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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현정 리포터
2025-05-22

‘리듬의 달인’ 바다사자, 춤꾼 된 비결은? 바다사자 로난의 리듬 타기, 인간의 감각 운동 동기화와 동일한 신경적 기반 위에 있을 가능성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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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동물이 소리에 반응해 행동하지만 인간처럼 음악의 박자에 맞춰 자발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능력은 매우 예외적인 현상으로 여겨져 왔다. 일정한 리듬을 인지하고 이에 맞춰 움직임을 조절하는 ‘감각 운동 동기화’는 단순한 청각 반응이 아니라 시간 지각, 운동 제어, 예측 처리 등 복합적인 뇌 기능의 결과로 간주돼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능력은 정말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일까? 혹은 특정 조건이나 학습을 통해 다른 동물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리듬에 반응할 수 있을까? 

최근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연구결과가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ific reports)에 게재됐다.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바다사자 로넌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바다사자 로난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

 

리듬 인식과 운동 동기화의 진화? 

인간은 ‘감각 운동 동기화(sensorimotor synchronization)’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외부의 주기적인 감각 자극에 맞춰 자신의 신체 움직임을 정밀하게 동기화하는 능력이다. 주로 청각 정보를 기반으로 뇌에서 시간 정보를 처리하고 운동계를 정밀하게 제어해 시간적 간격에 맞춰 움직임을 생성하는 복잡한 신경 과정이다. 

기존 생물학 이론에서는 인간의 박자 감지가 언어와 음악의 진화와 연관된 신경학적 특수성에 기초한다는 주장이 강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만약 인간과 무관한 진화 경로를 거쳐온 동물이 일정한 리듬에 맞춰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리듬 감지가 인간 고유의 특성이 아닐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워 이것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지를 두고는 다양한 과학적 이견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학계의 관심을 이끈 주인공은 바다사자 ‘로난(Ronan)’이다. 

미국 플로리다대학과 UC산타크루즈 해양과학연구소 연구진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2013년, 당시 세 살이던 로난이 음악과 메트로놈 소리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여준 첫 사례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에는 한정된 훈련의 결과로 간주되었지만, 그로부터 12년간 리듬 훈련을 지속해 온 로난은 이른바 ‘리듬 장인’이 돼 나타났다. 

바다사자 로넌과 인간 참가자는 120bpm의 메트로놈 자극에 맞춰 유사한 동작 패턴을 보인다. ⒸScientiific reports

바다사자 로난과 인간 참가자는 120bpm의 메트로놈 자극에 맞춰 유사한 동작 패턴을 보인다 ⒸScientiific reports


로난의 ‘리듬 애송이’ 시절

로난은 세계 최초로 리듬에 맞춰 자발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포유류로 학계에 보고된 유명 인사다. 2013년에 연구팀은 로난이 반복학습을 통해 80bpm과 120bpm의 메트로놈 소리와 박자에 맞춰 머리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확인했고, 그 결과는 비교심리학 저널(Journal of Comparative Psychology)에 발표됐다.

하지만 당시 로난의 수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박자에 동기화된 움직임을 보였지만 템포가 빠르거나 느려질수록 일정한 시간차가 발생했다. 또, 위상각이 박자에 따라 과도하게 음(-) 또는 양(+) 방향으로 편향되는 ‘위상-템포 상관관계(phase-tempo relationship)’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즉, 느린 템포에서는 박자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빠른 템포에서는 반응이 뒤처졌다. 

이는 리듬 자극에 반응은 하지만 인간처럼 유연하게 타이밍을 조절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해석을 낳았다. 게다가 반복 간격의 표준편차도 인간 참가자보다 크고 불안정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연구팀은 성체가 된 로난의 박자 감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재평가하고자 새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로넌과 로넌의 리듬 테스트를 진행한 연구진 ⒸColleen Reichmuth

로난과 로난의 리듬 테스트를 진행한 연구진 ⒸColleen Reichmuth


‘리듬 장인’ 로난의 화려한 컴백

연구진은 로난의 리듬 수행 능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과거 실험에서 사용한 메트로놈 템포—80, 96, 108, 120bpm—를 그대로 반복 제시했다. 또한, 실험 환경, 강화 방식, 동작 형태(머리의 수직 상하 움직임), 영상 분석 프레임(초당 240fps) 등도 동일하게 설정했다. 단, 신체 발달이 완료된 현재의 로난은 동작의 진폭이 더 크고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기에 이 점도 고려하여 데이터 분석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과거에 보였던 위상각 편차 패턴이 거의 사라졌다. 

대표적으로 80bpm 조건에서 로난은 과거 평균 위상각 -63.4°를 기록했지만 이번에는 -2.7°로 크게 개선되었으며, 120bpm에서도 과거 -44.0°였던 것이 –28.2°로 줄었다. 위상 표준편차 역시 전체적으로 30~50% 감소했으며, 동기화 정확도의 핵심 지표인 벡터 길이는 모든 조건에서 0.89 이상을 기록해 과거보다 뚜렷하게 향상된 안정성을 나타냈다.

연구책임자인 피터 쿡 교수는 “로난이 보여준 위상 동기화의 향상은 단순히 반응 속도를 조절한 것이 아니라 리듬 구조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능력이 발달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12년간 약 2천 번의 리듬 연습을 한 로넌은 과거보다 뚜렷하게 향상된 리듬 안정성을 나타냈다.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

12년간 약 2천 번의 리듬 연습을 한 로난은 과거보다 뚜렷하게 향상된 리듬 안정성을 나타냈다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


사람과의 ‘리듬 배틀’에도 우세 

12년 전 실험은 러넌의 단독 사례였지만, 이번에는 실험 참가자 10명과 동일 조건에서 수행 비교가 이루어졌다. 연구진은 메트로놈 기반의 일정한 박가 자극을 사용하고, 로난에게는 머리를 위-아래로 흔드는 동작을, 18~23세 사이의 실험 참가자 10명에게는 이와 유사한 크기의 팔 움직임을 요구했다. 

그 결과 로난은 일부 조건에서 참가자 전원을 능가했으며 모든 조건을 통틀어 봤을 때 참가자 10명 중 8명 이상보다 더 높은 위상 정밀도와 낮은 변동성을 기록했다. 특히 128bpm의 낯선 템포에서도 평균 템포 129.0bpm, 평균 위상각 7.0°, 벡터 길이 0.88로 매우 높은 동기화 수준을 유지했다.

대표적으로 120bpm 조건에서 로난은 평균 템포 121.6bpm, 평균 위상각 -28.2°, 위상 벡터 길이 0.89를 기록했다. 반면 인간 참가자 집단은 같은 조건에서 평균 템포 119.3bpm, 평균 위상각 -14.7°, 벡터 길이 0.91로, 동기화의 정확도에서 로난보다 높은 편차를 보였다. 벡터 길이는 동기화된 위상값이 얼마나 일관되게 유지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1에 가까울수록 동기화의 정밀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로난이 처음 노출된 112bpm과 128bpm 조건에서도 나타났다. 두 템포 모두 로난은 인간 참가자 10명 중 8명을 능가하는 위상 정밀도와 낮은 변동성을 보였다. 

특히 128bpm에서는 로난의 평균 위상각이 7.0°에 불과했고, 벡터 길이는 0.88로 측정되었다. 이는 실험에 참여한 인간 피험자의 평균 성과보다 높은 정밀도에 해당하며, 인간-동물 간 리듬 감각 비교 실험 사상 전례 없는 결과다.

로난은 세 가지 템포 조건 모두에서 수행 정밀도와 일관성 측면에서 대부분의 인간 참가자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리듬 수행 능력을 보였다. ⒸScientiific reports

로난은 세 가지 템포 조건 모두에서 수행 정밀도와 일관성 측면에서 대부분의 인간 참가자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리듬 수행 능력을 보였다. ⒸScientiific reports

 

‘리듬 달인’의 비결은 타고난 ‘능동적 조율자’?

피터 쿡 교수는 이번 실험 결과를 단순히 훈련 효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로난은 반복 훈련을 통해 리듬을 외부 자극으로부터 수동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적으로 동기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며 “로난의 행동은 인간의 감각 운동 동기화와 동일한 신경적 기반 위에 있을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로난은 모든 템포 조건에서 위상 편차를 0도에 가깝게 유지했으며, 반복 간격의 표준편차는 3세 시절에 비해 최대 5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빠른 템포(128 bpm)에서도 반응 속도와 동기화 정밀도가 저하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부 인간 참가자보다 더 정확한 박자 수행을 보였다.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로난의 위상 정렬 능력은 가상 인간 참가자 30,000명 중 상위 2%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결과는 로난이 리듬 구조를 인식하고 예측적으로 운동 반응을 생성하는 특유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로난은 박자 감각의 ‘자동화된 재현자’가 아니라 리듬을 이해하고 스스로 조율하는 ‘능동적 조율자’로 기능하고 있었다.

공동 저자인 콜린 라이히무스 박사도 “우리는 12년 전 로난이 박자를 따라가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그녀가 박자 속에 있는 규칙을 내재화했고, 그 규칙을 일관되게 구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진화했음을 보았다.”면서 "이것은 반사가 아니라 진정한 예측 기반의 동기화.”라고 말했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05-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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