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마다 다른 손가락의 지문을 이용해 개인을 식별하듯, ‘숨’으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게 됐다. 96.8%의 정확도로 음성 인식만큼 정확하다. 이러한 코를 통한 ‘호흡 지문(breath-print)’은 식별을 넘어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바이오 지표로도 쓰일 수 있다. 향후 건강한 호흡을 모사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증진하는 치료로 이용될 수 있으리란 기대된다. 연구 결과는 지난 6월 12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실렸다.
복잡한 뇌 네트워크에 의해 제어되는 호흡
호흡은 단순한 과정처럼 보이기 쉽다. 아무런 노력 없이 숨을 쉬고,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호흡은 호흡 조율기 역할을 하는 복잡하고 광범위한 뇌 네트워크에 의해 제어된다.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연구진은 후각, 즉 냄새를 맡는 감각에 대한 관점에서 이번 연구를 시작했다. 포유류의 경우 뇌를 들이쉴 때 냄새 정보를 처리한다. 연구진은 냄새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구조와 기능이 저마다 다르다면 호흡 패턴도 사람마다 공유할 것이라는 가정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간편한 장치를 개발했다. 부드러운 관을 콧구멍으로 삽입해 24시간 동안 코로 드나드는 공기의 흐름을 측정하는 장치다. 기존 호흡 검사들은 폐 기능이나 질병 진단에 초점을 맞춰 1~20분 정도로 짧게 흐름을 측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런 짧은 검사로는 사람마다 미묘하게 다른 호흡 패턴을 포착하기 어렵다.
연구를 이끈 노암 소벨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교수는 “호흡은 이미 모든 방식으로 측정되고 분석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호흡을 바라봤다”며 “호흡을 ‘뇌의 출력 신호’로 간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100명의 건강한 청년들에게 일상생활 중 이 장치를 착용하게 했다. 그리고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서 들이마시는 공기량, 숨을 참는 빈도 등 24가지의 매개변수 특징을 분석했다. 그 결과 96.8%라는 높은 정확도로 참가자를 구별할 수 있었다. 2년 뒤 진행된 재검사에서도 꾸준히 호흡을 통한 식별이 가능했다.

팀나 소르카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사람들이 각자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기 때문에 호흡으로 개인 식별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실제로는 사람마다 호흡 패턴이 놀라울 정도로 뚜렷하게 달랐다”고 말했다.
호흡으로 마음도 읽을 수 있어
더 나아가 연구진은 이 ‘호흡 지문’이 참가자의 체질량지수(BMI), 수면-각성 주기, 우울 및 불안 수준, 행동적 특성과도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예컨대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높은 참가자들은 수면 중 들숨 시간이 짧았고, 일시적인 멈춤 간격이 더 불규칙한 경향이 있었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임상적 진단을 받을 만큼 정신적‧행동적 문제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호흡 추적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아직 실생활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코에 삽입하는 장치가 병원 장비처럼 보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착용하기에는 심리적 저항이 있을 수 있고, 입으로 숨을 쉬는 경우엔 측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면 동안 장치가 빠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이에 연구진은 더 작고, 편안하며, 눈에 띄지 않는 장치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

한편, 연구진은 건강한 호흡 패턴을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모방하면 정신적‧정서적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진단을 넘어 치료까지 확장하기 위한 시도다.
소벨 교수는 “우리는 직관적으로 우울하거나 불안하면 호흡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반대로 호흡 방식이 우리를 불안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며 “그렇다면 호흡 방식을 바꿈으로써 마음의 상태를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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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07-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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