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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강봉 객원기자
2019-11-21

최초로 인간의 ‘가사상태’ 실현 중환자 뇌 정지 상태에서 수술 후 다시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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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죽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살아 있는 상태를 가사상태(suspended animation)라고 한다.

숨도 안 쉬고 심장도 멈춰 죽은 것 같이 보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호흡과 심장 박동이 되살아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최근 과학자들이 이 가사상태를 인공적으로 구현해냈다.

21일 ‘가디언’, ‘뉴 사이언티스트’ 등 주요 언론들은 미국 메릴랜드대 의료진이 중상을 입은 환자의 트라우마를 가라앉히기 위해 환자를 가사상태에 이르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인위적으로 가사상태에 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의료진이 총상 등으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가사상태로 유도해 수술에 성공했으며, 다시 소생시키는데 성공했다. 사진은 가사상태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는 SF영화의 한 장면. ⓒ geneticliteracyproject.org
미 의료진이 총상 등으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가사상태로 유도해 수술에 성공했으며, 다시 소생시키는데 성공했다. 사진은 가사상태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는 SF 영화의 한 장면. ⓒ geneticliteracyproject.org

냉각된 생리식염수 주입해 가사상태 유도

우리 몸의 체액 농도를 0.9% NaCl 용액으로 판단해 동일하게 조정한 생리식염수는 혈관에 주입해도 삼투압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주입 후 쇼크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들은 급작스럽게 사고를 당해 긴급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생리식염수를 주입하는 응급조치를 실시해왔다.

그러나 총상이나 흉기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경우 생존율은 5%를 밑돌았다. 강한 충격이 트라우마를 유발해 사망률을 더 높였기 때문.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메릴랜드 메디컬센터 의료진은 환자의 가사상태를 유도했다.

사무엘 티셔맨(Samuel Tisherman) 교수는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 혈관에 냉각된 생리식염수(saline solution)를 주입해 혈액의 온도를 섭씨 10도 이하로 낮췄다고 말했다.

가사상태로 이끌기 위해 병원에서 시도한 방식은 ‘EPR(emergency preservation and resuscitation)’이란 방식이다. ‘응급 보존과 소생’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가사상태를 의미한다.

의료진은 이 EPR 방식을 통해 환자의 출혈을 멈추는데 성공했으며, 정상적인 치료를 할 수 있었으며, 치료가 끝난 후에는 다시 혈액을 주입, 정상 상태에 이르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2시간 동안 환자를 가사상태에 이르게 했으며, 수술이 끝난 후에는 다시 혈액을 주입해 정상 상태에 이르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티셔맨 교수는 “그동안 실현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말했다.

가사상태에 의한 보고서는 2020년 말 발표할 계획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생명을 구했는지, 또 어떤 계획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가사상태 이후 세포 손상 해소해야  

메릴랜드 병원이 시도하고 있는 EPR은 환자의 혈액을 냉각된 생리식염수로 빨리 교체하는 방식이다.

우리 몸에 있는 혈액은 평상시 섭씨 37도 전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수준에서 혈액이 산소를 공급하게 되고 산소는 에너지를 생성한다.

그러나 심각한 부상으로 과다 출혈이 일어나 산소 공급이 중지될 경우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뇌 활동이 멈추게 되고 결국 사망하게 된다. 마지막 순간 뇌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약 5분 정도다.

하지만 메릴랜드대 의료진은 사람의 체온을 급격히 낮추게 되면 뇌세포가 화학적 활동을 완화하거나 멈추면서 더 이상의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사상태를 말한다.

가사상태가 일정 시간 유지될 경우 트라우마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고 정상적인 수술을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동물실험을 시도했다. 부상을 당한 돼지의 혈액을 냉각된 생리식염수로 교체해 체온을 낮춘 후 뇌 활동을 인위적으로 멈추게 하는 실험이었다.

그 결과 약 3시간 동안 가사상태가 이루어졌고, 수술 후에는 정상적인 상태로 소생할 수 있었다. 티셔맨 교수는 “이 실험에서 자신감을 얻고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은 FDA(미 식품의약국)의 승인 하에 이루어졌다.

심각한 부상을 당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보호자 동의를 받은 10명의 중환자를 대상으로 EPR 치료를 시도했으며, 치료 과정을 비교해가며 상태를 분석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체온이 섭씨 10도 이하로 내려간 상황에서 가사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런 상황에서 수술을 진행한 후 다시 소생시킬 수 있었다.

이번 치료 결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SF(공상과학소설)에서 보는 것처럼 죽음과 비슷한 상태로 호흡 같은 생명 활동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을 일정 시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티셔맨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사람들이 토성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토성 여행을 꿈꾸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마찬가지로 가사상태에서 생명을 유지하거나 연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며, “이런 가사상태를 더 연장하기 위한 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관계자들은 가사상태에서 수술을 마친 후 정상적인 상태로 소생이 됐다 하더라도 세포 손상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중지됐던 혈관 활동이 다시 회복되면서 발생하는 재관류 손상(reperfusion injuries) 등의 부작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난제들이 남아 있다.

이강봉 객원기자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9-11-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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