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 않으면 추억도 없다?

기억 메커니즘 고려하며 과학적 증거 있어

‘힘든 일이 없으면 추억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고생을 합리화하기 위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이 말도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말이다.

뇌의 주된 기능은 여러 신경세포가 상호작용하며 수행하고, 기억 또한 신경세포에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기억은 신경세포의 기능이 바뀌며 형성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장기강화(LTP, long-term potentiation)이다. 이는 신호를 받는 신경세포의 말단 부분(시냅스)에 변화가 생겨 자극에 의한 반응이 과해지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장기강화가 일어나지 않은 신경세포는 10만큼의 신호를 받으면 10만큼의 신호를 전달한다. 그러나 장기강화가 일어난 신경세포는 10만큼의 신호를 받으면 30만큼의 신호로 증폭하여 전달한다.

이 현상을 바로 장기강화라고 하고, 기억은 경험 같은 외부 자극에 의해 신경세포의 형태와 성질이 바뀌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복잡한 연결을 이루고 있는 신경세포의 모습이다.

그러나 모든 장기강화가 한번 생겼다고 평생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약한 자극에 의해 생긴 약한 장기강화는 곧바로 사라진다. 그러나 강한 장기강화는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된다.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별것 아닌 기억은 쉬이 사라지지만 강렬한 기억은 오래 남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1997년 Uwe Frey와 Richard G. Morris는 장기강화와 관련하여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이들은 한 신경세포에 있는 여러 말단(시냅스) 중 2개에 각각 다른 장기강화를 만들었다.

한쪽 말단에는 약한 자극을 주어 곧 사라지는 약한 장기강화를 만들었고, 곧바로 다른 말단에 강한 자극을 주어 오랜 기간 유지되는 강한 장기강화를 만들었다.

그전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시간이 지나면 약한 장기강화는 없어지고, 강한 장기강화만 남아있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장기강화의 존재 여부를 확인해보았더니 원래는 사라졌어야 할 약한 장기강화까지도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는 현상을 보았다.

이들은 이 신기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시냅틱 태깅 가설(Synaptic tagging hypothesis)을 제시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태그(tag)라는 물질은 자극이 오면 신경세포 말단으로 몰려가서 약한 장기강화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태그를 고정하는 물질이 없으면 쉽게 없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약한 자극이 올 때는 태그가 신경세포 말단으로 몰려가서 장기강화를 만들지만 약한 자극에 의해서는 이를 고정하는 물질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약한 장기강화는 곧 사라진다.

반면 강한 자극이 왔을 때는 태그가 신경세포 말단으로 몰리는 것뿐만 아니라 신경세포의 핵에서 태그를 고정하는 물질이 분비되어 태그를 고정해 줘서 강한 자극에 의한 강한 장기강화는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의 신기한 현상은, 원래는 약한 자극이 오면 태그를 고정하는 물질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장기강화가 곧바로 사라져야 하지만, 곧바로 가해진 강한 자극으로 태그를 고정하는 물질이 만들어져서 약한 장기강화의 태그까지 고정해 주는 바람에 약한 장기강화마저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는다고 설명된다.

다시 말하면 약한 자극(기억)들도 강한 자극(기억)과 동반된다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이 결과 또한 경험적으로 돌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불과 일주일 전에 먹은 저녁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몇 년이 지났어도 첫 키스를 한 날엔 무엇을 했고, 그날 저녁으로 어떤 메뉴를 먹었는지까지 기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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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김의순 2020년 5월 29일2:18 오후

    정말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아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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