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런던올림픽 여자 마라톤에 출전한 에티오피아의 티키 겔라나(Tiki Gelana)가 런던 버킹엄 궁전 앞 결승선을 넘어섰다. 2시간23분07초의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은메달은 케냐의 에드나 키플라가트(Edna Kiplagat) 선수가, 동메달은 러시아의 탈랴나 페트로바(Talyana Petrova) 선수가 차지했다. 한국의 정윤희 선수는 41위로 들어왔다. 기록은 2시간31분58초.
이번 레이스에서 티키 겔라나 선수는 엄청난 네거티브 스플릿(negative split)을 보여줬다. 네거티브 스플릿이란 전반이 아니라 후반부에 빨리 달리는 것을 말한다. 겔라나 선수는 마라톤 전반부를 73분13초, 후반부를 69분54초에 달렸다. 후반이 3분19초나 빨랐다.
마라톤 후반 기록, 전반보다 월등히 빨라
겔레나 선수는 우승 후 가진 인터뷰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자신의 레이스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반환점을 돌면서 급수대에 놓인 물병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또 다른 선수들과 함께 뒤섞이면서 발이 얽혔고, 겔라나 선수가 땅에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오른쪽 팔꿈치에 큰 타박상을 입었다. 얼마 후 쓰러진 몸을 겨우 일으킨 겔리나 선수는 또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다리를 걸어 쓰러뜨린 선수가 누구인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온통 달리는 데에만 생각을 집중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집중력은 마지막 구간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2.195킬로미터를 6분57초에 달렸다. 승부는 마지막 1.5킬로미터에서 갈렸다. 이 구간에서 겔라나는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러시아 페트로바 선수와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키플라가트 선수 등을 제쳤다.
겔라나의 5킬로미터 구간 기록을 보면 20킬로미터 때까지 모두 17분을 넘어섰다. 그러나 반환점 사고가 있은 후 계속 16분대를 기록했다. 과거 유례가 없는 네거티브 스플릿이었다. 사실 그녀는 지난 4월에 열린 로테르담 마라톤대회에서도 네가티브 스플릿을 기록했었다.
그녀의 기록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이 이뤄졌다. 먼저 외신들이 주목한 것은 겔라나의 고향이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한 파투마 로바(Fatuma Roba)와 겔라나의 고향이 같다는 것. 이번 런던올림픽의 1만미터 우승자 티루네시 디바바(Tirunesh Dibaba)역시 같은 곳에서 태어났다.
에티오피아 남부 해발 3천미터가 넘는 고지, 오로미아(Oromia Region)의 베코지(bekoji)는 장거리 육상선수들의 산실이다. 전설적인 육상선수로 나중에 마라톤으로 전향, 베를린 마라톤대회에서 2008~2009년 연속 우승한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Haile Gebrselassie) 선수 역시 이곳에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피로회복 훈련
겔라나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베고지에서는 달리기가 삶의 일부이며, 자신 역시 마을 주민들처럼 살아온 것 뿐"이라고 말했다. 산소가 희박한 해발 3천미터 이상의 고지대 생활은 그녀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마라톤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마라톤 선수들은 고지대 적응 훈련을 통해 심폐 기능을 향상시킨다. 혈액 내 헤모글로빈을 늘려 산소 섭취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2천미터 안팎의 고지대 훈련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3천미터가 넘는 베코지의 환경은 더 극한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인터벌(interval) 훈련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인터벌 훈련이란 일정 거리를 가볍게 달린 후 같은 거리를 전력 질주하는 것을 3~5번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이 훈련을 처음 한 선수들은 입에서 단내가 날 만큼 큰 피로감을 느낀다.
인터벌 훈련을 하는 것은 신체 내에서 피로물질인 젖산 축적 시간을 늦추기 위한 것이다. 마라톤을 완주하면서 비록 불완전하지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훈련인데, 많은 선수들이 고지대에서 땀을 흘리며 고된 인터벌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겔라나 선수에게는 이 인터벌 훈련 역시 생활의 일부였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네거티브 스플릿 역시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 마라톤의 성적이 좋지않은 편이다. 손기정, 황영조, 이봉주의 대를 이을 선수가 없다는 것.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아프리카 선수들의 활약이다. 고원지대에 사는 에티오피아, 케냐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다른 선수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아프리카 선수들의 체력을 따라갈 수 있는 선수 발굴과 과학적 훈련이 요구되고 있다.
-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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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2-08-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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