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외모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범고래(killer whale, orca)지만 바다를 지배하고 있는 최고의 포식자다. 힘은 물론 지능에 있어서도 따라올 동물이 없을 만큼 협동력 또한 뛰어나서 다른 동물들이 흉내 내지 못할 대담한 사냥전략을 구사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범고래가 사람처럼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범고래들이 ‘헬로(hello)’, ‘바이바이(bye-bye)’, ‘원, 투, 쓰리(one, two, three)’ 등 간단한 말들을 흉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에이미(Amy)’란 사육사 이름, 늑대와 코끼리의 울음소리,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 혀를 입술 사이로 진동시키며 내는 야유 소리 등도 이해하면서 흉내 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범고래가 사람처럼 ‘의미가 있는’ 말들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연구 결과다.

‘헬로’, ‘원, 투, 쓰리’에서 55% 정확도 보여
그동안 과학자들은 범고래의 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 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소리들을 이해하면서 그 소리를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람처럼 언어을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일 ‘라이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관련 논문은 ‘영국왕립학회보 B’ 31일자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Imitation of novel conspecific and human speech sounds in the killer whale (Orcinus orca)’이다.
연구를 이끈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의 호세 에이브럼슨(José Z. Abramson) 박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범고래가 그런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범고래의 언어습득 능력을 확인한 후에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에이브럼슨 박사 말대로 그동안 과학자들은 범고래가 그들 특유의 언어 능력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단순히 범고래가 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프랑스 마린랜드 아쿠아리움에 살고 있는 14세의 범고래 ‘위키(Wiki)’를 대상으로 사육사들이 하는 말, 그리고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특이한 물 바깥의 소리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테스트를 실시했다.
범고래가 좋아하는 물고기를 보상하면서 30번에 걸쳐 다양한 소리들을 흉내 내도록 유도한 후 시간에 관계없이 소리 파장을 인식할 수 있는 동적정합(DTW, dynamic time warping)이란 알고리듬을 사용해 원래의 소리와 흉내를 낸 소리 간의 일치성을 체크해나갔다.
분석 결과 범고래 ‘위키’가 10번 미만의 시도에서 비슷한 소리를 재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헬로(hello)’와 ‘원, 투, 쓰리(One, Two, Three)’란 소리에서는 55%의 정확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뛰어난 능력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연구팀이 새롭게 주목한 것은 범고래 위키의 언어 이해력이다. 에이브럼슨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범고래 위키가 다른 어떤 동물보다 더 확실히(certainly) 다양한 소리들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reconnizable) 보고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람의 말 알고 구사해
소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물체 등이 어떤 의미의 소리들을 내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어떤 생소한 소리를 들은 다음에도 그 소리를 매우 정확하게 모사할 수 있었다며, 소리에 대한 인식 능력을 인정했다.
소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범고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7년 미 국립과학회 회보에 다른 나방에 의해 발신된 경고음을 흉내 내고 있는 물방울무늬 불나방(polka-dot wasp moth)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아마존에 서식하고 있는 얼룩살괭이(margay)도 먹이를 유혹하는 얼룩무늬 타마린(tamarin)의 소리를 흉내 내고 있으며, 두갈래 꼬리를 지닌 드롱고(fork-tailed drongo) 역시 45종의 다른 새들의 위험 신호를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가장 뛰어난 흉내꾼은 호주산의 금조(琴鳥, lyrebird)다. 2009년 ‘BBC 어스(BBC Earth)’ 도큐멘터리에 따르면 이 커다란 새는 다른 동물뿐만 아니라 건축 장비가 내는 소리, 다양한 유형의 자동차 경적들을 흉내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앵무새, 잉꼬 등도 사람의 말을 능숙하게 흉내 낼 수 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의 회색앵무(grey parrot)가 임종 직전 사람의 말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돼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지난 2006 생물학 저널 ‘바이올로지 레터’에 외롭게 살고 있는 범고래가 다른 곳으로부터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바다사자의 소리를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이 보고됐다. 최근 들어서는 사람이 하는 말을 구사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미국 샌디아고 해변에 살고 있던 흰돌고래(beluga)가 ‘아웃(out)’이란 말을 하고 있으며, 한국에 살고 있는 한 동물원 코끼리 코식이(Koshik)가 ‘헬로(hello)’, ‘굿(good)’, ‘노(no)’, ‘싯 다운(sit down)’, ‘라이 다운(lie down)’ 등의 말을 하고 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이번 범고래 논문의 공동 집필자인 비엔나 대학의 생체음향학자 안젤라 호르바트(Angela Stoeger-Horwath) 교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이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사람의 말을 모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소리 흉내에 그치고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한국의 코식이도 그 의미를 이해하기 보다는 소리 흉내에 머물고 있지만 범고래 위키는 그 말은 물론 소리까지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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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2-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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