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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01

측우기는 문종의 발명품 장영실 발명기록 찾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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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화 주필]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의 발명품으로 알려져 있는 측우기가 장영실의 발명이 아닌 문종의 발명품인 것으로 주장되어 학계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현존하는 것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제측우기인 세종조 측우기는 그 동안 장영실의 대표적인 발명품으로 알려져 왔고 전국에 세워져 있는 장영실동상에도 장영실이 측우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어 이 주장이 학계에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가 크게 주목되고 있다.


한국과학사학회와 과학선현 장영실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과학기술부과 한국과학문화재단 후원으로 30일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과학인물 세미나에서 문중량 교수(한국정신문화 연구원)는 장영실이 간의(簡儀), 소간의, 일성정시의, 현주일구와 천평일구, 정남일구, 앙부일구와 같은 눈부신 천체관측기구를 만든 것은 확실하지만 측우기는 장영실의 발명품이 아닌 문종의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측우기는 세종 23년(1441년) 8월 호조의 제안으로 어전회의에서 결정되어 제작에 들어갔고 이보다 4개월 앞선 동년 4월에 세자(뒤에 문종)가 당시의 강우량 측정법인 천연강수측정법이 일정하지 않으니 구리로 정양측우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한 것이 실록에 의해 밝혀졌기 때문에 측우기는 문종의 발명품으로 봐야 한다고 문 교수는 말했다. 측우기는 세종의 제작명령이 있은 한해 뒤에 만들어 세워진 것으로 되어있다.


세종 23년 4월 실록에는 “근년 이래로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젖어 들어간 분수를 땅을 파고 보았으나 정확히 비가 온 푼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 궁중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괴인 푼수를 실험하였는데---”라고 되어 있고 같은 해 8월의 기록에는 호조에서 구리 측우기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식과 설치할 장소까지 지적하여 왕에게 건의하였으며 그 건의가 그대로 받아들여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측우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장영실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측우기가 제작되고 있을 즈음인 1442년 3월에는 장영실은 임금님 수레파손사건으로 죄를 받아 의금부에서 국문을 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있어 시기적으로도 장영실이 제작한 것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것이라고 문 교수는 말했다.


이에 대해 신석균 한국발명가협회회장은 조선시대의 발명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경우가 많고, 많은 경우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전해 내려오는 구전역사로는 장영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박성래 교수는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최고의 측우기에 제작연대가 한문으로 乾隆 庚寅 五月이라고 쓰인 것을 이유로 이것이 중국에서 제작하여 조선조에 보낸 것으로 세계과학계가 알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저작권자 2004-02-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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