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행정고시 출신인데 이 것이 저에게 일종의 ‘라벨’(고급 상표)이 되어줬어요. 지금까지 여기에 의지해 너무 잘 살아왔거든요. 하지만 이건 옳지 않아요.”
“앞으로 미래는 점수 몇 점 더 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실력주의’ 사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어요. 실력주의야 말로 능력과 부를 가진 부자들에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부자들에게 불리한 입시는 없다고 봐야 해요.”
30일(월)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 신관 ‘4차 산업혁명시대 교육 개혁’ 포럼 현장에는 현재 교육 현장의 문제점과 대응방안에 대한 진지한 설전이 오갔다. (사)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주최로 열린 이 날 포럼은 급변하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회 변화에 맞춰 우리 교육의 방향을 찾아본다는 취지로 개최됐다.
복잡한 시대적 사회적 변화 속에서 우리 교육이 가야할 방향은
교육 방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짚어봐야 한다. 이 날 전문가들은 학교 현장, 교원제도, 입시제도, 정부정책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
김진우 세종과학고등학교 교사는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김진우 교사는 최근 대입제도를 둘러싸고 수능 중심의 입시제도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상에 대해 우려감을 나타냈다. 그는 “수능 중심으로 입시 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EBS 문제풀이’, ‘5지 선다형 문제’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내신에도 지필평가가 대다수의 비중을 차지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연 이런 것이 올바른 방향인지 생각해 본다”고 토로했다.
평가는 변별력이 핵심이다. 김 교사는 채점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서 도입된 객관식 지필고사 위주의 평가가 더욱 세밀한 변별력을 가지기 위해 아이들을 더욱 무한경쟁 구도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종태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21세기교육연구소 소장은 교원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종태 소장은 “지금 우리나라 에는 제대로 된 교원 양성 프로그램이 없다. ‘교사는 노량진 학원에서 만들고 있다’는 말이 떠돌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교원 승진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 소장은 “연수를 통해 교사 검증이 되지 않으면 과감하게 교사를 전직시키는 제도가 자리잡아야한다. 특히 교원 순환전보제로 3~4년 단위로 교사들이 학교를 ‘장돌뱅이’처럼 떠돌아다녀서는 아이들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기르기 어렵다. 당장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비판했다.
자주 바뀌는 입시제도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입시제도와 교육제도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박남기 광주교육대학 교수(전 광주교대 총장)는 “교육문제라고 생각한 것도 알고 보면 그림자 속에 다른 문제의 근원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며 ‘그림자론’을 주장했다. 특히 입시제도만 바뀌면 현재의 사회 불균형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착각이라고 일축했다.
박 교수는 “현재 학벌주의는 실력주의 극한의 결과”라며 “실력주의야 말로 ‘무한경쟁의 승자독식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이유에 대해서는 “노력으로 뽑을 것이라고 믿는 실력주의의 이면에는 타고난 능력과 노력에 플러스로 더해지는 비실력적인 요인에 가정배경과 운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며 “부자들에게 불리한 입시제도는 없다”고 덧붙였다.
학교는 입시선발 코스가 아니라 배움의 장으로 돌아가야
이러한 현행 교육제도를 변화시킬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학교는 원래 가졌던 근원적인 목표로 돌아가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
김진우 교사는 학교가 더 이상 직업만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그는 학교가 입시 선발을 위한 코스가 되지 않고 배움의 즐거움이 있는 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수능과 내신을 절대평가하고 학교에서는 프로젝트 수업을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사는 “미래의 존재하지도 않을 지식과 직업을 위해 학교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꼴”이라며 “이 때문에 다수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학습을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연구위원도 이에 동의했다. 한 연구위원은 현행 교육제도가 어떤 좋은 제도와 정책을 가져다 놓아도 암기식 주입식 교육으로 변질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폐단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주고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학생들이 입시교육에 매달리지 않고 학창생활 자체에서 즐거움과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이 말하는 대안은 바로 ‘낙오자가 없는 교육(Equity education)’이다. 한선화 연구위원은 “고등교육에서 학생들의 70%는 사회에서 꼭 배워야 할 지식과 보편적 상식을 배우도록 하고 나머지 30%는 심화경쟁체제에 대비하는 방향이 어떨까” 하고 제안했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이다. 단순히 입시제도의 변화만으로는 앞으로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과 해빙기에 접어든 남북한의 관계에 대응할 수 없다. 시대적 사회적 복합적인 변수도 교육 문제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 교수는 “미래는 4차 산업혁명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통일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급속한 기술발전과 더불어 국내외 환경도 함께 복합적으로 고려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사회 자체의 생각의 틀이 변화해야 한다. 배상훈 성균관대학교 대학교육혁신센터장은 “입시정책이 바뀐다고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나 자신조차 서울대학교, 행시 출신이라는 ‘라벨(고급상표)’를 달고 이제까지 너무 잘 살았다. 하지만 그건 옳지 않다”고 말한 후 “사회 자체가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현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학벌·학력주의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 김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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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5-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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