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1년 생존한 미생물의 비밀

[금요 포커스] 외막에 수많은 소포 생성해 저항 메커니즘 활성화

1903년 스웨덴의 물리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는 ‘범종설(汎種設, panspermia hypothesis)’이란 가설을 내놓았다. 범종이란 ‘두루 존재하는 씨앗’이란 뜻으로서, 우주에서 떠돌던 미생물을 씨앗으로 삼아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공로로 제임스 왓슨과 함께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크릭은 범종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정향 범종설’을 제안했다. 외계의 고등 문명이 무인 우주선에 실어 보낸 미생물들이 지구에 떨어져 생명의 기원이 되었다는 파격적인 학설이다.

우주 공간에서 1년간 지낸 미생물이 분자 수준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밝힌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Tetyana Milojevic

그런데 미국의 과학자 아서 앤더슨은 1956년에 통조림을 고선량의 감마선으로 살균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던 중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모든 생명체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방사선량에 노출된 통조림이 상해버린 것.

앤더슨은 그 원인을 조사하던 중 마침내 이유를 알아냈다. 범인은 바로 강력한 방사선에 노출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Deinococcus radiodurans)’라는 미생물이었던 것.

방사성폐기물을 분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이 세균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 중 가장 강력한 방사선 저항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경우 10그레이(Gy)의 방사선에 노출돼도 수일 내 사망하며,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미생물일지라도 200Gy의 선량에는 죽는다. 하지만 D. 라디오두란스는 5000Gy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박테리아

이 정도의 방사선 저항성을 지닌다면 이 미생물은 화성 지표면 30㎝ 지하에서 120만 년 정도 버틸 수 있다.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미래에 화성의 환경을 지구처럼 완전히 바꾸는 테라포밍을 추진할 때 이 생명체가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의 한 과학자는 미스터리한 이 미생물이 화성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D. 라디오두란스는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박테리아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 미생물이 고용량의 방사선을 이겨내는 메커니즘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지난 2015년 일본 도쿄대학 연구진은 D. 라디오두란스를 지상 약 400㎞ 위를 선회하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외부의 우주공간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알루미늄 패널에 뚫은 직경 1.5㎜의 구멍 속에 넣어 ISS의 외벽에 1년간 걸어놓은 결과, 약 10%가 생존한 것으로 나타난 것.

ISS에서 1년간 체류하며 신체적 변화를 관찰한 미국의 우주비행사 스콧 켈리의 경우 DNA와 텔로미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변화했으며 골밀도 역시 크게 저하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가 머물렀던 ISS 안과 D. 라디오두란스를 놓아둔 ISS의 바깥은 천지차이다.

우주복사와 태양의 자외선 복사, 극도의 진공 상태, 그리고 엄청난 기온 변동까지 어떤 물체든 일단 그 같은 극악한 환경의 우주 공간에 장기간 머물게 되면 파괴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D. 라디오두란스의 10%는 그 같은 조건에서도 생존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범종설에서 말하는 ‘씨앗’의 후보 1순위 미생물로 등극한 셈이다.

범종설의 후보 1순위 미생물

도대체 그들의 생존 비결은 무엇일까. 최근 오스트리아, 일본, 독일의 국제공동 연구진은 이 미생물이 어떻게 우주 공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탈수 처리돼 ISS 외부의 우주 환경에서 1년 동안 생존한 D. 라디오두란스를 지구로 귀환시킨 후 역시 탈수 처리해 지구에서 1년간 놓아둔 D. 라디오두란스의 대조군과 비교한 것.

이 두 가지 샘플의 미생물 모두에게 다시 수분을 주입한 후 조사한 결과 우주 공간에서 지낸 D. 라디오두란스는 대조군에 비해 생존율이 훨씬 낮았다.

우주 공간에서 지낸 D. 라디오두란스(오른쪽)는 외막에 수많은 소포가 형성되어 있었다. ©Ott et al.(Microbiome, 2020)

하지만 살아남은 개체들은 형태학적 손상이 없었으며, 지구에서 지낸 형제들과는 달리 외막에 수많은 소포를 생성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많은 복구 메커니즘이 촉발되었으며 일부 단백질과 메신저 RNA(mRNA)는 더 풍부해져 있었다.

연구진은 우주 생존 미생물에게 형성된 외막 소포는 영양소 획득, DNA 전달, 독소 감지 분자의 운반에 중요한 단백질을 포함할 수 있으며, 우주 공간 노출 후 저항 메커니즘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고 추정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최신호에 게재됐다.

논문의 공동 저자로 참여한 비엔나대학의 테티야나 밀로예비치 박사는 “이번 연구는 지구 너머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메커니즘과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그런 능력을 가진 유기체가 훨씬 더 길고 먼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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