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류가 육지에서 처음 출현해 진화했다는 오랜 통념과 달리 해양 절지동물 조상에서 진화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5억 년 전 살았던 작은 해양 절지동물 화석에 정밀하게 보존된 뇌를 분석한 결과 구조가 현대 거미류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애리조나대 니컬러스 스트라우스펠드 교수팀은 23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서 5억년 전 캄브리아기에 살았던 해양 절지동물의 화석화된 뇌와 중추신경계를 분석, 배열 방식이 현대 해양 절지동물이 아닌 거미류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스트라우스펠드 교수는 5억년 전 해양 절지동물의 뇌 구조가 현대 거미류와 같다는 것은 거미류가 공통 조상의 육지 정복 후 다양화됐다는 기존 통념에 도전하는 것으로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처음 진화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미류가 처음 어디에서, 언제 나타났는지, 그리고 어떤 종류의 협각류(Chelicerata)가 그들의 조상이었는지, 이들이 투구게처럼 해양성이었는지, 반수생이었는지 등은 여전히 치열하게 논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부르지아 셰일에서 발견돼 하버드대 비교동물학 박물관(MCZ)에 소장된 5억 년 전 해양 절지동물 몰리소니아 시메트리카(Mollisonia symmetrica) 화석에서 신경조직까지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정밀하게 보존된 뇌 구조를 분석했다.
이전까지 학계에서는 몰리소니아를 등껍질(carapace)과 여러 부속기관이 모여 있는 전신부와 분절된 몸통 등의 후신부 구조 등이 현대 투구게와 유사한 점 등을 들어 투구게류나 원시 해양 협각류(Chelicerata)의 조상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연구팀이 광학현미경을 이용해 몰리소니아의 뇌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현생 및 멸종 절지동물 30여종의 신경·해부학적 형질과 비교한 결과, 그 구조가 현대 투구게보다는 거미 및 그 친척들의 뇌와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몰리소니아가 거미류(Arachnida)에 속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핵심 증거로 화석에 보존된 뇌와 신경계 구조의 유사성을 제시했다.
몰리소니아의 몸 앞쪽 부분에 방사형으로 배열돼 5쌍의 팔다리를 제어하는 분절 신경절은 거미류의 신경계 구성과 매우 유사하고, 비분절형 뇌(unsegmented brain)가 짧은 신경을 통해 한 쌍의 집게발 모양 '발톱'과 연결돼 있는 것은 거미류의 송곳니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특히 몰리소니아의 뇌 구조가 앞에서 뒤로 정렬된 게·새우 등 갑각류나 곤충, 지네, 투구게 등과 달리 정반대 방향으로 배열된 것은 거미의 독특한 뇌 구조와 동일하다며 이는 거미류와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설명했다.
논문 공동 저자인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CL)의 프랭크 허스 교수는 "거미 뇌의 뒤집힌 배열은 신경 제어 중추에서 운동 조절 회로로 가는 단축 경로를 제공, 은밀한 사냥, 신속한 추격, 정교한 거미줄 짜기 등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크라우스펠드 교수는 "처음 육지에 올라온 생물은 노래기와 비슷한 절지동물이나 곤충과 유사한 갑각류 계통 조상이었을 것"이라며 "몰리소니아 같은 거미류도 육지에 적응하며 초기 곤충이나 노래기를 주된 먹이로 삼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포식자인 육상 거미류가 초기 곤충의 방어 메커니즘으로 날개 진화를 촉진했을 수 있다"며 하지만 거미류가 이에 대응해 진화시킨 거미줄이라는 사냥 방법에 여전히 많은 곤충이 걸려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 출처 : Current Biology, Nicholas J. Strausfeld et al., 'Cambrian origin of the arachnid brain', http://dx.doi.org/10.1016/j.cub.2025.06.063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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