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사이언스 슬램-D(Science Slam-Daedeok)가 대전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문화센터에서 23일 개최됐다.
사이언스 슬램(Science Slam)은 2008년 독일에서 시작된 과학 대중강연 프로그램으로, 과학기술인들이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연구를 청중에게 소개하고 평가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이언스 슬램-D는 올해 3월 첫 선을 보인 한국형 사이언스 슬램으로 IBS,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대덕넷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조금 가신 저녁 6시 반. IBS 과학문화센터는 사이언스 슬램-D를 찾은 청중들의 열기로 인해 여전히 뜨거웠다.
이번 행사에는 ▲이준이 IBS 박사 ▲권재민 국가핵융합연구소 박사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박사 ▲유재원 UST 박사과정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박사 총 5명의 과학기술인이 발표에 나섰다.
사이언스 슬램-D는 철저하게 청중들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발표 내용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기 위한 공감봉이 사전 배포되고 청중 가운데 타임 키퍼(끝나기 2분 전에 발표자에게 시간을 공지하는 역할)와 분위기 메이커(청중의 박수를 유도하는 역할)가 지정된다.
발표 순서 또한 주최 측이 임의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청중석에서 직접 공을 뽑아 나온 순서대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기후변화에 대해 논하다
IBS 기후물리연구단 이준이 박사의 ‘미래의 기후 예측’을 주제로 첫 번째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 박사는 청중을 향해 “며칠 후의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도 어려운데 미래의 기후를 아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답은 ‘그렇다’였다. 그는 “(날씨 예측을 위해 관측하는) 대기는 형질이 불같아서 굉장히 빠르게 변한다. 이와 다르게 해양과 토양, 해빙, 식생 등은 과거의 흔적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때문에 미래의 기후를 예측할 때 활용된다”고 설명하며, 지구의 기후 시스템은 다섯 가지의 권역(대기권, 수권, 지권, 빙권, 생물권)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면밀히 살피는 작업임을 강조했다.
이준이 박사는 “현재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2100년도의 지구 온도는 4 ~ 7℃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뒤의 기후변화는 인간이 선택하는 사회 경제적 경로에 크게 달려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권재민 국가핵융합연구소 박사도 기후변화를 주제로 청중 앞에 섰다. 권 박사는 “핵융합 장치와 행성은 닮아있다”고 말하며 핵융합 연구와 이상기후 현상 사이의 흥미로운 공통점에 대해 논했다.
핵융합은 수소나 헬륨 같은 가벼운 원소의 원자핵이 융합하는 반응이다. 이때 생기는 질량 감소는 다량의 에너지로 전환되며 이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 핵융합 발전의 원리다.
권재민 박사는 “핵융합을 통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뜨거운 입자들을 가둘 수 있는 자기장 장치가 필요한데 이 원리는 자전하는 행성의 전향력(회전하는 곳에서 물체가 받는 힘)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구 자전으로 발생하는 제트기류(Jet stream)는 지구의 대기의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하며, 북극 근처의 있는 차가운 공기를 가두는 제트 기류에 이상이 생기면 한파나 이상 고온 등의 기후 변화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핵융합 장치도 마찬가지다. 자기장 장치에서의 제트기류가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 갇혀있어야 하는 입자들이 나오면서 핵융합 장치의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며 둘의 공통점을 제시했다.
과학자의 시선으로 보는 인삼의 효능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박사의 발표 주제는 ‘인삼’이었다. 그는 인삼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기록되어 왔는지를 비롯하여 현대 과학에서 인삼이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지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최 박사는 “심장손상 억제, 소염 진통, 항암, 항우울, 면역증강, 피부보호, 간 보호 등 입증된 인삼의 효능은 셀 수 없이 많은데 최신 논문들을 보면 인삼의 실제적인 효과가 ‘컴파운드 케이’라는 성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컴파운드 케이(compound K)는 고분자 구조의 인삼 사포닌에서 당 부분이 떨어져 나간 형태로 사포닌이 장 내 미생물들에 의해 분해되어 생성된다.
그는 “Rb1, Rb2 등 인삼 사포닌 중 많은 성분들은 사람 몸에 직접 흡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약효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한국인의 20~30%는 사포닌을 컴파운드 케이로 분해하는 미생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히며 이 경우 홍삼이나 발효된 형태의 인삼을 섭취하면 컴파운드 케이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주에 한 발 다가가기
UST 박사과정 유재원 씨는 ‘ICL 은하단의 비밀의 밝혀줘’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중력으로 모여있는 천체들 중에 가장 큰 집단인 ‘은하단’을 소개했다.
유재원 씨는 ICL(Intracluster light)을 통해 은하단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ICL(Intracluster light)은 은하단 전체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는 별빛이다. ICL을 공부하면 해당 ICL이 들어있는 은하단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은하단의 형성과 진화 역사를 통해 현재 우주 거대 구조의 생성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며 은하단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 발표자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박사의 주제는 ‘소행성’이었다. 문 박사는 46억 년 전 먼지와 티끌들이 태양의 주위를 납작하게 돌며 서로 부딪혀 깨지고 뭉치는 과정을 거쳐 소행성, 혜성들이 태어났다고 설명한다.
그는 “지구는 만들어졌을 때 뜨거운 용융상태였기 때문에 지각은 뜨고 무거운 금속은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철이나 니켈, 금이 표면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소행성이 충돌해서 지표에 남은 것이다”고 말하며 “지구의 바다는 혜성에서 왔을 것으로 추측했지만, 현재 연구결과에서의 중수소 함량을 보면 소행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문 박사는 “요즘은 소행성 광산 채굴을 하겠다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면서 소행성에서 전자제품의 주요한 부품으로 쓰이는 백금족, 희토류 금속을 채굴하게 되면 큰 수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덧붙여 그는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물이다”고 주장했다. 물 500mL 한 병을 우주로 가지고 나가는 데는 한화로 2000만 원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물이 매장되어 있는 소행성에서 물을 추출해서 전기분해를 하면 로켓 연료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청중이 반응이 우승자를 결정
시간을 칼같이 알려주는 타임 키퍼와 강연 중간마다 박수와 함성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분위기 메이커 덕에 제 5회 사이언스 슬램-D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모든 강연자의 발표가 끝나고 문자 투표로 우승자가 결정되었다. 청중의 평가 기준은 재미와 지식 2가지 요소이며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점은 ‘전문적인 내용이 얼마나 쉽고 효과적으로 그리고 즐겁게 대중에게 전달됐는가’이다.
우승은 소행성을 주제로 발표한 한국천문연구원의 문홍규 박사에게로 돌아갔다.
다음달 사이언스 슬램-D는 <호러 특집>으로 8월 20일 IBS 과학문화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 최혜원 자유기고가
- heyone@kaist.ac.kr
- 저작권자 2018-07-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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