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의 ‘여섯 번째 손가락’에 숨겨진 진화의 비밀

새로운 판다 화석 발견, 600만 년 전 판다도 대나무를 먹었다?

600만 년 전 화석이 발견되어 판다 진화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GettyImagesBank

판다는 육식동물인 곰에 속하는 종으로, 현재처럼 대나무를 주식으로 삼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어왔다. 그러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연사박물관의 왕 샤오밍 박사가 이끄는 공동연구팀은 중국 남부 지방에서 새롭게 발견된 고대 판다 화석의 ‘손가락’을 통해, 판다는 이미 600만 년 전부터 대나무를 주식으로 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해당 결과는 네이처에서 출간하는 6월 30일자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했다.

 

대나무를 먹기 위한 판다의 여섯 번째 손가락, ‘가짜 엄지

대왕판다(자이언트 판다)는 대나무가 주식으로, 배고플 때 가끔 잡아먹는 곤충과 설치류를 제외하면 대나무가 식량의 99%를 차지한다. 계절에 따라 먹는 양의 차이는 있지만, 판다가 하루에 먹는 대나무의 양은 45kg 가량이며, 하루 24시간 중 15시간을 대나무를 먹으며 보낸다. 판다는 육식동물 조상에게서 유래한 짧은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소화 시간 또한 12시간 이내로 빠른 편이다. 따라서 판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 동안 소화를 통해 흡수할 양질의 영양소보다는 섭취량, 즉 ‘질보다 양’이었을 것이다.

연구의 주 저자이자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연사박물관의 척추고생물학 큐레이터인 왕 샤오밍 박사는 “대왕판다는 고기와 열매를 먹는 대신, 대나무 숲 깊은 곳에서 영양은 낮더라도 아열대숲에 풍부한 대나무를 먹는 쪽으로 옮겨갔다”고 설명했다. 천적이 없는 곳에서 1년 내내 구할 수 있는 식량인 대나무를 주식으로 삼은 먹이전략 덕에 판다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판다가 주식인 대나무를 움켜잡고 먹을 수 있는 것은 판다의 여섯 번째 손가락, ‘가짜 엄지’ 덕이 크다. 가짜 엄지는 손목의 종자골이 대나무를 움켜잡기 위한 형태로 길게 발달된 것이다. ©Wang et al. Scientific Reports (2022)

육식동물인 곰의 한 종임에도 대나무를 주식으로 하는 판다의 독특한 특징은 많은 과학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기사 링크 – ‘판다가 초식동물로 변한 이유 밝혀져’) 특히 판다가 손(앞발)을 이용해 마치 사람처럼 대나무를 꼭 쥐고 먹을 수 있는 것은 판다의 또 다른 엄지인 여섯 번째 손가락, 일명 ‘가짜 엄지’ 덕분이 크다. 왕 박사는 “대나무를 씹어 먹을 수 있는 크기로 잘게 쪼개기 위해 줄기를 단단히 붙잡는 것은 많은 양의 대나무를 먹는 데 가장 중요한 적응이었을 것”이라 말했다.

판다의 가짜 엄지는 손목의 종자골(관절을 지나가는 힘줄이나 인대 속에 있는 뼈)이 마치 엄지처럼 돌출된 것으로 이미 100여 년도 전에 알려졌다. 그러나 판다의 화석은 10만-15만 년 전의 것까지만 확보된 상태로, 부족한 화석 자료로 인해 판다의 가짜 엄지가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따라서 연구팀이 600만-700만 년 전 마이오세(중신세) 후기에 서식했던 대왕판다의 조상, 아일루락토스(Ailurarctos)의 화석을 확보한 것은 획기적인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 ‘조상 판다’의 화석은 중국 남부지방 윈난성 자오퉁 시 슈이탕바에서 발굴됐다.

 

판다는 600만 년 전부터 이미 대나무를 먹었다?

대왕판다의 조상 화석에는 대나무를 잡는 데 이용하는 여섯 번째 손가락, 가짜 엄지가 있었다. 이는 대나무를 먹는 판다의 식성이 무려 600만 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새로운 증거다. 판다가 육식동물인 곰에 속하니 대나무 식성 또한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것으로 여겨온 기존의 생각을 뒤집은 것이다.

분석 결과, 긴 역사 동안 판다는 마주 쥘 수 있는 형태의 엄지손가락 대신, 손목뼈의 종자골로부터 가늘고 긴 엄지 같은 손가락을 진화시켰다. 길고 곧은 형태로 발달한 판다의 가짜 엄지는 판다가 많은 양의 대나무를 쥐고 먹는 데에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판다는 600만 년 전에 이미 갖고 있던 가짜 엄지를 어떻게 진화시켜 왔을까?

위의 화석은 조상 판다 아일루락토스의 화석이며 아래는 현생 대왕판다의 뼈다. 조상 판다의 가짜 엄지는 곧고 긴 반면, 현생 판다의 가짜 엄지는 짧고 구부러진 모양이다. ©Wang et al. Scientific Reports (2022)

600만 년이란 가짜 엄지가 더욱 길게 발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나, 현생 판다의 가짜 엄지는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상 판다의 가짜 엄지가 더 길고 곧으며, 현생 판다는 짧고 구부러진 형태를 하고 있다. 왜 판다의 엄지는 더 이상 발달하지 않은 것일까? 이는 진화와 적응의 과정에서 ‘타협’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밥이냐 이동이냐, 진화의 타협

연구팀은 대왕판다의 가짜 엄지가 외형적으로 덜 발달된 형태를 보이는 이유를 규명했다. 왕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판다의 가짜 엄지는 먹는 기능과 동시에 걷는 기능도 함께 수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이중 기능이 판다의 엄지가 성장하는 데에 제약을 건 것”으로 분석된다.

조상 판다의 일러스트이다. 판다의 가짜 엄지는 (좌) 걸을 때에 체중을 지탱하는 기능과 (우) 대나무를 움켜쥐고 먹는 기능을 동시에 담당해야 했다. ©Mauricio Anton

판다의 가짜 엄지가 길어지면 체중을 지탱하는 기능에 약해지는데, 판다가 걸을 때에 가짜 엄지에 가해지는 무거운 체중이 진화에 제약을 건 것이다. 따라서 판다의 진화는 상충되는 두 기능의 타협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상 판다에 현생 판다의 종자골이 덜 돌출되어 있는데, 이 역시 걷기에 적합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현생 대왕판다의 가짜 엄지는 대나무를 꽉 쥐고 먹기에도, 무거운 체중을 지탱하며 다음 대나무를 향해 걸어가기에도 알맞은 형태로 진화되어왔다. ©Wang et al. Scientific Reports (2022)

길이뿐 아니라 현생 대왕판다의 가짜엄지가 비교적 짧고 휘어진 형태인 것 진화적 적응의 산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겨울잠을 자지 않는 팬더가 겨울철에 더욱 단단해지는 대나무 줄기를 턱으로 강하게 물고 한입 크기로 찢어서 뜯어먹으려면 쥐는 힘이 강해야만 한다. 즉 팬더가 대나무를 섭취하는 데에는 많은 양을 쥐는 것보다 꽉 쥐는 것이 중요하기에 짧은 갈고리 모양으로 진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마디로 판다의 가짜 엄지는 대나무를 꽉 쥐고 뜯어먹기에도, 무거운 체중을 지탱하며 다음 대나무 먹이를 향해 걸어가기에도 알맞은 형태로 진화해온 것이다. 논문 공동저자인 애리조나 주립대학 인류기원연구소의 데니스 수 교수는 “500만-600만 년이면 판다가 더 긴 가짜 엄지를 갖는 데 충분한 시간이지만, 이동할 때 몸무게를 받쳐줘야 하는 진화적 제약이 가짜 엄지를 걷는 데에 방해되지 않으면서 대나무를 잡을 때 유용할 수 있게 짧고 강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의 왕 박사 “육식성 조상으로부터 대나무만 먹는 종으로 진화하면서, 판다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만 했다. 손목뼈에서 나온 움켜쥘 수 있는 ‘엄지’는 장애물을 넘기 위한 판다의 가장 놀라운 진화일 것이다”라며 감상을 표했다. 수 교수 역시 “작은 뼈를 특정한 목적에 유용한 요소로 변형시키는 진화는 굉장히 특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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