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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병희 객원기자
2018-08-03

현대 피그미족, 멸종 ‘호빗’과 무관 섬의 고립상태에 따른 자연선택으로 왜소성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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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열대의 섬에 두 집단의 피그미족이 있다. 하나는 수만 년 전에 멸종했고, 다른 한 집단은 아직도 거기에 살고 있다. 두 집단은 서로 관련이 있을까?

간단한 질문이지만, 이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

그동안 아무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 살았던 호모 플로레시언시스[Homo floresiensis, 일명 ‘호빗’ (hobbit)]의 화석에서 DNA를 복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연구팀은 현대인의 DNA에서 고대 유전자 서열을 찾을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야 했다.

이 기술은 미국 프린스턴대 생태 및 진화 생물학과 조수아 아키(Joshua Akey) 교수실 연구진이 개발했다. 연구팀은 이를 이용해 고대 호모 플로레시언시스와, 지금 그 곳에 살고 있는 키 작은 피그미인들과의 유전적 관련성을 확인해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3일자에 발표했다.

해답은 ‘유전적 관련성이 없다’로 결론 났다.

6만~10만년 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 살았던 ‘호빗’ 피그미종인 호모 플로레시언시스는 현재 같은 섬에 살고 있는 현대의 피그미족과는 유전적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섬에 고립된 환경이 자연선택에 따른 왜소성을 발현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Illustration by Matilda Luk, Office of Communications, Princeton University
6만~10만년 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 살았던 ‘호빗’ 피그미종인 호모 플로레시언시스는 현재 같은 섬에 살고 있는 현대의 피그미족과는 유전적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섬에 고립된 환경이 자연선택에 따른 왜소성을 발현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Illustration by Matilda Luk, Office of Communications, Princeton University

“호빗 유전자 흐름 징후 없어”

논문 제1저자인 세레나 투치(Serena Tucci) 아키 교수실 박사후 연구원은 "당신과 나의 유전체 안에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가 있다”며, "일부 현대인들은 멸종한 다른 인류종인 데니소바인 (Denisovans)의 유전자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확인이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호모 플로레시언시스와 같이 비교할 유전자 정보가 없는 다른 인류종들은 어떤 현대인이 그들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투치 박사는 이 때문에 다른 방식을 개발해야 했다.

그는 “원천 자료를 바탕으로 유전자 덩어리에 ‘페인트 칠’을 한 다음 유전자를 검색해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혹은 다른 알려지지 않은 종들로부터 유래한 유전자 덩어리를 찾는다”고 말했다.

현대 인도네시아인과 플로레스 섬에 살고 있는 현대 피그미족 및 호모 플로레시언시스 키 비교. Courtesy of Dr. Serena Tucci, Department of Ecology and Evolutionary Biology, Princeton University
현대 인도네시아인과 플로레스 섬에 살고 있는 현대 피그미족 및 호모 플로레시언시스 키 비교. Courtesy of Dr. Serena Tucci, Department of Ecology and Evolutionary Biology, Princeton University

투치 박사는 이 기술을 사용해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의 리앙 부아(Liang Bua) 동굴 근처 마을에 사는 32명의 현대 피그미인(pygmies)들의 게놈을 분석했다. 이 동굴에서는 지난 2003년 호모 플로레시언시스의 화석이 처음 발견됐었다.

투치 박사는 “그들은 확실하게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많이 가지고 있는 반면 데니소바인 유전자는 조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리는 오세아니아에서 플로레스 섬으로 얼마 간의 이주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인구집단에게 어느 정도 공통된 조상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원이 알려지지 않은 염색체 ‘덩어리’(Chunks), 즉 호모 플로레시언시스(일명 호빗)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대인을 복원한 모습. 왼쪽부터 2만600년 전의 16~18세 된 호모 사피엔스 여성, 6만년 전의 30대 호모 플로레시언시스 여성, 3만6300년 전 20대의 네안데르탈인 여성. 프랑스 리옹 콩플뤼안스 박물관 소장.  CREDIT : Wikimedia Commons / Ismoon
고대인을 복원한 모습. 왼쪽부터 2만600년 전의 16~18세 된 호모 사피엔스 여성, 6만년 전의 30대 호모 플로레시언시스 여성, 3만6300년 전 20대의 네안데르탈인 여성. 프랑스 리옹 콩플뤼안스 박물관 소장. CREDIT : Wikimedia Commons / Ismoon

작은 키 유전 변이 발현 빈도 높아

논문 교신저자인 캘리포니아 산타 크루즈 대(UCSC) 생물분자 공학과 리처드 ‘에드’ 그린 (Richard Ed Green) 부교수는 "현존 인간의 게놈에서 유전적으로 호빗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번과 같은 방법을 통해서였을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관련 정보를 알 수가 없었고, 호빗으로부터 오늘날 현존하는 사람들에게 유전자 흐름이 있었다는 어떤 징후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현대 피그미들에게서 식이 및 작은 키와 관련된 유전적 변화를 찾아냈다. 키는 유전성이 매우 강해서 유전학자들은 지금까지 키가 크거나 작은 것과 관련된 많은 유전적 변이체를 식별해 냈다.

투치 박사팀은 유럽인에게서 발견된 큰 키 유전자 측면에서 플로레스 피그미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작은 키와 관련된 유전적 변이체 발현 빈도가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린 교수는 이것이 "따분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의미있는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들 유전적 변이가 유럽인과 플로레스 피그미의 공통 조상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플로레스 피그미들은 현재 이들 인구집단에 상존하는 유전적 변이에 따른 자연선택에 의해 키가 작아지게 됐으며, 따라서 이들의 키가 왜 작아졌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고대 호모 플로레시언시스로부터 유전자를 받았다는 사실을 규명할 필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호모 플로레시언시스를 포함해 플로레스 섬에 살았던 거대한 쥐와 황새 및 난쟁이 코끼리를 복원한 모습.  CREDIT : Wikimedia Commons /Jony Cooper / Reconstruction of Homo floresiensis, National Museum of Nature and Science, Tokyo
호모 플로레시언시스를 포함해 플로레스 섬에 살았던 거대한 쥐와 황새 및 난쟁이 코끼리를 복원한 모습. CREDIT : Wikimedia Commons /Jony Cooper / Reconstruction of Homo floresiensis, National Museum of Nature and Science, Tokyo

피그미에게서 이뉴잇족과 같은 효소 유전자 발견

플로레스 피그미 게놈에서는 또 FADS 효소(지방산 불포화 효소)라고 불리는 지방산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 유전자에 자연선택이 작용했다는 증거를 볼 수 있었다. 이 유전자는 그린란드의 이뉴잇(Inuit) 족을 포함해 다른 어류를 먹는 인구집단의 식이 적응과 관련이 있다.

화석 증거에 따르면 호모 플로레시언시스는 오늘날의 플로레스 피그미인보다 키가 현저하게 작았다. 현대 플로레스 피그미인들의 키는 평균 145cm인데 비해 호빗들은 미국 유치원생들의 평균 키(106cm)보다 작았다.

이들은 또 손목과 발 모양이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에렉투스와 달랐다. 이는 아마도 코모도 드래곤을 피하기 위해 나무에 기어 올라가야 할 필요성에 기인한 것 같다고 투치 박사는 말했다.

호모 플로레시언시스 화석 뼈가 발견된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 리앙 부아 동굴 모습. 이 ‘호빗’ 호미닌은 6만~10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의 곁에서 발굴된 석기들은 5만~19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CREDIT : Wikimedia Commons /Rosino
호모 플로레시언시스 화석 뼈가 발견된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 리앙 부아 동굴 모습. 이 ‘호빗’ 호미닌은 6만~10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의 곁에서 발굴된 석기들은 5만~19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CREDIT : Wikimedia Commons /Rosino

고립된 섬에서 나타나는 왜소성

섬에 격리된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극적인 크기 변화는 흔히 제한된 식량 자원과 포식자로부터 벗어난데 따른 공통적인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섬에서 큰 종은 작아지고 작은 종은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호모 플로레시언시스가 생활할 무렵 플로레스 섬에는 난쟁이 코끼리와 거대한 코모도 드래곤, 커다란 새와 쥐가 살았고, 리앙 부아 동굴에 이 동물들의 뼈가 남아있다.

투치 박사는 "섬은 진화를 위한 매우 특별한 장소"라며, "섬이 갖는 왜소화 과정이 덩치 작은 하마와  코끼리 같은 작은 포유류와 작은 인간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립된 섬에서 나타나는 왜소성(insular dwarfism)은 플로레스 섬에서 적어도 두 번 이상 독립적으로 발현됐다고 말했다. 한번은 호모 플로레시언시스에서 그리고 두 번째는 현대 피그미에서 일어났다.

투치 박사는 "이것은 우리 인간도 진화적으로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실로 흥미로운 사실”이라며, “인간도 다른 포유류와 같으며, 같은 과정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병희 객원기자
hanbit7@gmail.com
저작권자 2018-08-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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