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국 정부는 새해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국가 양자 인터넷’에 2500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얼마 전 2020년을 빛낼 10대 과학기술의 하나로 해킹이 불가능한 양자 인터넷을 꼽았다.
양자 인터넷(quantum internet)은 해킹할 수 없는 메시지를 보내고, GPS의 정확성을 향상시키며 클라우드 기반 양자 컴퓨팅을 가능하게 하는 '양자 정보화시대의 핏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런 꿈은 지난 20년 동안 먼 발치에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양자 신호를 손실 없이 장거리로 보내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시작품(prototype) 양자 접속점으로 신호 손실을 보정함으로써 양자 정보 비트를 포착, 저장하고 얽어매는(entangle)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이 연구는 양자 인터넷 실용화를 향한 '잃어버린 고리'를 발견한 성과로, 장거리 양자 네트워크 발전을 위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버드대 물리학과 석좌교수이자 ‘하버드 퀀텀 이니셔티브’ 공동 책임자인 미하일 루킨(Mikhail Lukin) 교수는 “이번 시연은 가능한 가장 긴 범위로 양자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기존 기술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많은 새로운 응용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개념적 혁신”이라고 밝히고, “지난 20여 년 동안 양자 과학 및 공학계가 추구해 온 목표의 실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 23일 자에 발표됐다.

도청 안 되는 ‘양자 얽힘’
최초의 전신에서 오늘날의 광섬유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통신 기술은 원거리로 정보를 전송할 때 신호 감쇄와 손실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1800년 대 중반 이런 손실을 바로잡기 위해 신호를 수신해 증폭하는 최초의 중계기가 개발됐다. 희미해지는 유선 전신 신호를 증폭할 목적이었다. 그 200년 뒤 중계기는 장거리 통신 기반에서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고전적인 네트워크에서 서울에 사는 영희가 부산에 사는 철수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면 구간별로 설치된 중계기를 통해 거의 직선 라인으로 신호가 전송된다. 그 과정에서 중계기들은 통과하는 신호들을 읽고 증폭하고 오류를 수정한다. 그러나 이 과정들은 어느 지점에서든 공격에 취약하다.
영희가 양자 메시지를 보낸다면 과정이 달라진다. 양자 네트워크는 빛의 양자 입자, 즉 개별 광자(photons)를 사용해 빛의 양자 상태로 장거리 통신을 하게 된다. 양자 네트워크에는 고전 시스템이 갖고 있지 않은 트릭이 있다. 바로 복잡하게 뒤엉킨 상태를 뜻하는 양자 얽힘(entanglement)이다.
아인슈타인이 ‘먼 거리에서 일어나는 유령 같은 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고 부른 이 ‘얽힘’은 어떤 거리에서도 정보 비트를 완전하게 상호 연결할 수 있다.
양자 시스템은 변화를 주어야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영희는 ‘얽힘’을 사용해 도청의 두려움 없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양자 물리법칙에 의해 보장되는 보안인 양자 암호화 같은 응용 프로그램의 기초가 된다.

양자 중계기에 가로놓인 장벽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양자 통신 역시 기존의 광자 손실 영향을 받는다. 이 광자 손실은 대규모 양자 인터넷 구현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양자 통신을 매우 안전하게 만드는 그 물리적 원리로 인해 기존의 고전적 중계기로 정보 손실을 보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신호를 읽을 수 없다면 어떻게 신호를 증폭하고 교정할 수 있을까? 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과업의 해답은 이른바 양자 중계기(quantum repeater)와 관련이 있다.
기존 네트워크를 통해 신호를 증폭시키는 고전적 중계기와 달리 양자 중계기는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는 얽힌 입자 네트워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양자 중계기는 본질적으로 특수 목적의 소형 양자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네트워크의 각 단계에서 양자 중계기는 네트워크가 작동 준비될 수 있을 만큼 충분하게 오류를 수정하고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양자 정보 비트를 포착하고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두 가지 이유로 그것이 불가능했다. 첫째는 단일 광자는 포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양자 정보는 매우 취약해서 장기간 처리하고 저장하기가 아주 난해하다는 것.
한인과학자 박홍근 교수도 참여
루킨 연구실은 하버드대 공학 및 응용과학대(SEAS) 전기공학과 마르코 론카(Marko Loncar) 석좌교수를 비롯해, 하버드대 화학과 박홍근(Hongkun Park) 석좌교수와 MIT 전기공학 및 컴퓨터 과학과 더크 잉글런드(Dirk Englund) 부교수와 협력했다. 박 교수와 잉글런드 교수는 위 두 가지 작업을 모두 잘 수행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의 ‘실리콘-공극 색상 센터(silicon-vacancy color centers) 활용방법에 대해 연구해 왔다.
다이아몬드에 있는 색상 센터들은 원자 구조에 생긴 작은 흠집으로, 빛을 흡수하고 방출함으로써 다이아몬드의 화려한 색상들을 만들어낸다.
루킨 그룹의 대학원생인 미히르 바스카(Mihir Bhaskar) 연구원은 “지난 여러 해 동안 우리 연구실에서는 개별 실리콘-공극 색상 센터를 이해하고 제어하기 위해 노력해 오며, 특히 이를 단일 광자 퀀텀 기억장치로 활용하는 방법에 관해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개별 색상 센터를 나노 가공된 다이아몬드 공극에 통합시켰다. 이렇게 하면 정보를 가진 광자들이 단일 색상-센터와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다음으로 그 장치를 절대영도에 가까운 냉장고에 넣고 개별 광자들을 광섬유 케이블을 통해 냉장고로 주입했다. 그러자 광자들은 색상-센터에 효과적으로 포획됐다.
“최초의 시스템 수준 시연”
이 장치는 양자 정보를 수 밀리초 동안 저장할 수 있는데, 이 시간이면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충분히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공극 주위에 내장된 전극들은 메모리에 저장된 정보를 처리하고 보존하기 위한 제어 신호를 전달하는데 사용됐다.
나노스케일 광학연구실 대학원생인 바트 마키엘스(Bart Machielse) 연구원은 “이 장치는 양자 중계기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인 장기 메모리와 광자로부터 정보를 효율적으로 포착하는 능력 그리고 이를 국부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결합했다”고 말하고, “이 각각의 난제들은 개별적으로 해결되었으나 하나의 장치에 세 가지를 모두 결합한 기기는 없다”고 밝혔다.
루킨 그룹의 랄프 리딩거(Ralf Riedinger) 박사후 후보 연구원은 “현재 우리는 양자 메모리를 실제 도시 광섬유 링크에 배치해 연구를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얽힌 양자 메모리의 대규모 네트워크를 만들어 처음으로 양자 인터넷을 응용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루킨 교수는 “이것은 나노가공과 광자 및 앙자 제어에서의 중요한 발전을 결합한 최초의 시스템 수준 시연으로, 양자 중계기 노드를 사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분명한 양자 인터넷의 이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이 기술들을 이용한 새롭고 독특한 응용 방안 탐색이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표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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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0-03-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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