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이스틀랙(Harry Raymond Eastlack 1933~1973)이라는 불행한 사람이 있었다. ‘진행성 골화성 섬유형성이상(fibrodysplasia ossificans progressive, FOP)’을 앓았다. 근육이 뼈로 변하는 매우 희귀한 질병이다. 근육이 뼈로 변해서 굳어지면 제거하는 수술을 여러 번 받았으나, 결국은 뼈 속에 갇혀 사망했다.
이스틀랙의 유골은 지금 필라델피아 무터 박물관(Mütter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본인이 자신의 유골과 치료 기록을 기증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스틀랙은 4살 때 허벅지 근육에서 뼈가 자라는 것이 처음 발견됐다. 수술로 이상한 뼈를 제거했지만, 뼈는 더 두껍고 넓게 자랐다. 허리 근육이 딱딱해지면서 척추가 붙었고 턱마저 뼈에 갇혀 먹거나 말을 하기에도 힘이 들었다. 뼈 감옥에 갇힌 채 그는 폐렴 합병증으로 40세 생일을 6일 앞두고 사망했다.
유전자의 어떤 부분에서 결함이 있었을까? 아마 그는 2번 염색체에 자리 잡은 ACVR1 유전자의 206번 코돈에 구아닌이 아닌 아데닌 뉴클레오티드가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60억 자에 달하는 유전체에 잘못 적힌 단 한 자의 오타가 이스트랙을 살아있는 동상으로 만들었다고 과학자들은 분석했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유전자에 대한 정보는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전성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발견하고 유방절제 수술을 받은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개인 맞춤형 치료의 한계
유전자 해독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한 사람의 유전자를 해독하는 비용은 30억 달러(약 3조 5000억 원)였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 유전자 해독 비용이 1000달러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다. 아울러 자신에 맞는 진단과 처방을 통해 ‘맞춤형 치료’가 가능할거라는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이에 미국에서는 개인 유전자 정보제공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됐다.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스타트업인 23앤미(23andMe)가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판매하는 DTC (Direct-To-Consumer) 서비스로 미국 FDA와 마찰을 빚었다.
FDA는 유전자의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난 특수한 질병에 대한 검사 결과를 제공하도록 유도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저자를 비롯해서 신문기자들이 침을 23앤미 등 몇 개 유전자 분석회사에 보내 분석해보니 서로 반대하는 내용의 진단 결과를 제공해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2009년 rs4307059 위치의 특정 SNP가 자폐증의 위험요인이라는 연구가 발표됐지만, 같은 해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자폐증에 걸릴 확률이 오히려 낮다는 논문도 나왔다.
이스틀랙 사례를 보면, 유전자가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 지존일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유전자는 우리를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나(DNA IS NOT DESTINY)’는 이 경계선을 알려준다.
부모가 모두 키가 작으면 자녀들의 키가 대부분 작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유전자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한 두 가지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람의 키와 관련된 유전자의 '단일염기 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연관 연구에서는 무려 29만 4831개의 SNP가 연관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체 SNP의 약 10%에 이르는 것이며 한 사람이 가진 유전자 수(약 2만 개에서 2만 5000개)의 12배나 된다.
거의 모든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이 모든 것을 다 합쳐도 키를 결정하는 요소의 절반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네덜란드 사람들의 키가 클까? 하는 예상 질문에 문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하이네(Steven Heine)는 유제품을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예상외의 정답을 내놓았다.
1865년 미국 남성 평균 키는 173㎝였는데, 경제 불황을 겪고 있던 네덜란드 남성들은 겨우 165㎝였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남성의 평균 신장이 185㎝로 미국 남성 평균 177㎝를 역전했다. 유아기와 청소년 시기의 식생활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유제품 섭취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는다. 네덜란드 우유 소비는 세계 1,2위를 다투며 우유 소비량과 키는 매우 상관관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5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일본인 키는 일본에 남아있는 일본인 보다 13㎝나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복잡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일반화하면 항상 오류에 빠질 위험이 높아지지만, 대체로 희귀병은 한두 가지 유전자의 변이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많이 걸리는 질병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유전자에 미치는 사회 문화적 영향 절대적
희귀하지 않은 일반적인 내용에는 지능지수(IQ), 동성애 경향, 인종과 혈통 등이 모두 다 포함된다. 하이네는 ‘문화심리학(Cultural Psychology)’이라는 현대 고전을 써서 인간 조건에 대한 유전적 해석에 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멘델은 완두콩 실험을 해서 유전자 하나당 표현형 하나가 연결된 것을 발견했다. 유전자 하나를 바꿔서 주름 완두콩이나 노란 완두콩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일대일로 연결된 경우가 없지는 않다. 스위치를 켜면 바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미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연결된 유전자 정보들은 망(network)의 구조에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더더욱 복잡하다. 유전학 이해법을 멘델 유전학 같은 ‘스위치 사고’와 키를 결정하는 요인을 분석하는 ‘망 사고’를 구분한다.
하이네의 '유전학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수록 유전자가 삶을 결정한다는 말에 덜 동의했고, 인종차별이나 우생학에 덜 빠진다'는 조언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9-08-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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