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화산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Kilauea volcano)이다.
지난 200년간 활동해온 이 화산은 최근 들어 거의 매년 분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때마다 수 억 톤의 용암을 쏟아낸다.
지난해 6월에도 격렬한 분화가 있었다. 화산 정상에 있던 냄비 모양의 분화구가 붕괴될 정도였는데 하와이 화산관측소는 흘러내린 용암의 양과 칼데라의 지반 침하 정도가 0.8k㎥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32만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생물체의 또 다른 진화 과정 탐사
이렇게 쏟아져 나온 용암은 인근 도로, 주차장, 주택, 목장, 심지어 선착장으로 흘러나가면서 생명과 삶의 흔적을 소멸시켰다.
분화가 멈춘 후 수개월 후에는 그 위에 쭈글쭈글한 문양의 새로운 땅을 탄생시켰는데 그 위에 용감한 동물이 살고 있었다. 학명이 ‘카코네모비우스 포리(Caconemobius fori)’, 하와이 말로 ‘우히니 네네 펠레(ūhini nēnē pele)’인 용암 귀뚜라미다.
21일 ‘사이언스’ 지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용암이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있는 이 화산 국립공원을 뒤덮은 후 최초로 거주를 시작한 다세포 생물, 이 용암 귀뚜라미에 주목하고 연구에 착수하고 있는 중이다.
이 귀뚜라미는 날개가 퇴화되거나 사라지고 없어서 날지도 못하는 곤충이다. 더구나 다른 생명체보다 3개월이나 먼저 나타나 번식하다가 다른 생명체가 등장하기 전에 모두 사라져 버린다.
과학자들은 이 신기루 같은 보잘 것 없는 곤충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이번 주 탐사팀을 구성하고 이 화산공원의 용암지대로 들어갈 예정이다.
탐사팀을 이끌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곤충학자인 말린 적(Marlene Zuk) 교수는 “그동안 과학자들이 이 귀뚜라미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여오지 않았다”며, “이번 탐사를 통해 이 신기한 곤충의 삶을 면밀히 관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이 용암 귀뚜라미가 그처럼 척박한 땅에서 다수가 번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그 진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 화산공원 주변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은 지난 200년 전부터 용암이 만들어낸 새로운 땅에 귀뚜라미들이 번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훨씬 이후인 1970년대다.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비숍 박물관의 곤충학자 프랑크 하워드(Frank Howarth) 박사 탐사팀은 1974년 용암 지대를 탐사한 후 이 용암 귀뚜라미들이 다수 서식하는 것을 발견했다.
특이한 번식 과정 등 밝혀낼 수 있어
치즈 등의 미끼를 사용해 153마리의 귀뚜라미를 포획한 후 이 생명체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당시 탐사팀은 이 곤충이 식물 등 다른 생물이 나타나기 전 3개월 전부터 이 척박한 땅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보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곤충이 어떤 생물도 살아남지 못하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린네식 이명법에 따라 1978년 ‘카코네모비우스 포리’란 학명을 부여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하워드 박사팀은 이 귀뚜라미들은 용암 위에 먹이(생명체)가 없는 상황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가벼운 식물조각들, 혹은 가벼운 광물질인 해포석을 먹었을 가능성을 추정하고 있었다.
해포석은 흙이나 점토 모양의 회백색 광물로 다공질이며 마르면 가벼워서 물에 뜨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해포석 안에는 알부민(albumen)이라는 단백질 복합체가 들어 있어 귀뚜라미의 영양을 보충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 곤충들은 용암 위에 다른 식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할 즈음에 이미 다 사라지고 없었다. 식물들이 등장할 즈음에는 이 용암 귀뚜라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용암 귀뚜라미들이 어떻게 그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번식할 수 있는지, 또 다수 번식했다가 다른 식물이 번식하기 전에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사라지는지 강한 의문을 품어왔다.
탐사팀을 이끌 말린 적 박사는 이 용암 귀뚜라미가 다른 곤충과 달리 척박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진화생태학자 로즈메리 길레스피(Rosemary Gillespie) 교수는 이 곤충들이 어떤 환경에서도 잘 살아나갈 수 있는 제네럴리스트(generalists)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디든 잘 이동할 수 있으며 번식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이 귀뚜라미는 날개가 약해 날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날개로 소리를 내지 못해 다른 귀뚜라미들처럼 수컷이 암컷을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암‧수 교미도 매우 색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수컷 다리를 이용해 헤몰린(hemolin)이라는 혈액과 유사한 액체를 암컷에 주입시킨다. 이 과정에서 수컷은 자신의 몸의 3~8%를 상실하는 시련을 겪는다.
캔자스 주립대 곤충학자 제레미 마셜(Jeremy Marshall) 교수는 “매우 특이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 이런 특이한 모습을 지니게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린 적 교수가 이끄는 탐사팀은 가장 최근에 생겨난 화산유암(lava flows)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곳에서 수수께끼의 용암 귀뚜라미를 포획해 이들 곤충들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떤 생물학적 특성들을 지니고 있는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적 교수는 “이번 탐사 결과를 통해 생물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방식을 통해 생존할 수 있으며,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 등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연구는 미 국립과학재단(NFS)가 지원하고 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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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3-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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