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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김상호
2006-05-08

"영어의 권력화가 더 심각한 문제" 영어 열풍이 왜 일어나는지 파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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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교수는 지난번 칼럼 '영어 열풍, 정상이 아니다'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비정상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영어 열풍에 대해서 비판했다.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지만 수긍할 수 없는 지적도 있기에 반론을 펼쳐 본다.


이 교수 칼럼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가 필수적인 게 사실이지만 한국의 영어 열풍은 심각할 정도이다. 영어를 잘 해야 나라가 잘 사는 건 아니다.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이 교수는 영어 열풍으로 빚어진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고 질타했다.


영어 광풍의 실례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의 도서관을 한 번 가보자. 다들 영어책 한 권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마치 한국 대학생들은 전부 영어교육과 학생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길거리마다 영어학원이 즐비하고, 영어와 관련된 상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요즘도 영어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 '혀 늘이는 수술'을 감행하는지 모르겠다.


최근에는 영어 마을까지 생겨 그야말로 영어 열풍을 실감할 수 있다. 영어 마을의 여파는 전국으로 확산돼 벤치마킹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는 영어 마을을 본떠 체험학습을 강행하고 있다.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사회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느냐이다. 왜 자식들을 유학 보내고 이산가족처럼 살아야 하는지, 왜 한국 땅에 영어 마을을 지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악을 쓰고 영어 공부를 하며, 영어습득에 많은 투자를 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잘 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사례는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모두가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덕환 교수가 지적한 영어 열풍의 비정상이 설득력을 얻는지 살펴보자. 이 교수 스스로 지적했듯이 세계화 시대에 영어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영어는 성공의 지름길이다. 이 두 가지를 가정하면,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영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당연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문제를 극복하려면 영어 열풍을 잠재울 게 아니라 두 가지 전제를 고쳐야 할 것이다.


이 교수는 첫 번째 전제인 세계화 시대의 영어에 대해서 '통역서비스'를 이용하자고 주장한다. IT강국의 장점을 살려 통역서비스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걸맞은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택시 안에 있는 통역서비스처럼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건 아닐까? 미묘한 통·번역의 문제에 있어서 어느 전문가를 얼마만큼 신뢰해야 하는지 걱정스럽다. 한편 영어 전문가는 영어 열풍으로 혹은 아래에서 설명할 영어 권력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 집중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번째 전제인 한국 사회에서 영어가 점점 권력화 되어 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모 일간지는 근래에 기획시리즈를 통해 분석했다. 돈 많은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일상처럼 영어를 습득할 수 있지만 공교육에만 의존하는 학생들은 영어 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교육 강화를 통해 영어 권력화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교육 강화 역시 엄청난 사회 비용이 필요하다. 영어 열풍 저리 가라 할만큼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교수가 지적한 영어 열풍의 문제점은 좀더 본질적인 사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비판해야 극복될 수 있다. 이 교수가 지적한 조기 유학의 문제도 단순히 영어문제만으로 환원할 수 없다. 한국 사회의 교육 전반과 문화적 수준까지 언급해야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덧붙여 이 교수는 대기업에서 영어능력보다 업무능력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업무능력이란 대부분 영어회화 실력을 의미한다. 죽은 영어가 아니라 원어민 수준의 살아 있는 생생한 영어 구사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에 미치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힘들게 됐다.



그렇다고 필자가 영어 열풍을 긍정하는 건 아니다. 비판되어야 할 문제점의 수위를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싶은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필수가 된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국 사회에서 과도하게 비중이 높아진 영어의 위상을 어떻게 해야 낮출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아울러 영어 열풍과 관련해서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논의하는 것은 초점이 잘못 맞추어진 듯하다. 왜냐하면 영어 열풍의 현상과 영어 공용화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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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김상호
저작권자 2006-05-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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