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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권예슬 리포터
2024-12-05

종이 예술 ‘키리가미’로 우주 비밀 푼다 암흑물질 후보 ‘액시온’ 탐색 민감도 2배 이상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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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물리학자들이 종이 접기 기술인 ‘키리가미’에서 영감을 받아 액시온 암흑물질 탐색 민감도를 높일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윤성우/IBS

국내 물리학자들이 종이 접기 기술인 ‘키리가미’에서 영감을 받아 액시온 암흑물질 탐색 민감도를 높일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윤성우/IBS

국내 물리학자들이 암흑물질의 후보 중 하나인 ‘액시온’을 탐색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연구진은 종이 예술인 ‘키리가미’에서 영감을 받아 액시온 탐색 범위를 효율적으로 확장할 방법을 구현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11월 17일 물리학 분야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실렸다. 사이언스(Science)는 물리학자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매우 영리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여 적용하는 것까지 해냈다”는 내용의 보도를 내기도 했다.

 

암흑물질 ‘왕좌’ 바뀌나

암흑물질은 질량은 있으나 관측이 불가능한 미지의 물질이다. 우주 전체 에너지의 약 27%를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 이래로 암흑물질의 주요 후보는 윔프(WIMP)였다. 그런데 주요 후보가 흔들리고 있다. 지금껏 윔프의 흔적을 포착했다고 주장한 연구진은 다마(DAMA) 국제공동연구팀이 유일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검출기 감도를 5배 높인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의 LZ(LUX-ZEPLIN) 실험에서 윔프의 징후를 찾지 못했다. LZ 연구팀은 2021년 12월부터 수집한 280일 치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지난 8월 국제학회에서 발표했다. 윔프의 존재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왕좌’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암흑물질의 또 다른 후보인 윔프(WIMP) 탐색에 나선 LZ 실험 설비. ⓒMatthew Kapust/Sanford Underground Research Facility

암흑물질의 또 다른 후보인 윔프(WIMP) 탐색에 나선 LZ 실험 설비. ⓒMatthew Kapust/Sanford Underground Research Facility

또 다른 후보인 액시온(AXION)의 경우 우주의 또 다른 미스터리인 ‘오늘날 우주가 왜 물질로만 이뤄져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여겨진다. 초기 우주에서는 물질과 반물질이 거의 같은 양으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물질이 반물질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며 현재의 우주가 만들어졌다. 액시온은 암흑물질 후보이자, 우주의 물질-반물질 불균형이라는 미스터리를 동시에 해결할 열쇠가 된다.

 

실험 방향 수정

액시온을 잡아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자석을 쓴다. 액시온이 자기장과 만나면 질량에 상응하는 주파수를 갖는 광자(빛)로 변환된다. 이에 과학자들은 이론적으로 예측된 방대한 주파수 영역을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조금씩 바꿔가면서 탐색한다. 하지만 그 영역이 방대해 연구 별로 목표로 하는 각 영역 맞춤형 장비를 개발해 일부분씩 액시온의 흔적을 샅샅이 찾는다.

그런데 액시온의 질량을 예측하는 최근 이론적 연구들이 현재 대부분의 실험이 진행되는 영역보다 더 높은 주파수대에서 탐색이 필요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고주파 신호를 탐색하려면 주파수 신호를 증폭하는 공진기의 부피를 줄여야 한다. 가령, 주파수를 2배 늘리려면 공진기의 부피를 8분의 1로 줄여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부피를 줄이면 감도가 떨어져 탐색 효율성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액시온 탐색 실험의 선두 주자인 ADMX 실험 설비. ⓒMark Stone/University of Washington

액시온 탐색 실험의 선두 주자인 ADMX 실험 설비. ⓒMark Stone/University of Washington

고주파 영역 탐색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액시온 탐색 분야의 ‘일인자’인 미국 워싱턴대 중심의 ‘ADMX(Axion Dark Matter eXperiment)’ 연구진은 고주파 영역 탐색을 위해 기존 설비에 더 작은 공진기 4개를 함께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주파 영역 액시온을 높은 효율로 탐색하면서 주파수를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기술은 개발되지 않았다. 

 

키리가미에서 영감

주파수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2차원 배열의 정밀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연구진은 일본의 종이접기 예술인 ‘키리가미’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탐색 설비를 개발했다. 키리가미는 종이 평면에 선을 긋고 칼로 오린 뒤 당기면 3차원 구조물을 만들 수 있도록 한 종이 절단 기술이다.

일본의 종이 예술인 키리가미를 이용하면 2차원의 움직임으로 3차원 형태를 바꿀 수 있다. ⓒHARVARD SEAS

일본의 종이 예술인 키리가미를 이용하면 2차원의 움직임으로 3차원 형태를 바꿀 수 있다. ⓒHARVARD SEAS

일반적인 소재는 길이가 늘어나면 너비가 줄어든다. 고무줄을 늘이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쉽다. 그런데 키리가미를 이용하면 한쪽 면이 팽창·수축할 때 다른 면도 함께 팽창·수축하도록 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에 착안, 구조체의 중심이 회전할 때 전체 구조가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움직임을 내는 장치를 설계했다. 그리고 이를 공진기에 적용해 액시온 탐색 과정에서 주파수를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후 새로운 장치로 액시온 탐색 실험을 수행했다. 실험은 영하 269℃의 극저온 환경과 9T(테슬라) 자기장 조건에서 수행됐다. 탐색 민감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품질팩터(Q팩터)가 일반 공진기 대비 2~3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를 이끈 윤성우 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연구위원은 “우리 연구진이 개발한 독특한 구조체는 극저온과 강한 자기장 환경에서도 작동 가능한 주파수 조정 장치로, 향후 고주파 영역의 암흑물질 탐색에 적극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또한 극한의 저온·고자기장 환경에서 작동하는 로보틱스 분야로도 확장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저작권자 2024-12-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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