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 칸…페스트로 사망했다?

4개국 공동연구팀, 급성 전염병 가능성 제시

칭기즈 칸의 원래 이름은 보르지긴 테무진이다. 성이 보르지긴이고 이름이 테무진이다. 1162년 태어난 그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복자 중 한 명이었다. 1227년 사망 당시 그가 통일한 몽골 제국은 로마 제국보다 2.5배나 큰 대제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이 정복자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그의 죽음은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칭기즈 칸의 가족과 추종자들은 그가 20년 넘게 이어진 서하(西夏)와의 전쟁 중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에 대해 비밀로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학자들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칭기즈 칸의 사망 원인을 임상적인 방식으로 밝혀내고 있다. 전염병, 그중에서도 페스트에 걸렸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은 울란바토르 시 언덕에 그려진 칭기즈 칸의 초상. ⓒWikipedia

임상적 방식으로 칭기즈 칸의 죽음 추적

이런 상황에서 그의 주변인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 수많은 전설들을 양산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타고 가던 말이 넘어지면서 부상을 당해 사망했거나 중국, 혹은 서하와의전투에서 독화살을 맞아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는데 그가 중국 서하 공주의 칼에 찔리거나 거세된 후 출혈로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다양한 전설들이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 이탈리아 페라라대학, 몽골과학원, 중국과학원 등이 공동으로 이와 관련된 역사 기록, 전설 등을 임상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리고 그동안 유포돼온 다양한 전설들이 칭기즈 칸 죽음 이후 발명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연구팀은 칭기즈 칸의 죽음을 유발한 것은 전염병이고, 전염병 중에서도 페스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논문은 최근 ‘국제 전염병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s)’에 게재됐다. 제목은 ‘Genghis Khan’s death (AD 1227): An unsolvable riddle or simply a pandemic disease?’이다.

논문에 따르면 1227년 칭기즈 칸이 죽었을 당시 몽골인들은 왕의 시체가 신성한 힘을 유지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에 따라 왕의 시신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람도 상상하기 힘든, 매장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산에 묻었다는 주장이 있다. 높은 산과 천국(heaven)이 연결돼 있다는 신앙이 당시 몽골인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

그러나 이 산이 어디 있는지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시신이 버한 할둔(Burkhan Khaldun) 산맥 어디인가에 묻혔다고 보는 주장이 있지만 묘나 묘비, 관련된 시설물 등 그 흔적을 전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 농사짓는 밭에서 비밀리에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을 입증할 과학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칭기즈 칸의 죽음은 계속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중이다.

전염병 중 페스트일 가능성 가장 높아

4개국 과학자들이 공동 참여한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임상적 분석 방식이다.

연구팀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의료적 관점에서 다학제적인 ‘의료 렌즈(medical lens)’ 방식을 적용했다. 최근 질병과 관련된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도입되고 있는 과학적인 방식이다.

그리고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임상적으로 더 복잡한 사실들을 밝혀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새로운 이야기는 유학자인 옐루 추카이(Yelü Chucai, 1190-1244)부터 시작한다.

칭기즈 칸은 수학, 점성술,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그런 만큼 그의 주변에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의학을 관장하는 옐루 추카이는 이를 관장하는 수석 고문이었다.

그는 1226년 몽골 군대와 서하 간의 링우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승리한 몽골 군대에 전염병이 퍼져 수천 명이 죽어가고 있었는데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대황(rhubarb)을 사용해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이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로부터 1년 후 칭기즈 칸이 사망한다. 이에 그 역시 병사들이 고통을 겪었던 전염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칸의 죽음과 관련된 역사 기록 중 과학적인 내용들이다.

중국 24사 중의 하나인 원사(元史, History of Yuan)에서는 칭기즈 칸이 1227년 8월 18일부터 25일이 지나는 사이에 열이 나고 질병이 발생했고, 이 질병에 걸린 후 8일 만에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발열(pyretic rise)에 대해 다른 역사서들도 기록을 남겨놓고 있다. 페르시아 역사가 아타-말레크 유바이니(Atâ-Malek Juvayni, 1226~1283)와 17세기 전후에 작성된 몽골 역사서 알탄 토프치(Altan Tobchi)가 대표적인데 기후로 인한 합병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복통 및 구토와 같은 이전에 군대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전형적인 증상이 발생했는데 어떤 학자들은 장티푸스라고 보고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4개국 공동 연구진은 칭기즈 칸이 전염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 1226년 그의 군대에 퍼져 나간 전염병 등 일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수용이 가능한 해석이라는 것.

어떤 질병에 걸렸는지는 장티푸스 외에도 발진티푸스 등 다른 전염병을 추축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록된 칸에 대한 기록을 분석했을 때 페스트를 선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논문은 이런 결론이 칭기즈 칸의 마지막 생애를 둘러싼 비밀의 일반적인 상황과 잘 어울린다고 밝혔다. 전염병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면서 칸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전쟁에서 비밀을 유지하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또한 논문은 베일에 가려져 있는 칭기즈 칸의 죽음과 관련해 다양한 추정과 유포된 전설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특별하고 예외적인 사망 원인을 가정하기보다 유행성 질병에 의한 사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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