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과학] 과학자들의 연구로 푼 육아 궁금증… 모성애는 누구에게나 있다
▲ 지금껏 모성애는 아이를 출산한 엄마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누구나 경험에 의해 모성애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PIXNIO
“산모님, 우리 이제는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임신 37주차의 검진. 뱃속 아이인 까까(태명)는 여전히 머리를 위로 향하고 있었다. 역아를 바로 잡는데 좋다는 ‘고양이자세’ 등 각종 동작을 쉴 틈 없이 반복해도 이 고집 센 태아는 도무지 자세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러 학술연구를 통해 증명된 자연분만의 각종 장점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장점만큼 큰 고통도 지인과 ‘맘카페’ 등의 후기를 통해 간접 체험했다. 꼭 어떤 분만을 해야겠다는 의지는 없었지만, 고집 센 태아의 선택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수술 날짜를 확정한 후, 의외의 난관에 봉착했다. 제왕절개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주변에 구구절절 설명해야만 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와 산모의 관계를 걱정하는 말들도 있었다. 제왕절개를 하면 모성애가 덜하다는 것이었다. 정말 긴 진통 끝에 아이를 낳아야만 모성애가 생기는 걸까. 모성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걸까.
▲ 미국 뉴욕대 연구진은 옥시토신 호르몬이 양육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동물실험을 통해 분석했다. 우리에서 고립된 새끼 쥐(Isolated pup)가 내는 울음소리에 어미 쥐(Dam)는 빠르게 반응했다. 반면, 출산 경험이 없는 처녀 쥐(Naive virgin)는 새끼 쥐의 울음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Nature
인간의 신체 내부에는 언제 자고, 언제 활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생체시계가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갓 태어난 아기는 이 시계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신생아들은 밤낮없이 우는데, 대부분 그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은 엄마다. 숙면을 취하다가도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벌떡 일어나 움직인다.
엄마가 아이의 변화에 발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 로버트 프룀케 미국 뉴욕대 교수팀은 201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출산한 여성의 몸에서 활발하게 분비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아기 울음소리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새끼 쥐들은 어미에게서 멀리 떨어지거나, 어미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사람은 잘 들을 수 없는 초음파로 울음소리를 낸다. 이에 착안, 연구진은 새끼 쥐들을 둥지에서 멀리 떨어뜨린 뒤 다른 쥐들의 반응을 살폈다. 새끼 쥐의 울음소리를 들은 어미 쥐들은 곧바로 달려가 새끼 쥐를 둥지로 데려왔다. 심지어 자신의 새끼가 아닌 다른 새끼가 내는 울음소리에도 반응했다. 반면, 수컷 쥐나 출산 경험이 없는 처녀 쥐들은 새끼 쥐의 울음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이어 연구진은 새끼 쥐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 어미 쥐, 수컷 쥐, 처녀 쥐의 뇌 변화를 비교했는데, 어미 쥐의 뇌에서만 일어나는 특이적인 변화를 발견했다. 수컷 쥐나 처녀 쥐와 달리 어미 쥐의 뇌에서만 옥시토신이 다량 분비됐다. 한편, 연구진이 처녀 쥐에게 옥시토신을 주입하자 처녀 쥐의 행동이 달라졌다. 울음소리를 내는 새끼 쥐를 물고 둥지로 되돌아온 것이다.
지난 해 8월. 프룀케 교수팀은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어미와 함께 육아에 참여하면 양육 행동을 모방하고, 심지어 ‘모성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분비까지도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 어미 쥐와 처녀 쥐의 ‘공육’ 환경(왼쪽). 처녀 쥐는 공육에 참여한 지 24시간 이내에 어미 쥐를 모방하여 양육 행동을 보인다. 어미 쥐 역시 처녀 쥐를 양육에 참여시키려는 행동변화를 나타낸다(오른쪽). ⓒNature
연구진은 갓 태어난 새끼 쥐를 양육하는 어미 쥐와 처녀 쥐를 함께 생활하도록 했다. 사람으로 치자면 ‘공육(공동육아)’ 환경을 조성해준 것. 앞서 언급한 2015년 연구의 결론처럼, 처녀 쥐는 본래 새끼의 울음소리를 들어도 무시한다. 그런데, 쥐 모자(모녀)와 함께 생활한지 24시간이 채 되지 않아 처녀 쥐들의 행동이 달라졌다. 어미 쥐는 새끼들을 둥지로 모으는 행동을 하는데, 처녀 쥐가 이 행동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새끼 쥐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새끼가 둥지 밖으로 나가면 옥시토신의 분비가 활성화됐다. 어미의 양육 행동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뇌 자체가 ‘어미스럽게’ 변한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쥐들의 공육 상황을 촬영한 5,000시간의 비디오 영상을 분석한 결과 모성 행동은 경험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미 쥐에게도 특이한 변화가 생겼다. 본래 쥐는 다른 개체가 자신의 둥지로 들어오면 내쫓으려는 행동을 한다. 그런데 새끼 쥐를 키우고 있는 어미 쥐는 처녀 쥐가 다가왔을 때 둥지에 들어오도록 유도했다. 새끼가 없을 때는 보이지 않는 행동이다. 어쩌면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어미 쥐가 ‘동종 부모 역할(Alloparenting)’을 해줄 다른 존재를 반겼을지도 모른다.
프룀케 교수는 “공육을 통해 육아를 배운 처녀 쥐는 육아 경험이 없는 처녀 쥐에 비해 자신의 새끼를 기를 때 질 높은 돌봄을 하게 될 것”이라며 “좋은 엄마 쥐가 되는 방법은 경험 많은 다른 어미 쥐와 함께하며 육아를 보고 배우는 것으로, 유사한 메커니즘이 인간에게서도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미 쥐와 처녀 쥐의 사례처럼 모성은 여성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이스라엘 바일란대 연구진은 2014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한 연구를 통해 모성은 여성의 선천적 특징이 아니며, 남성의 뇌 역시 육아경험을 통해 모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했다.
루스 펠드먼 이스라엘 바일란대 교수팀은 엄마와 아빠로 구성된 전통적인 가정 그리고 두 명의 아빠로 구성된 동성애 부부 가정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전통적 가정에서는 아내가 주 양육자로서 대부분의 육아를 담당했다. 동성애 가정의 경우 둘 중 한 명이 생물학적 아버지로 대리모를 통해 자녀를 출산한 경우였다. 출생 직후 아이를 데려와 돌보기 시작했으며, 모든 양육 책임은 공동 부담했다. 이들은 모두 첫 자녀를 양육하게 된 초보 부모였다.
▲ 이스라엘 바알란대 연구진은 자녀를 가진 동성애 부부 가정을 연구한 결과, 남성의 뇌에서도 여성과 동일한 ‘양육회로’가 발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Pixabay
연구진은 각 가정에 방문해 부모와 아이가 함께 지내는 모습과 각각 혼자 있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촬영 전후에는 모든 부모의 타액을 채취하여 옥시토신 농도를 측정했다. 이후,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으로 뇌를 관찰하며, 아이의 영상을 볼 때 부모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폈다.
모든 부모의 뇌에서는 두 개의 경로로 구성된 ‘양육 네트워크(Parental Caregiving Network)’가 활성화됐다. 하나는 감정과 정서를 담당하는 편도체 중심의 경로로 연구진은 이를 ‘감정처리 네트워크(Emotional Processing Network)’로 정의했다. 다른 경로는 논리적 사고, 경험 학습 등을 담당하는 상측두고랑 중심의 경로로 ‘정신화 네트워크(Mentalizing Network)’로 이름 붙였다.
▲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에게서는 정서적인 감정을 담당하는 ‘감정처리 네트워크’와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정신화 네트워크’가 모두 활성화됐다. 전통적인 가정에서 남편의 뇌에서는 상측두고랑 중심의 ‘정신화 네트워크’가 주로 활성화되지만(검은색 막대), 남성이 주 양육자인 경우에는 편도체 중심의 ‘감정처리 네트워크’ 역시 활성화됐다(초록색 막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성의 뇌는 엄마와 유사하게 작동한다는 의미다. ⓒPNAS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뇌 반응에 차이가 있었다. 엄마의 경우 감정처리 네트워크가 활성화된 반면, 아빠의 뇌에서는 정신화 네트워크의 활성화가 두드러졌다. ‘엄마는 본능, 아빠는 학습을 통해 자녀를 양육한다’는 결론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니다. 동성애 가정에서 두 아빠의 뇌는 모두 감정처리 네트워크가 주로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동성애 가정에서 감정처리 네트워크의 활성화 정도는 육아에 투자하는 시간에 비례하게 나타났다.
펠드먼 교수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육아 경험은 남성의 뇌를 자극하여 엄마의 뇌와 동일한 방식으로 양육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킨다”며 “ 남성과 여성은 모두 ‘엄마가 될 수 있는 뇌 회로’를 갖고 태어났으며, 이 회로는 육아 경험을 통해 활성화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동성애자의 뇌 활성화 양상이 이성애자와 다르지 않으며, 이 연구의 결론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 누구나 육아 경험에 의해 모성애를 갖출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와 함께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Pixabay
일련의 연구들은 자연분만 과정에서 대량으로 분비되는 옥시토신 호르몬에 의한 선천적 모성에 못지않은 양육 경험에서 발달되는 후천적 모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자연분만 산모와 제왕절개 산모의 옥시토신 분비에는 차이가 있다. 분만 과정의 자극 때문에 자연분만 산모의 옥시토신이 제왕절개 산모에 비해 더 빠르게 방출되기 시작한다.
분만 초기에는 이로 인한 양육 차이도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 예일대 연구진이 2008년 ‘아동 심리학 및 정신의학 저널(Journal of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분만 2~4주 후 산모에게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려줬을 때, 자연분만 산모의 감정 및 양육 행동과 관련된 뇌 영역이 제왕절개 산모보다 더 많은 활동을 보였다. 하지만 분만 3~4개월 후에는 그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를 이끈 제임스 스와인 미국 예일대 교수는 “제왕절개로 출산하게 되면 옥시토신이 축적되기까지 시간이 소요되어 출산 초기에는 자연분만 산모와 뇌 활성화에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5% 미만에 불과하다”며 “아이와 엄마의 유대감은 분만 방식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의 스킨십, 모유 수유 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모성애를 개발할 수 있다. 적어도 모성애를 이유로 출산을 앞둔 산모에게 자연분만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출산 방식이 아니라 아이와 어떻게 함께 시간을 보낼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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