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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리포터
2025-05-15

총기 사건, 총기 흔적 ‘빛’ 즉시 검출로 완전 범죄는 없다 페로브스카이트 기반 발광 반응으로 납 성분 총기 잔여물 즉시 검출… 법과학 수사에 새로운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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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이 울린 현장에는 탄환과 탄피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납 성분의 미세 입자, 즉 총기 잔여물(Gunshot Residue, 이하 GSR)이 주변 환경에 넓게 퍼져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GSR 분석은 고가의 장비와 숙련된 전문가, 복잡한 실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바로 적용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의 제약이 컸다. 

최근 총기 범죄가 증가하면서 GSR의 빠르고 정확한 검출 기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네덜란드 연구진이 새로운 총기 흔적 분석법을 제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연구진은 총기 잔여물에 포함된 납 입자가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반응을 이용해 자외선 조명 아래 형광을 띄게 하는 기술을 개발해 국제법과학저널(Forensic Science International)에 발표했다. 기존 방식 대비 민감도와 해상도가 대폭 향상됐고, 수 초 만에 분석이 가능한 속도 역시 큰 장점으로 평가된다. 

총기 난사 사건이 증가하는 가운데 새로운 총기 흔적 분석법이 발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Shutterstock

총기 난사 사건이 증가하는 가운데 새로운 총기 흔적 분석법이 발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Shutterstock


세계는 지금, 총기 사건과의 전쟁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해 2명이 숨졌고, 올해 2월에는 스웨덴 외레브로에 위치한 교육센터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 곳곳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총기 사건은 총기 접근성이 높아지는 만큼 사건 발생률도 높아지는 추세다. 무고한 시민이 일상생활 속에서 폭력에 노출되는 빈도도 점점 늘어가고, 공공의 불안은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총기 소지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법 밀수와 조직범죄를 통한 총기 유입은 동유럽, 남미,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도 치명적인 범죄를 양성하고 있다. 

 

총기 잔여물(GSR), 보이지 않는 결정적 단서

총기 사건 발생 직후 범인이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는 경우는 전체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다. 범행 직후 도주하거나 총기를 은닉한 경우에는 범인을 특정하기 위해서 수사기관은 결국 ‘보이지 않는 흔적’을 찾아내는 과학수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때 발사 순간 주변에 흩뿌려진 미세한 GSR이 범인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된다. 

2023년 6월, 미국 버지나어주 리치먼드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GSR 분석을 포함한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도주한 범인을 검거한 사례다. 당시 리치먼드 경찰청의 인터뷰를 보도한 AP에 따르면 "사건 직후 수백 명의 군중이 현장을 빠져나갔고, 체계적인 증거 확보가 없었다면 용의자 특정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광발광 납(PL-Pb) 검출 기술은 총기 발사 후 납 성분을 포함한 잔여물을 자외선 아래 밝은 녹색 형광으로 시각화하여 용의자 판별과 범죄 현장 재구성에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FSI

광발광 납(PL-Pb) 검출 기술은 총기 발사 후 납 성분을 포함한 잔여물을 자외선 아래 밝은 녹색 형광으로 시각화하여 용의자 판별과 범죄 현장 재구성에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FSI

하지만 GSR 분석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기존에는 주로 주사전자현미경과 에너지분산분광기를 이용해 납, 안티몬, 바륨 등 GSR의 핵심 구성 성분을 판별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현장에서의 직접 분석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전자현미경과 에너지분산분광기 같은 고가 장비와 숙련 인력을 요구하며, 분석에 수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또 로디조네이트(rhodizonate) 색반응은 신속하지만 정확도가 낮고 오염이나 오판 가능성이 크다. 샘플링 도중 입자들이 손실되거나 시료가 훼손되어 시공간 단서가 지워지는 등 현장 수사에 제약이 많았다. 빠른 판단이 중요한 실시간 수사에서 이러한 한계는 치명적인 복병이 된다. 


빛으로 검출하는 PL-Pb 기반 GSR 분석법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네덜란드 AMOLF와 암스테르담대학교 연구진이 발표한 새로운 GSR 검출법이 주목받고 있다.

연구진은 납 성분을 페로브스카이트 결정으로 변환해 자외선 아래 형광을 띠게 하는 ‘PL-Pb(Photoluminescent-Lead)’ 분석법을 제시했다. 이 기술은 납 입자가 포함된 GSR과 메틸암모늄 브로마이드 용액이 반응해 밝은 녹색 빛을 방출하게 한다. 

제1저자인 켄드라 아델버그 박사는 “우리는 이 화학 반응을 통해 총기 잔여물을 수 초 내에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시각화 기술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논문에는 Glock 19 Gen5와 Walther P99Q NL 권총을 사용해 다양한 거리(0–200cm)에서 면직물에 총을 발사한 뒤 PL-Pb 분석법을 적용해 검증했다. 

0cm에서는 총알 입구 주변에 밀집된 강한 형광이 나타났고, 10cm 이상에서는 총구 압력파로 인한 동심원 패턴과 총열 회전 흔적이 관찰됐다. 200cm 거리에서도 총알이 스친 자국(bullet wipe)과 미세한 점상 패턴(speckling)이 명확히 검출됐다. 실험은 총 세 차례 반복되었으며, 유사한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기술의 재현성과 신뢰도를 입증했다.

공동저자인 아리아네 반 아스텐 암스테르담대학 교수는 “이 기술은 기존 SEM-EDS 분석보다 빠르면서도 현장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실용성에 무게를 두었다. 

PL-Pb 기술은 직접 또는 간접 방식으로 손, 의류, 신발 등 다양한 표면에서 총기 잔여물을 시각화하여 발사자뿐 아니라 주변인의 관여 가능성까지 평가할 수 있게 한다 ⒸFSI

PL-Pb 기술은 직접 또는 간접 방식으로 손, 의류, 신발 등 다양한 표면에서 총기 잔여물을 시각화하여 발사자뿐 아니라 주변인의 관여 가능성까지 평가할 수 있게 한다 ⒸFSI


포렌식 기술의 전환점 될까

PL-Pb 기술은 용의자 손과 의복, 신발, 차량 손잡이 등 다양한 물체 표면에 직접 적용하거나 섬유 스와브를 이용한 간접 방식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세탁이나 손씻기 이후에도 손톱 틈과 손가락 주름 등에서 잔여물 검출이 가능했으며 이는 증거 인멸 시도에도 유효한 대응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기술은 단지 범죄 수사에 그치지 않고 사격장에 남은 미세 납 먼지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환경 독성 분석 분야로의 응용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향후 수돗물 내 미량 납, 혈액이나 조직 내 납 검출 등 공중보건 감시에도 활용될 수 있다.

주저자인 빌렘 누르다윈 박사는 “PL-Pb 기술은 루미놀(luminol)이 혈흔 분석에서 그러했듯, 총기 수사에서 새로운 표준 도구가 될 것”이라며 “향후 자동화 시스템과 결합하여 실시간 수사에 통합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05-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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