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통섭에 대한 논의들이 이런 학제적 연구, 통섭, 융합에 대한 하나의 흐름이 등장하는 배경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필요하다. 융합이 강조되는 사회정치적 배경을 먼저 바라봐야 한다.”
박영균 서울시립대 교수가 ‘학문적 통섭과 이념적 통섭’ 심포지움에서 주장한 말이다.
두 문화의 만남을 위한 대학 연구소간 공동 학술심포지움이 ‘학문적 통섭과 이념적 통섭’이란 주제로 29일 서울대학교 규장각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주관하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중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시민과학센터가 공동주최하는 이번 심포지움은 ‘2009년 여름 통섭-쟁점 4회 연속 릴레이 패널토론: 유비쿼터스 시대의 예술-학문-사회간 통섭의 과제와 전망’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박영균 서울시립대 교수가 쟁점발제를, 강수돌 고려대학교 교수,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이 패널로 참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과학기술혁명에 기초한 경제적, 사회-정치적 변화
“오늘날 분과학문의 벽을 허물고 학제 간 연구와 학문 간 통합을 모색하는 흐름이 떠오르고 있다”고 ‘이념적 통섭을 통한 학문적 통섭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쟁점발제를 시작한 박영균 교수는 “이런 융합, 통섭의 움직임은 급변하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에 기초한 경제적이고 사회-정치적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새롭게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혁명은 세 가지 차원에서의 변화를 동반하고 있다. 첫째, 극소전자혁명에 기초한 정보화와 자동화는 정보사회와 세계와, 그리고 국민국가의 해체와 같은 전반적인 경제적이고 사회-정치적인 변화를 낳고 있다. 둘째, 유전자혁명에 기초한 생명공학의 발전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을 자본 축적의 대상으로 포획하는 새로운 자본 축적의 환경을 낳고 있다. 셋째, 나노기술과 유전자 기술의 결합을 불러오면서 로봇과 같은 GNR의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어 “학문은 더 이상 학문 내적 논리에 의해 발전하지 않는, 사회-정치적 권력 관계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과학이 기술과 전면적으로 결합한 근대적인 과학적 기술(Scientific Technology)의 등장 이후 진행됐던 핵개발 프로젝트였던 ‘맨해튼 프로젝트’와 함께 출현한 ‘거대과학(big science)이 국가권력-자본-언론과 결합이 된 ’과학기술동맹‘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학제적 연구와 학문적 통합, 통섭 프로그램이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고찰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가-자본-연구자-언론의 결합발표는 자본 축적 메커니즘의 변화와 통섭의 방향으로 이어졌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현대자본주의의 축적 메커니즘은 과학기술혁명과 더불어 새로운 축적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박 교수는 “정보기술혁명에 기초해 생산의 사회화를 사회적 네트워크로 확장하고 있으며 사회적 협력 자원을 자본의 축적 메커니즘으로 흡수하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노동의 능력은 과학기술을 통해 체현되며 생산을 주도한다. 따라서 자동화는 임노동을 생산의 현장으로부터 축출 내지 배제하며 자본의 힘을 극대화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자본이 잉여가치를 추출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의 재생산이 위기에 봉착하며 특히 컴퓨터 그래픽과 하이퍼전자텍스트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상품미학은 각종 정서노동의 상품화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적 축적은 더 이상 생산과 소비의 이원적 메커니즘 속에서 작동하지 않고 소비를 자본 축적의 내적 메커니즘으로 포획하며 소비욕망을 자본 축적의 대상으로 전화시킨다.
박 교수는 이어 “현재 진행되는 학제 간 연구 및, 통합, 융합, 통섭의 프로젝트는 황우석 사태가 보여주듯이 국가-자본-연구자-언론의 결합이라는 과학기술동맹의 형성 맥락 없이 고찰될 수 없다”며 “여기서 진행되는 통섭의 방향은 자본의 사적 이윤 추구라는 동기에 의해 움직힌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통섭 그 자체가 아니라 통섭이 지닌 본래적인 가치와 방향, 관점, 태도라는 것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통섭인가가 중요”
박 교수는 또한 학문적 통섭은 이념적 통섭을 배제할 수 없다며 오늘날 학문적 통합이나 통섭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목적’과 ‘가치’, ‘동기’를 탐구하는 인문학적 성찰과 비판적 탐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힘을 객관으로 포장하면서 과학연구에서 작동하는 힘에 대한 망각 또는 무시는 전쟁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성을 증진시키는 유전자 생명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사유 없음’을 유도한다”며 “바로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자연과학의 내적 논리가 지닌 가치와 의미, 목적, 동기와 방법 등을 반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힘을 주며 비판적인 사회과학은 그런 기술들이 기획-대발-채용되는 과정에서 사회-정치적으로 미치는 효과를 탐구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이 아니라 어떤 통섭인가가 중요하며 그때 통섭은 어떤 가치와 관점, 태도, 동기 등의 이념적 지향성에 근거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반성하는 자기 검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통섭은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동맹의 힘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사회과학-철학(인문학)-자연과학의 결합
그렇다면 오늘날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은 어떤 관점 속에서 결합해야 할 것인가? 박 교수는 사회과학-철학(인문학)-자연과학의 결합을 소개하며 “자연과학은 사실 인식이라는 장점 위에서, 철학(인문학)은 가치와 의미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라는 기능 위에서, 사회과학은 사회적 삶의 구성과 형성이라는 비판적 관점 위에서 통합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한 “철학은 자연과학에 의해 수행되는 연구 결과물들의 정치-사회적 채용의 맥락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사회과학적 연구를 매개함으로써 자연과학에 정치적 기능을 부여하고,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가 유발하는 사회적 효과를 정치함으로써 보다 나은 사회적 삶의 맥락을 재구성해가는 작업을 떠맡을 수 있다”며 “이들 간의 상호 역할 분담과 역동적인 상호 소통-침투는 오늘날 자본-국가-과학이 결합한 과학기술동맹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향을 모색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의 쟁점발표에 이어 강수돌 고려대학교 교수,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이 참석한 발표가 이어졌다.
- 김청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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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9-07-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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