공간이 복잡한 터널로 연결된 3차원 네트워크 구조이다. 문제는 땅속 깊숙이 있어서 눈으로는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인데, 연구진은 개미둥지의 구조를 손상 없이 추적 관찰하기 위해 마이크로 CT 장비를 사용하였다. 마이크로 CT는 병원에서 신체 내부를 진단할 때 사용하는 CT 장비와 원리는 같지만, 더 작은 대상을 손상 없이 높은 해상도로 관찰할 때 사용하는 실험 장비이다. 주로 뼈, 콘크리트, 반도체 칩과 같은 것들을 비파괴로 분석하는데, 이번 연구에서는 개미둥지의 방, 통로들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데 사용된 것이다. 연구진은 높이와 지름이 각각 약 10cm인 투명 용기에서 약 200마리 규모의 개미들을 넣고 스스로 굴을 파게 하였다. 이때 일부 집단에는 전염성 곰팡이를 노출시켰고, 건강한 개미들만 있는 대조군과의 둥지 형성 차이를 비교하였다.

마이크로 CT를 사용하여 개미 둥지를 추적 관찰한 실험 설계. Ⓒ Science
마이크로 CT를 사용하여 개미 둥지를 추적 관찰한 실험 설계. Ⓒ Science

실험 결과, 전염성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들이 있는 집단의 둥지는 초기 성장 속도가 더 빨랐고, 서로 다른 출입구 사이의 평균 거리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방과 통로가 이루는 네트워크의 연결 복잡도는 낮아지고, 특정 구간에서 군집이 과도하게 뒤엉키지 않도록 우회 동선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쉽게 말해,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가는 길이 길어지고 분산되면서 집단이 한데 모여 큰 덩어리를 이루는 시간과 빈도가 줄어든 것이다. 이는 잠재적 감염원이 둥지 전체로 퍼지는 경로는 차단하여 전염병이 최대한 천천히 퍼지도록 구조가 변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병원체에 감염된 개미들의 둥지는 출입구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연결 복잡도가 낮아지는 특징을 보였다. Ⓒ Science
병원체에 감염된 개미들의 둥지는 출입구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연결 복잡도가 낮아지는 특징을 보였다. Ⓒ Science

 

시뮬레이션으로 확인된 건축 면역의 효과

그렇다면 이렇게 구조를 바꾸는 것이 정말로 전염병의 전파 속도를 둔화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까? 연구진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마이크로 CT로 얻은 개미둥지 모형에서 병원체에 감염된 개미가 들어왔을 때의 흐름을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해 보았다. 개미들이 방과 통로를 오가며 같은 공간을 공유할 때 전염이 일어나는 확률 모형을 사용하여, 감염된 개미 한 마리에서 시작해 접촉을 따라 감염이 번지는 과정을 수천 번 반복 계산하였다. 마치 도로 위에 출퇴근 교통량 값을 입력하여 차량흐름을 파악하고 언제 어디서 차량정체가 발생할지 확인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결과,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가 있던 둥지에서는 우회 통로가 많고, 분산되어 있어서 다른 방으로 감염이 이동되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고, 같은 시간 동안 감염되는 개미 수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둥지의 구조만 달라졌는데도 전염병의 전파력이 낮아진 것이다.

개미들은 왜 건물 구조를 바꾸어 전염병을 막는 ‘건축 면역’ 전략을 택했을까? 개미는 인간들처럼 손소독제를 사용하거나 격리실을 따로 만들 수 없다. 대신 집단의 동선과 방의 위치를 조정하여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구조를 만들었다. 출입구 간 간격을 넓히면 같은 시간에 한 출입구를 오가는 개체 수가 줄어 병목을 피하게 된다. 방과 통로의 연결 복잡도를 낮추면 핵심 통로 하나가 막히거나 오염되어도 전 둥지가 마비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속도와 효율만을 중시했다면 출입구는 더 가깝게, 통로는 직선으로 만들었어야 했지만, 개미는 전염병이라는 위험 신호 앞에서 효율을 희생하고 안전을 선택한 것이다.

개미는 전염병이라는 위험 신호 앞에서 효율보다는 안전에 비중을 둔 둥지를 설계한다. Ⓒ Science
개미는 전염병이라는 위험 신호 앞에서 효율보다는 안전에 비중을 둔 둥지를 설계한다. Ⓒ Science

 

다음 팬데믹을 위한 공간 전략

이번 연구는 자연계에서 생활 터전의 구조가 질병 전파 속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실험과 시뮬레이션으로 증명한 첫 사례이다. 이는 축사, 양봉장, 온실 같은 집단 사육 시설뿐 아니라 병원 병동, 요양원, 기숙사와 같은 취약 시설의 동선 설계와 물류센터의 작업 구역 배치에도 응용될 수 있다. 출입구 간 거리, 우회 동선의 수, 연결 구조의 복잡성 등을 설계 변수로 두고, 생산성 저하는 최소화하면서 전파를 둔화시키는 최적점을 찾는 것이다. 자연에서 이미 검증된 해법을 인간의 공간에 적용하는 것은, 코로나19를 거친 인류가 다음 팬데믹을 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보험이 될 수 있다.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Architectural immunity: Ants alter their nest networks to prevent epidemics, Leckie et al., 2025, Science

정회빈 리포터
저작권자 2025-10-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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