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동굴벽화를 그린 진짜 이유는?

지자기 역전으로 자외선 높아져 동굴로 피신

인류가 동굴에 벽화라는 예술 작품을 그린 것은 지구 자기장의 극적인 변화 때문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지구 자기장의 변화는 매우 파괴적이어서 극한의 날씨를 만들어냈는데, 이러한 극단적인 환경 변화는 호주의 대형 포유동물 및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도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지구 자기장은 자남극에서 흘러나와 자북극을 통해 흘러들어간다. 그런데 그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어 자북극에서 자남극으로 자기장이 흐를 수도 있다. 이를 지자기 역전이라 한다. 지자기 역전은 20~30만 년 만에 한 번꼴로 일어났으며, 마지막으로 발생한 것은 약 78만 년 전이다.

뉴질랜드에서 발견된 고대 카우리 나무에는 지구 자기장 역전의 놀라운 단서가 담겨 있었다. ©Nelson Parker

그런데 지구 자기장의 방향이 완전히 역전되지 못하고 짧은 기간 동안 정상적인 상태로부터 멀리 벗어났다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현상도 있었다. 이를 ‘지자기 회유(geomagnetic excursion)’라고 하는데, 약 4만 2000년 전에 일어난 적이 있다.

지질학에서는 이를 ‘라샹 사건(Laschamps event)’이라고 부르는데, 프랑스에 있는 라샹이라는 조그만 마을의 용암 흐름에서 그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으로도 이런 사건이 언제 일어나며, 또한 그런 현상이 발생했을 때 지구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예상할 수 없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발견된 고대 카우리 나무에는 그에 대한 놀라운 단서가 기록돼 있었다.

굴착 작업 중 우연히 발견한 고대 카우리 나무

카우리 나무가 발견된 곳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응우화라는 지역이다. 지열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산비탈에서 굴착 작업을 하던 중 길이 20m, 폭 2.4m, 무게 65t에 이르는 카우리 나무가 2019년 2월에 우연히 발견된 것.

중생대 침엽수의 한 종류인 카우리 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 사는 나무다. 따라서 이 나무의 나이테에는 당시 대기의 기후에 대한 정보가 기록돼 있다. 약 4만 2715년 전에 새싹을 틔운 이 카우리 나무는 약 1600년을 살다가 완전히 탄화하지 못한 석탄층에 묻힌 후 여전히 초록색의 나뭇잎이 붙어 있을 만큼 잘 보존되어 있었다.

남호주박물관의 앨런 쿠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의 크리스 터니, 독일 지질학연구센터(GFZ)의 노르베르트 노왁지크,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의 플로리안 아돌피 등의 국제 공동 연구진은 이 나무의 나이테를 분석한 결과, 대기 중 방사성 탄소-14의 변화가 라샹 사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 나무의 나이테를 분석한 결과, 대기 중 방사성 탄소-14의 변화가 라샹 사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Kate Evans(Alan-Hoggs-lab)

4만 1560년 전부터 4만 1050년 전까지 지구의 자북극은 남쪽으로 이동했는데, 약 500년간 지속된 이 라샹 사건 동안 지구 자기장은 현재 수준의 6% 이하로 약화되었다. 그 후 심하게 반전되어 있던 지구 자기장은 약 250년 동안 다시 역전돼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구 자기장이 약해지면 더 많은 우주선(cosmic-ray)이 대기로 들어와 특정 원자를 방사성 탄소-14로 변형시켜, 이 동위원소의 수준을 높인다. 연구진은 대기 화학의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태양 플레어로부터 더 많은 이온화 방사선이 들어와 오로라가 북극뿐만 아니라 지구 전역에서 관찰될 만큼 대기의 변화를 촉발시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생물이 적응하기 어려운 극한 기후

이번 연구에 참여한 앨런 쿠퍼는 “이로 인해 자외선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쏟아졌으며, 번개, 고온 등으로 인해 생물이 적응하기 어려웠을 만큼 극한 기후 조건이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후 수 세기 동안 호주 일대는 더 건조한 기후로 변해갔고, 내륙의 호수는 말라버렸다. 연구진은 이런 변화들이 디프로토돈(자이언트 웜뱃)과 같은 호주의 수많은 거대 동물 종들을 멸종시킨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라샹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유럽에서부터 인도네시아까지 전 세계 동굴에서 벽화가 처음 그려진 때다. 연구진은 악천후와 매우 높은 자외선 수치로 인해 우리 조상들이 동굴에 들어가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또한 공교롭게도 네안데르탈인은 라샹 사건 직후인 약 4만 900년 전에 멸종됐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2월 19일 자에 발표됐다.

앨런 쿠퍼는 “카우리 나무는 라샹 사건이 일어난 기간 동안 건재했는데, 우리는 대기 중 방사성 탄소-14의 변화를 이용해 자기장이 붕괴된 시기를 정확히 알아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서 우연히 발견된 카우리 나무가 ‘로제타석(rosetta stone)’ 역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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