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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객원기자
2012-04-24

‘협동’ 시작하면서 뇌 커졌다 ‘디지털 생물체’ 만들어 진화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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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포함한 영장류, 돌고래, 코끼리 등은 여타 동물에 비해 뇌 크기가 현저하게 크다. 그 이유에 대해 과학자들의 의견은 제각각 다르다.

▲ 집단 내 개체들끼리 대립 대신 '협력'을 선택하면서 지능이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사회지능설'이 최초로 증명되었다. ⓒImageToday
가장 큰 설득력을 얻는 것은 집단이 커지고 복잡해지며 개체 간의 상호작용이 늘어나면서 지능이 발달했다는 ‘사회지능설(social intelligence hypothesis)’이다.

최근 아일랜드 더블린트리니티대학과 영국 에든버러대학의 공동연구진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 가설을 최초로 검증했다. 인공지능을 가진 디지털 생물을 만들었더니 서로 협조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뇌의 용량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생활이 지능을 발달시킨 것이다.

연구결과는 영국 ‘왕립학술원 생물학 회보(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협력으로 인한 지능의 진화(Cooperation and the evolution of intelligence)’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진화상 비효율적인데도 지능 발달한 이유는 ‘사회생활’

뇌 신경세포의 연결망이 많고 촘촘할수록 생물체의 지능이 높아진다. 영장류, 돌고래, 코끼리 등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 생물은 모두 신체에서 뇌의 비중이 크고 신경세포가 조밀하다.

높은 지능을 유지하려면 에너지 소모 면에서 그만큼 비싼 값을 치른다. 인간의 뇌는 체중의 2퍼센트밖에 되지 않지만 온몸에서 사용되는 포도당의 25퍼센트, 산소의 20퍼센트, 심박출량의 15퍼센트를 사용한다.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질 때는 ‘효율’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뇌만은 예외다. 에너지 소모가 많은데도 뇌의 크기가 커진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진화 상의 난제다. 1970년대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주장된 ‘사회지능설’이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다.

1973년 미국의 고생물신경학자 해리 제리슨(Harry Jerrison)은 저서 ‘뇌와 지능의 진화(Evolution of the brain and intelligence)’에서 동일한 집단 내의 개체들이 서로 협동하고 견제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능이 발달되기 시작했다는 ‘사회지능설’을 주장했다.

이어 1976년에는 영국의 심리학자 니콜러스 험프리(Nicholas Humphrey)는 논문 ‘지능의 사회적 기능(The Social Function of Intellect)’을 통해 사회지능설을 내세웠다. 사회집단을 이루면서 협력과 대립을 거듭한 결과 뇌의 용량이 커지고 지능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계의 오랜 논쟁이 이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점을 찾고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트리니티대학 동물학과의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교수와 박사과정생 루크 맥낼리(Luke McNally)는 영국 에든버러대학 면역및진화센터의 샘 브라운(Sam Brown) 연구원과 함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회지능설을 증명해냈다.

인공 뇌 지닌 디지털 생물체 실험으로 진화 증명

연구진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가상의 ‘디지털 생물체(digital organism)’를 만들었다. 인간의 뇌처럼 신경망이 조밀하게 연결된 인공 뇌도 부착시켰다. 인공 뇌는 네 가지의 노드(node), 즉 연결점을 기반으로 ‘죄수의 딜레마’와 ‘치킨 게임’을 실행한다.

▲ 인공 뇌의 신경망은 입력노드(A), 인지노드(B), 문맥노드(C), 출력노드(D)의 4가지로 구성되며, 이전의 결과값을 토대로 협력과 대립을 결정한다.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죄수의 딜레마’는 협력과 대립의 메커니즘을 알아내기 위한 게임이론(game theory)의 일종이다. 두 명의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누군가 먼저 죄를 자백하면 형을 줄여주는 대신에 상대방의 죄가 늘어난다.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날 수 있는데도 상대방이 먼저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자백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치킨게임’도 게임이론의 일종이다. 서로 마주 보며 달려오는 두 대의 자동차 중 핸들을 먼저 꺾는 쪽은 살아남지만 겁쟁이 취급을 받는다. 용기를 증명하려면 계속 달려야 하지만 결국 충돌해서 목숨을 잃는다. 둘 다 핸들을 꺾으면 ‘상대보다 못하다’는 핀잔을 듣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 상대의 뜻을 제대로 파악할수록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연구진은 네 개의 노드를 이용해 인공 뇌를 구성했다. 2개의 ‘입력노드’는 이전 게임의 결과값을 기억한다. 하나는 자신의 결과값을,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결과값을 기억했다가 다음 노드로 전달한다. ‘출력노드’는 모든 결과값을 합산해서 결국 협력할 것인지 반복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입력과 출력의 중간 과정에는 ‘인지노드’와 ‘문맥노드’가 개입한다. ‘인지노드’는 입력노드와 문맥노드에 저장된 값을 계산해서 그 결과를 출력노드로 보낸다. ‘문맥노드’는 인지노드의 저장값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음 게임 때 그대로 되돌려준다. 이 둘은 하나의 인지-문맥 노드쌍을 이루어 계산의 중추역할을 담당한다.

이전의 행동을 기억했다가 다시 떠올리는 문맥노드가 없다면 판단은 간단하다. 그러나 ‘내가 행동하는 그대로 상대방이 행동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하기 시작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한다. 하나의 가정이 생길 때마다 인공 뇌에 하나의 인지-문맥 노드쌍이 덧붙여진다.

연구진은 진화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돌연변이’ 요소도 첨가했다. 무작위적으로 돌연변이가 생기면 인지-문맥 노드쌍이 사라져 복잡한 계산이 불가능하다.

‘협력’을 고민하면서부터 뇌 신경망 복잡해져

이런 식으로 10개의 인공 뇌를 구성해서 ‘죄수의 딜레마’와 ‘치킨 게임’을 각 5만 번씩 반복적으로 실행했다. 그러자 ‘협력’을 고민하는 순간부터 신경망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나 이외의 개체는 무조건 싸워 없앤다’는 생각을 할 때는 고민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생존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시작되면서 경우의 수가 늘어났고 신경망도 덩달아 커지기 시작했다.

경우의 수를 가정하는 인지-문맥 노드쌍의 숫자를 10개로 제한하고 돌연변이 요소를 첨가했는데도 신경망은 계속 커졌다. 대립을 할 때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가 ‘집단 내 다른 개체와의 협력’을 고민하는 순간부터 지능이 갑작스레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초로 사회지능설을 증명한 것이다.

▲ 협력 횟수가 적을 때(위)보다 협력 회수가 많아질 때(아래) 뇌 신경망이 커지고 지능이 발달한다.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공동저자인 잭슨 교수는 더블린트리니티대학의 발표자료를 통해 “사회집단이 최초로 대립을 그만두고 협력을 시작했을 때부터 뇌의 크기가 커지고 지능이 높아지기 시작했다”며 “뇌의 크기가 커질수록 에너지 효율은 떨어지지만 대립을 피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으므로 생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주저자인 맥낼리 박사과정생은 디스커버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척추동물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뇌의 진화를 실험하기는 불가능해 인공 생물체 실험을 선택했다”며 “사회집단이 커지고 상호작용이 증가하면서 지능이 높아졌다는 결론을 내릴 만한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립보다 협력을 택할수록 뇌 크기가 커지고 지능이 높아진다는 사회지능설이 모델로 증명된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난달 동일 학술지에 “친구가 많을수록 이마 안쪽 ‘안와 전두피질’의 크기가 커져 타인의 마음상태를 이해하는 고차원 지능이 높아진다”고 발표한 바 있는 영국 옥스퍼드대 로빈 던바(Robin Dunbar) 교수는 “상대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상호주의는 남에게 마냥 잘해주는 이타주의와 다르다”며 “이번 논문에 사용된 상호주의적 사고방식은 영장류처럼 지능이 높은 생물에게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임동욱 객원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04-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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