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인상파 화가 고흐의 작품을 가까운 곳에서 관람하고 직접 구매할 수 있는 날이 가까워졌다. 3D 스캐닝과 고해상도 프린팅으로 붓질과 갈라짐까지 그대로 재생해낸 새로운 복제기술 덕분이다.
네덜란드의 반 고흐 뮤지엄은 홍콩과 LA에 이어 지난달 26일 두바이에서도 ‘렐리에보 컬렉션’ 전시를 시작했다. 원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복제된 이 작품들은 전시회가 끝나면 일반에게 판매될 예정이다.
원작의 액자와 뒷면 스티커까지 그대로 복제한 렐리에보 컬렉션은 향후 세계 각지의 학교에 보내 학생들이 직접 관찰하고 연구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저시력자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별 버전도 제작 중이다.
고흐의 원본 그대로 살려내는 3D 복제기술 개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그림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세계 유명 미술관을 찾아가야 한다. 경매에 나오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일반인은 구매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데 고가의 고흐 작품 원본을 가까운 곳에서 마음대로 관람하고 심지어 집에 소장해둘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뮤지엄(Van Gogh Museum)’이 완성한 3D 복제기술 덕분이다.
반 고흐 뮤지엄은 세계에서 고흐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다. 회화 200점과 스케치 400점을 소장 중이며 편지도 700점이나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의 고흐 애호가들이 보내는 전시 요청에 일일이 응답하지는 못한다. 작품을 해외로 반출하고 손상없이 전시를 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뮤지엄 측은 후지필름 벨기에 지사와 협업으로 ‘렐리포그라피(Reliefographie)’라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3D 스캐닝으로 작품의 세세한 부분까지 그대로 촬영하고 이를 고해상도 3D 인쇄 기술로 출력한 것이다. 원본에 존재하는 두터운 물감과 붓질 그리고 니스 보존제의 갈라짐과 테두리 액자의 흠집까지 완벽하게 복제해냈다.
평면에 새긴 형상이 입체적으로 튀어나도록 조각하는 기법을 부조(relief)라 한다. 그림의 입체적인 상태까지 그대로 되살릴 수 있기 때문에 ‘렐리포그라피’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말로는 ‘부조촬영법’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렐리에보 콜렉션(Relievo Collection)’이다. 렐리에보라는 용어는 이탈리아어로 ‘부조’를 뜻한다. 이탈리아 최초의 미술 논문 ‘예술의 서(Il Libro dell’Arte)’를 남긴 14세기 화가 첸니노 첸니니(Cennino Cennini)가 처음 사용했다.
지금까지 총 9점의 고흐 작품이 복제되어 렐리에보 컬렉션에 이름을 올렸다. 1887년작 ‘클리시 대로(Boulavard de Clichy)’, 1888년작 ‘해바라기(Sunflower)’와 ‘침실(Bedroom)’ 그리고 ‘생트마리드라메르 해안의 고깃배(Fishing Boats on the Beach at Les Saintes-Maries-de-la-Mer)’, 1889년작 ‘추수(Harvest)’와 ‘관목(Undergrowth)’, 1890년작 ‘꽃피는 아몬드나무(Almond Blossom)’과 ‘해질녘의 풍경(Landscape at Twilight)’ 그리고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한 밀밭(Wheatfield under Thunderclouds)’ 등이다.
특히 ‘해바라기’와 ‘꽃피는 아몬드나무’가 인기다. ‘해바라기’는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꽃을 그린 작품이며 동료 화가인 폴 고갱(Paul Gauguin)이 소장하기도 했다. ‘꽃피는 아몬드나무’는 동생 테오가 낳은 조카를 위해 그린 작품으로 2월 초봄에도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했다.
9종의 복제품을 작품당 3천만 원에 구매 가능
지금까지 9점의 원본이 각각 260개의 한정판으로 복제되어 렐리에보 컬렉션은 총 2340점이 되었다. 그러나 제작과정이 복잡해 하루에 3개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우선 원작을 고해상도 3D 스캐너로 촬영한다. 높이까지 입체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물감이 두텁게 칠해진 부분과 섬세한 붓질이 담긴 부위도 모두 입력된다. 촬영 후에는 점검을 통해 이상이 있는 부분을 교정한다. 출력은 고해상도 특수 프린터로 진행한다.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칠해진 니스가 오래되어 갈라진 것까지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다.
심지어 원작 테두리의 액자에 난 흠집도 완벽하게 복제한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전시될 때마다 큐레이터들이 뒷면에 붙인 여러 장의 스티커들도 그대로 되살려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복제품은 일반인의 눈으로는 원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다.
반 고흐 뮤지엄은 렐리에보 컬렉션을 지난 2013년 7월과 8월에 홍콩 하버시티 쇼핑몰에서 전시했다. ‘진품도 아닌데 사람들이 구경을 올까’ 우려했지만 3D 기술로 완벽하게 복제된 작품을 일반인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관객을 끌어들였다. 아시아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본 뮤지엄 측은 향후 싱가폴, 도쿄, 베이징 등으로 전시를 확대할 계획이다.
복제품의 판매 가격은 작품당 2만5000 유로(약 3000만 원)에 달한다. 진품은 아니지만 원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아 구매자가 줄을 잇는다. 각 복제품마다 일련번호가 매겨지며 공식 보증서와 함께 고급 수제 보관함에 담겨 구매자에게 전달된다. 국내에서도 전문업체를 통해 구입이 가능하다.
뮤지엄 측은 2340점의 복제품 판매로 총 5850만 유로(약 700억 원)의 수입을 올릴 예정이다. 미술품을 구매하거나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등 뮤지엄을 유지하는 데 충당할 계획이다.
그러나 ‘가짜를 팔아 이익을 챙긴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악셀 뤼거(Axel Rüger) 반고흐 뮤지엄 관장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는 “나의 작품을 복제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고흐의 소망이 적혀 있다.
뤼거 관장은 “우리에게는 고흐의 소망을 실현시킬 능력과 기술이 있고 덕분에 세계 각지에 작품을 나눠줄 수 있어서 행복할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각지의 학교에 작품을 보내 학생들이 직접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저시력자와 시각장애인을 위해 특별 버전도 제작 중이다.
렐리에보 컬렉션 전시회는 홍콩에 이어 LA에서도 진행되었다. 지난달 26일부터는 고흐 서거 125주년을 맞아 두바이의 페어몬트 더 팜(Fairmont the Palm) 호텔에서도 시작되었다. 개관식에는 고흐의 조카손자 빈센트 빌럼 반고흐(Vincent Willem van Gogh)도 참석했다.
- 임동욱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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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3-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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