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와 인간과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아시나요? 인간과 초파리는 유전자 60%가 겹친답니다.”
목정완 카이스트(KAIST) 생명과학 박사는 초파리로 인간의 유전학을 연구하는 ‘특이한’ 유전 학자다. 목 박사가 13일 서울시립과학관에서 개최한 진로 탐구 프로그램 ‘멘토링의 제왕- 세상을 바꾼 작은 영웅들’에서 과학자를 희망하는 청소년을 위한 멘토로 나섰다.
목 박사는 초파리로 200세대를 관찰했다. 그는 현재 인간의 유전자와 대체하는 초파리 유전자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인간의 유전자와 60% 겹치는 초파리 연구
왜 하필 ‘초파리’일까. 초파리는 인간과 매우 닮았다. 인간 유전자와 닮은 동물 연구는 유전학에서 중요한 요소다. 지난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초파리를 통해 '서캐디언 리듬'을 통제하는 분자기구를 발견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역대 노벨 생리의학상 중 최소 6개가 초파리를 이용한 연구로 이뤄낸 성과다.
초파리의 유전자는 인간 유전자와 60%가량 일치한다. 목 박사는 “가령 인간의 유전자가 10개면 6개가 초파리 유전자와 같다.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중에는 70%가량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유전자가 비슷하다 보니 초파리의 행동도 인간과 비슷한 모양새를 보인다. 가령 실연을 했을 때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괴로운 일을 벗어나고자 한다. 초파리도 마찬가지다. 수컷 파리들은 실연을 하면 알코올 섭취량이 급증한다.
“초파리는 시큼한 것을 좋아하죠. 수컷 초파리는 실연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발효가 강하게 된 음식을 더 많이 먹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또 다른 암컷 파리에게 가서 구애를 하죠.”
초파리라는 독특한 주제로 멘토링이 진행되다 보니 채팅창에도 흥미로운 질문이 쇄도했다. 한 참가자는 “초파리도 알코올 중독이 있냐”라고 물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초파리도 숙취가 있느냐”라고 질문했다.
초파리도 ‘알코올 중독’이 있을 수 있다. 인간과 비슷하다. 알코올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초파리가 있는가 하면 다른 초파리보다 더 많은 알코올을 섭취하는 초파리도 있다. 하지만 초파리의 숙취 여부는 알 수 없다. 아직 연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목 박사는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좋은 연구 주제”라며 “이런 주제는 저명한 국제 학술지에도 기재될 수 있는 내용”이라며 칭찬했다.
초파리로 연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 세대가 짧아 오랫동안 관찰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 세대는 약 30~35년이다. 초파리는 알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10일이면 한 세대가 끝난다. 유전학 연구 특성상 여러 세대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한데 인간이나 영장류는 수명이 길어 오랫동안 관찰하기 어렵다. 하지만 초파리는 불과 한 달이면 삼대를 관찰할 수 있다.
목 박사는 11년 전 연구를 시작하면서 받았던 초파리를 아직도 키우고 있다. 물론 초기 초파리는 죽고 대대로 성장한 후손들이다. 200세대가 고스란히 그의 손에서 거쳐나간 것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현재 6000년이 지난 상황이다.
경제적인 요인도 있다. 쥐 실험의 경우 쥐 가격이 20만 원에서 1000만 원에 달해 가격 부담으로 실험이 쉽지 않다. 하지만 초파리는 거의 공짜에 가깝다. 구하기도 수월하다. 목 박사는 “연구자들이 기증하는 것이 관례다 보니 배송비 정도만 내면 쉽게 초파리를 구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돌연변이 초파리 유전자, 인간의 유전자로 대체
유전학 연구에서 중요한 요소가 돌연변이를 관찰하는 것이다. 최근 목 박사는 돌연변이 연구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초파리의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만들고 그 유전자가 없는 상태에서 인간의 유전자를 대체해 망가뜨린 초파리 유전자의 기능을 거의 완벽하게 재생했기 때문이다.
목 박사는 초파리의 날개를 가리켰다. 특정한 초파리 유전자를 변형해 사라지게 한 후 초파리 날개는 누가 뜯어먹은 것처럼 찌그러져 있다. 이 초파리에 인간의 유전자를 대체한 결과는 놀라웠다. 정상 초파리일 때보다는 약간 일그러졌지만 거의 완벽하게 날개가 재생된 모습이 관찰됐다.
목 박사는 “처음에는 대체된 유전자가 어떤 유전자인지 몰랐다. 유전자가 비슷하지만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여러 유전자를 넣어봤다. 연구를 하면서 세포의 생존에 필요하고 세포의 형태를 잡아주는 유전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초파리의 유전자와 사람의 유전자를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너무 행복했다”라고 회상했다.
그에게 있어 초파리는 ‘세상을 뒤집은 작은 영웅들’이다. 이름도 붙이지 못하는 미진단 질환에 초파리 연구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치료는 원인을 알아야 하는데 희귀 질병, 미진단 질환들은 연구자들이 적어 이 병에 왜 걸렸는지, 왜 아픈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초파리 연구를 통해 1년에 32개의 미진단 질환이 이름을 찾고 원인을 찾아 치료를 시도할 수 있게 됐다.
목정완 박사는 “앞으로 초파리를 통해 미진단 질환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람된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과학자를 꿈꾼다면 처음부터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 정할 필요는 없다. 연구하려는 목표는 언제나 바뀔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고 느끼는 것을 쫓아가다 보면 무엇을 연구해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라며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조언했다.
- 김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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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1-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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