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훈련으로 4할 타자에 도전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적극 활용, 데이터 분석과 인지능력 강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듀크대 야구팀 4번 타자의 첫 타석, 타자는 처음 보는 낯선 투수의 커브볼을 가볍게 때려낸다. 지난 한 주 동안 VR 훈련시스템으로 가상 타석에서 상대 투수의 투구 모습을 몇 번이나 지켜봤기 때문이다.

가상 아바타 투수와 상대하며 적응시간 단축

듀크대 야구팀 훈련에서 사용된 훈련 기술은 텍사스 주 오스틴에 본사를 둔 가상현실 소프트웨어 전문회사 WIN Reality의 작품이다. 이 회사의 VR기술에는 가상으로 만들어진 아바타 투수가 등장한다. 일반적인 가상 아바타가 아닌 실제 상대 투수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성된 아바타이다. 타자는 VR기기를 착용하고 아바타의 투구에 맞춰 배트를 휘두른다. WIN Reality의 기술은 타자의 배트스윙 궤적, 타이밍, 각도, 볼이 맞는 위치 등을 사용자에게 제공하며, 타자는 이 데이터를 통해 상대 투수를 공략할 방법을 찾는다.

야구에서는 투수마다 볼의 빠르기, 변화구의 낙폭, 볼이 손에서 떠나는 지점 등 수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때문에 많은 타자들은 신인 투수나 만나보지 못한 투수를 상대할 때면 곤욕을 겪곤 한다. VR 훈련은 타자들이 투수의 공을 지켜보고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타자가 투수에 적응하는 시간을 대폭 줄여줄 수 있다.

0.1초, 판단의 ‘찰나의 순간’

듀크 대학의 인지신경과학자 그렉 아펠바움(Greg Appelbaum) 박사는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더 일찍 시각신호를 포착하고 이에 반응하는 움직임으로 만들 수 있는 여유 시간을 더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투수의 손을 떠난 160km/h의 공을 타자에게 도달하는 시간은 0.35초이다. 타자가 공을 인지하는 데 걸리는 0.1초와 배트 스윙에 필요한 최소 0.15초의 시간을 고려한다면, 타자는 0.1초라는 찰나의 순간에 배트를 기다릴지-휘두를지, 당겨칠지-밀어칠지 등  수많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아펠바움 박사의 말처럼 훈련을 통해 타자의 인지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면 타율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조던 무라스킨(Jordan Muraskin) 박사는 타자의 인지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실험참가자를 야구선수와 일반인으로 나누어 타자의 뇌신경 전기신호를 측정했다.

참가자들은 화면에서 출력되는 초록색 공의 움직임을 보고 스윙시점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입력하도록 지시받았다. 다만, 공이 움직이기 전에 F(직구), C(커브), S(슬라이더) 세 가지의 구종이 출력되고 해당 구종과 공의 움직임이 일치할 때만 타격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S(슬라이더) 문자가 표시된 상황에서 직구(F)가 온다면 기다리고, 슬라이더(S, 앞선 문자와 일치)가 온다면 타격하는 방식이다.

무라스킨 박사의 실험 모식도 ⓒ컬럼비아대, Jordan Muraskin

실험결과 야구선수의 경우 공을 참는 상황에서  운동보조영역(SMA, supplementary motor area)의 활동이 일반인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더 활발히 나타났다.  반대로 공을 타격하는 상황에선 물체의 다른 점을 구분할 때 사용되는 방추상회(FG, fusiform gyrus)가 활성화 됐다. 또한, 의사결정의 역할을 수행하는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gyrus)의 활발한 활동도 발견됐다.

일반인과 야구선수의 시간별 뇌 활동변화. 위-일반인, 아래-운동선수 ⓒ컬럼비아대, Jordan Muraskin

즉, 선수들은 순간적인 운동신경의 판단은 물론 공이 상대의 손에서 떠나기 전부터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훈련되지 않은 사람과 훈련된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크며 0.1초라는 찰나의 순간에서 더 나은 타격을 위해선 꾸준히 뇌와 신경을 훈련해야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VR 기술의 발달은 운동선수의 인지능력 강화와 성적 향상에 불을 지피고 있다.

‘4할 정복’을 위한 과학자들의 숙제

앞서 언급한 듀크대 야구팀은 물론, 메이저리그 LA 다저스도 VR 시스템을 훈련에 활용하고 있다. 전 메이저리그 외야수이자 현 LA다저스 감독인 데이브 로버츠는 실제로 VR 훈련이 타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으며, 다저스의 내야수 맷 비티는 뉴욕매츠 투수 아바타와 훈련하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야구 훈련에 VR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경성대 유왕윤 교수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VR 플렛폼을 구현했고 서동환 전 KBO 프로야구 선수는 여러 방면으로 VR 야구훈련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원주고 야구부는 전 프로야구 선수이자 NC다이노스 전력분석관을 역임했던 김덕윤 감독 지도아래 VR 훈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타격훈련 시스템-투구 인식능력 향상 훈련 (Vision Training) 모습과 원주고교 이동준 선수 데이터 ⓒ김덕윤 감독 블로그

하지만 스포츠에서 VR을 완벽히 활용하는 것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스포츠 특히 야구에서는 날씨, 선수의 당일 컨디션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나 많고, 수많은 변수 데이터를 기술에 적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미래에는 ‘과학의 일상화’가 가속화 될 것이다.

스포츠에서도 일상에서도, 사람과 인류의 발전에는 과학자가 있다.

 

[참고. 원주고 김덕윤 야구부 감독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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