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유콘 준주는 미국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서부의 노스웨스트 준주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빙하와 태초의 모습을 지닌 숲이 이어지는 이곳에는 순록과 늑대, 곰, 무스 등 거대 포유류들이 서식한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수백만 년 전엔 이곳에 코뿔소도 서식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코뿔소는 수마트라섬, 자바섬, 보르네오섬, 인도,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사바나 지방에 분포하고 있을 뿐이다.
즉, 당시 유콘 준주의 기후는 현재와는 전혀 달랐음을 의미한다. 이 연구를 주도한 유콘 주정부의 고생물학자 그랜트 자줄라 박사는 수백만 년 전 유콘 준주의 기후는 1년 내내 얼지 않고 늪지대가 있는 미국 남부 지역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유콘 준주에서 코뿔소의 화석이 발견된 것은 1973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2세의 교사였던 조안 하진스는 6명의 아이들과 함께 화이트호스 근처에서 야외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오래된 구리광산 옆에서 이상한 조각들을 발견했다.
작은 이빨과 뼈 조각들로 보이는 그것을 조안 하진스는 플라스틱 가방 두 개에 집어넣었다. 그 후 그녀는 그 화석을 자신이 거주하던 서스캐처원으로 가져가서 보관하다가 1998년에 유콘으로 발령받은 서스캐처원 박물관 직원에게 기증했다. 당시 그녀가 건넨 화석은 코뿔소의 치아 법랑질 파편, 두 종의 거북이 화석, 강꼬치고기 화석, 미확인 동물의 화석 등이었다.
베링육교 통해 유라시아대륙에서 건너와
그렇게 유콘으로 옮겨진 화석은 2014년에 콜로라도대학 자연사박물관의 화석 척추동물 큐레이터인 재린 에벌리 등에 의해 상세히 조사되기 시작했다. 애벌리는 스캐닝 전자현미경을 사용해 코뿔소의 고대 친척에게서 왔을 치아 법랑질의 구조를 밝혀냈다.
그 결과 이 고대 코뿔소는 베링육교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에서 건너온 현생 코뿔소의 먼 친척인 뿔 없는 코뿔소의 일종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이 추정한 코뿔소의 전체 몸길이는 3m, 키는 2m로서 남아공의 검은 코뿔소만큼 거대했다. 또한 당시 북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가장 큰 동물 중 하나였던 이 코뿔소의 화석은 약 800만 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유콘 준주에서 뛰어놀던 코뿔소와 거북이는 기후가 차츰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먹이를 먹을 수 없게 돼 약 400만 년 전에 멸종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콜로라도대학, 유콘 주정부, 캘리포니아대학, 유콘 지질조사소 등의 연구진이 공동으로 참여한 이 연구결과는 미국박물관의 학술지에 발표됐다.
그랜트 자줄라 박사는 조안 하진스가 최초로 화석을 발견한 지역에서 앞으로 장기간 발굴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조안 하진스는 만약 또다시 비슷한 발견을 하게 된다면 화석을 직접 보관하기보다는 전문가들에게 먼저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라시아대륙에서 베링육교를 통해 유콘으로 건너온 동물은 코뿔소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에는 초원의 청소부로 알려진 하이에나가 불과 수십만 년 전까지만 해도 유콘 지역에서 순록을 사냥하고 매머드의 사체를 뜯어먹으며 살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수십만 년 전에는 하이에나도 서식해
버펄로 뉴욕주립대학 연구진이 이끈 이 연구 역시 1970년대에 발견돼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온 하이에나의 이빨 화석을 분석한 결과다. 연구진은 유콘강 지역에서 발굴된 그 이빨 화석이 140만~85만 년 전의 ‘카스마포르테테스(Chasmaporthetes)’의 것이라고 밝혔다.
카스마포르테테스는 다리가 길어 ‘달리는 하이에나’로 불리는 동물이다. 이 고대 동물의 화석은 이제껏 미국 남부 및 멕시코 등지에서 발견된 적은 있지만, 이처럼 북극 한계선 근처에서까지 서식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북아메리카 지역에 고대 하이에나가 들어온 것은 약 500만 년 전이지만, 인류가 도착하기 전인 약 100만~50만 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에 서식한 하이에나 종은 달리는 하이에나를 포함해 약 70종에 달하지만, 현재는 4종 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한편, 기존 연구에 의하면 북극의 엘즈미어섬도 약 5000만 년 전에는 아열대 기후처럼 따뜻해 코뿔소, 악어, 하마 등의 동물이 서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엘즈미어섬은 캐나다의 누나부트 준주에 속하는 섬으로, 북극해에 있는 캐나다의 섬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다.
이 같은 추정은 콜로라도주립대학 연구진이 이 지역에서 발견된 화석의 산소 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화석에서 발견된 산소 동위원소 농도는 동물들이 마셨던 물의 산소 동위원소와 똑같으므로 당시 기온을 추정할 수 있다.
분석 결과 엘즈미어섬은 따뜻할 때 19~20℃까지 올라갔으며, 가장 추웠을 때도 0~3.5℃를 유지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 엘즈미어섬에서는 악어, 하마, 코뿔소를 비롯해 가죽날개원숭이, 맥, 바다거북, 큰뱀 등 다양한 동물의 화석이 발견됐다.
- 이성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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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11-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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